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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뉴노멀’이 되어버린 유럽연합의 지중해 중부 이주 정책

2023.12.08

올해 지중해 중부에서 약 2,200명의 아동 및 여성, 남성이 실종되거나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가운데, 2023년은 이미 2007년 이후 해당 이주 경로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치명적인 해로 기록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No one came to our rescue)”는 표제의 신규 보고서(►영문 보고서 보러 가기)를 통해 바다에서 더 많은 죽음을 초래한 유럽 국가들의 국경에서의 폭력 행위와 고의적인 무대응을 규탄한다.

해당 보고서는 수색구조선 지오배런츠(Geo Barents) 호에서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수집한 의료 및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유럽 연안국가들이 구조 작업을 지연하거나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이주민을 강제 송환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고의로 위험에 빠뜨린 사례가 다수 기록되어 있다. 또한 생존자들이 지오배런츠 호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에게 보고한 극심한 수준의 폭력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2023년 지중해 중부 경로를 통해 이태리 해안에 도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작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튀니지가 리비아를 제치고 주요 출항지가 되었다. 피란하는 이주민 수는 크게 증가한 반면 국가 주도의 구조 역량은 부족하여 배가 조난당하거나 난파되는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지중해 중부에서 하루 평균 8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지오배런츠 호를 타고 지중해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 2023년 7월. ©MSF/MICHELA RIZZOTTI

폭력이 만연한 여정

2023년 1월부터 9월 사이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오배런츠 호에 승선한 생존자를 대상으로 3,660건의 진료를 실시했다. 구조된 생존자 대다수는 연료 노출로 인한 화상 및 중독, 저체온증, 탈수와 같이 위험한 바다 횡단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또한 많은 생존자들이 리비아에서 구금되어 있는 동안 피부 감염에 걸리거나 상처를 방치하는 등 비좁고 비인간적인 생활 환경과 관련된 의료 문제를 겪었다. 또한 273명의 환자는 총상과 폭력적인 구타로 인한 부상 등 폭력과 관련된 심각한 외상을 입었거나, 성폭력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불안 및 악몽, 플래시백(flashback, 예기치 못하게 과거경험이 갑자기 떠오르는 현상)과 같은 심각한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오배런츠 호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년 넘게 유럽 이주 정책이 초래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 피해에 대응하여 치료를 제공했습니다. 환자들의 상처와 이야기는 그들이 리비아와 튀니지를 포함해 고국과 이주 여정에서 겪은 폭력의 정도를 보여줍니다.”_후안 마티아스 길(Juan Matias Gil) / 국경없는의사회 수색구조 활동 책임자

한 생존자가 지중해를 건너다 겪은 일을 표현한 그림. 해당 생존자에 따르면, 그림 속 바다에 빠진 남성은 연료 부족 문제로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 2023년 6월. ©MSF/Skye McKee

인명 피해 초래하는 이주 정책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은 유럽 문턱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외면한 채 인명 피해를 거의 또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해로운 이주 정책 및 법률, 관행에 추가로 투자해 왔다. 지중해에서 이주민들이 리비아로 강제 송환되는 것이 계속 목격되고 있는 가운데, 여름에는 튀니지와의 협정, 최근에는 알바니아와의 협정이 있었는데, 이러한 제3국과의 새로운 협정은 안전을 찾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이 의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행하는 우려스러운 시도다.  

억제와 통제가 또다시 인권과 생명보다 우선시되고 있습니다.”_후안 마티아스 길

2023년 초, 이태리 정부가 비정부기구의 해상 구조 활동을 방해하는 신규 법령을 채택했고, 이로 인해 인도적 지원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지중해 중부에서의 구조 활동 공백이 심화되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첫 9개월 동안 이태리 당국은 신규 법령 아래 지오배런츠 호를 비롯해 비정부기구 수색구조선 6척을 억류했다. 비정부기구 선박들이 억류되어 생명을 구하지 못한 기간을 합치면 총 160일(5개월 이상)이다.

또한 비정부기구 선박을 멀리 떨어진 항구에 배치하는 관행 때문에 지오배런츠 호는 불필요하게 먼 항구와 목적지 사이를 오고 가기 위해 28,000km(약 70일 항해 거리)를 더 이동해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생존자들이 육지에서 적절한 의료 지원, 보호, 수용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상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을 돕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했습니다. 이태리의 신규 법령은 비정부기구를 겨냥한 것이지만, 실제 대가는 지중해 중부를 건너 대피하고 도움 없이 남겨지는 사람들이 치르게 됩니다.”_후안 마티아스 길

또한 지오배런츠 호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이태리와 몰타가 구조 작업에 실패하고 익사 위험에 처한 이주민 지원을 보장하지 않아 구조 지연 및 공백을 초래하는 노골적인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태리 당국은 여러 차례 비정부기구 선박이 조난당한 보트를 지원하지 않도록 지시하고 즉시 항구로 이동하도록 강요했다. 2023년 6월, 국경없는의사회는 몰타의 체계적인 해상 미지원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로 최소 한 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지중해 중부에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발생해야 유럽 국가들이 적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치를 중단할까요? 우리는 유럽연합과 회원국들, 특히 이태리와 몰타가 유럽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기 위해 즉시 방침을 바꿀 것을 촉구합니다.”_후안 마티아스 길


국경없는의사회 수색구조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2015년부터 수색구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며, 현재까지 8개의 수색구조 선박을 단독으로 또는 기타 비정부기구와의 협력 하에 운영하면서 9만 명 이상을 구조했다. 지오배런츠 호 수색구조 작전을 시작한 2021년 5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2023년 한 해 동안 구조한 4,011명을 포함해 총 9,762명을 구조하고, 11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선상에서  한 명의 신생아 분만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