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칼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가 실종자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무려 8만3000명이 게릴라, 무장 단체, 범죄 조직, 정부군에 의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사라진 후 남겨진 가족들은 추측과 희망, 좌절과 의심, 그 밖에 불안, 우울, 절망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실종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과연 언제 슬퍼할 수 있을지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직 슬픔을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8년 8월 30일은 강제로 실종된 사람들을 기억하는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1년간 콜롬비아의 푸에르토 아시스, 칼리 등지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며 활동해 왔다.
푸에르토 아시스, 칼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새 코디네이터 기울리아 판세리(Giulia Panseri)가 현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및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 전해 주었다.
Q. 콜롬비아에서 8만3000명이 실종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실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치료해야 할 상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실종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6개월 전, 1년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환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은 꾸준히 우리를 찾아와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실종 사건의 피해는 막대합니다. 실종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건의 진실도, 가족의 행방도 알지 못한 채 불확실한 상황 속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묻어두는 거죠.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겁니다. 그러한 불확실한 상황은 몇 달, 몇 년간 이어집니다.
침묵은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사람들은 형제, 아버지, 사촌,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하길 두려워합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낙인에 찍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가 있으니까 붙잡혀 갔겠지.’ 하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공공기관들은 이러한 낙인이 사라지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할 일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는 어느 면에서 봐도 인류애를 파괴시키는 범죄입니다.
Q. 이에 대응해 공공기관들은 어떤 일들을 했습니까?
사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요. 현재 수습되어 가족들에게 전달해야 할 시신이 3000구에 달하는데 이에 대처할 자원이나 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실종자 수색 지원처’(Missing Persons Search Unit)가 신설되긴 했지만 이를 운영할 자원과 예산이 필요하고 정확한 활동 완수 시점도 설정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체결된 평화 협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는데, 사실 이것이 실종자 행방에 관한 정보의 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의 다음 행보를 예의주시해 봐야겠습니다.
Q. 현장의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어떤 날 보람을 느끼나요?
우리 프로젝트는 특별한 기관입니다. 말라리아 같은 신체적 질병에 대응하는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의료 지원을 받으면 몇 시간 혹은 며칠 후면 질병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데, 정신건강 분야는 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한 사건이 ‘종결’될 때가 가장 보람 있죠.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찾을 순 없겠지만 환자가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그때를 ‘종결’이라고 봅니다. 그때가 되면 슬픔, 불안,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과민함 등 환자들을 괴롭히는 증상들이 사라지고, 환자들은 그런 증상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종합 지원 패키지를 사용해 환자들의 회복 과정 전 단계를 지원하면서 가족을 찾는 데 필요한 도움, 법적 자문, 재활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누군가 마침내 회복되는 것을 볼 때, 그때가 바로 보람 있는 날이죠.
콜롬비아 칼리에 있는 산티아고 대학 내에서 진행되는 실종자 찾기 운동
Q. 그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한 환자는 몇 명입니까?
우리 팀들을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원받은 사람은 총 297명입니다. 지난 6개월 사이에만 203명의 환자를 만났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 수도 함께 늘고 있는데요. 사실 칼리는 콜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이기 때문에 우리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푸에르토 아시스는 칼리보다는 작은 도시라서 상황이 좀 다릅니다. 반면 시골 지역에서는 거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하는 거죠. 우리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발견했거나 다른 협력기관에서 지원 의뢰를 해온 경우, 우리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시설을 찾아오라고 하기보다 직접 우리가 그들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장려하고 싶은 지원 모델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낙인, 미래에 대한 불안, 불신, 공포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고 시도하다가 위협을 받거나 금전 갈취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일들이 필요합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상담 받는 일을 중단하려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기관의 한 심리학자가 그분께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해줬을 때, 그분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무엇에 대한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거지?’ … 그분께는 아무도 없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국경없는의사회 이야기를 들은 그분은 우리를 찾아와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와 함께하면서 정서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심리적 지지와 더불어, 실종자 가족을 지원해 법적 조언, 워크숍, 기타 여러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기관들과도 그분을 연결시켜 드렸습니다. 심리적 지지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실종 사건은 한 가족의 경제적 상황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실종 사건의 여파는 복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면적 접근이 필요하죠. 이곳에서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최대한 종합적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타 단체들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콜롬비아 투마코, 부에나벤투라 시에서 활동하며 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폭력 생존자들에게는 자발적 뜻에 따른 임신 중절을 포함해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칼리와 푸에르토 아시스에서는 강제실종 희생자 가족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제공한다. 우리는 또한 콜롬비아의 보건 및 인도주의 상황을 감시하는 비상사태 대응팀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