필립파 불(Philippa Boulle) 박사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제네바 운영센터 - 만성 비감염성 질환(NCD) 어드바이저
4월 7일, 오늘은 세계 보건의 날이다. 오늘 우리는 부유한 국가든 가난한 국가든 거의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의료적 난점, 비감염성 질환(non-communicable diseases, NCDs)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비감염성 질환 어드바이저 필리파 불(Philippa Boulle) 박사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만성질환들을 설명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지원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가 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한다.
전 세계인의 사망 원인 1위는? 바로 만성 비감염성 질환(Noncommunicable Disease, 이하 만성질환)이다. WHO에 따르면 2012년 전체 사망자 5600만 명 중 약 68%에 이르는 3800만 명이 만성질환으로 사망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질환은 심혈관계 질환, 암, 당뇨병, 만성 폐질환 등이다. 이 밖에도 고혈압, 뇌졸중, 결핵, 천식 등이 만성질환에 포함된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고 있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우크라이나 등 인도주의 의료구호활동 현장에도 만성질환 환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전쟁과 피난 등 불안정한 생활 환경 가운데서도 고혈압, 당뇨, 천식, 간질 등과 고군분투 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 지역 내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전략 및 가이드라인 수립을 총괄하는 필립파 불 박사(국경없는의사회 제네바 운영센터 만성 비감염성 질환 어드바이저)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불 박사가 전하는 구호활동 지역의 만성질환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에서도 만성질환 치료가 쉽지 않은데, 분쟁지역 등 구호활동이 이뤄지는 곳은 상황이 더욱 복잡할 것 같다.
“맞다. 오갈 데 없는 피난민이나 가족 구성원을 잃은 사람들, 난민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분쟁으로 환경 자체가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질환이 특히 초기에는 증상이 발견되기 어렵고 어느 정도 병이 진행된 후에야 진단 가능하다는 점이다. 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역이 많아 정기 검진이 어렵다 보니 질환이 발견된 시점에는 이미 장기화된 경우가 대다수다. 더군다나 만성질환의 경우 질병에 대한 교육과 스스로 병을 관리해야 하는 부분, 즉 ‘환자의 참여’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정보나 교육이 부족하다. 흡연, 운동 부족, 영양 불균형 등은 물론이고 일부 지역에는 냉장 시설이 없어서 인슐린 보관 시 온도 관리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구체적인 진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현장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각 지역에 클리닉을 운영하고 필요할 경우 추가로 모바일 클리닉 등을 운영해서 유동적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혈압, 혈당, 신장 기능, 콜레스테롤 검사 등을 실시한다. 약물의 경우 가격과 치료 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약물 목록을 별도로 마련해 이를 사용한다. 환자 교육 측면도 상당히 중요하다. 단순히 약을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진료, 교육, 심리치료를 종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응급 분쟁 상황에서는 환자가 자기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어야 생명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당뇨병 환자는 식단 관리가 중요할 텐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관리가 가능하도록 돕나.
“불안정한 상황에서 생활습관을 신경 쓰고 약을 챙겨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분쟁 지역의 경우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지 때문에 신선한 식재료를 얻기 힘들고 오로지 구호단체에서 제공하는 식량에만 의존한다. 가령 레바논에서 만난 환자들은 먹거리가 별로 없어 매일 빵만 먹고 있었다. 이들에게 식단 관리를 권해도 현실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최대한 현지 상황을 파악해 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식료품이 무엇인지, 주어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무엇인지 우선 알아본다. 그 배경을 파악한 후에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조언을 한다. 음식을 주로 짜게 먹는 지역에서는 우선 소금을 줄여보라고 하거나 차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 마실 경우에는 설탕을 줄여보라고 한다. 식단조정이 정 어려울 경우에는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자주 먹으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만성질환 치료에 겪는 어려움은.
“아무래도 인도주의적 환경에서 만성질환을 치료해온 과학적 자료나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해당 지역과 질병에 대해 국경없는의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존 지식만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선한 식재료가 부족 또는 부재한 곳에서 최대한 현지 사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조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적응하고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또 환자 개인 당 진료 및 치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 비해 환자 수는 상당하다는 것도 어려움이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나.
“그렇다. 가령 중동 지역에서는 약을 더 많이 먹을수록 더 몸에 좋다는 인식이 있다. 환자들의 기대와 우리의 치료 방식이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운동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환자들의 신체 활동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또 우크라이나에서는 술과 흡연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만성 호흡기 질환 치료가 어려울 때도 있다. 사실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에 외부인이 관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각자 자기만의 생활 방식이 있고 문화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을 조절하는 것이 치료의 가장 우선순위가 될 수 없을진 몰라도 환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