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국경없는의사회의 여러 긴급구호 활동에 참여해 온 간호사 베라 슈미츠(Vera Schmitz)는 최근 분쟁의 영향이 심각한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에서 의료 팀장으로 활동했다. 슈미츠가 티그라이에서 긴박한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장의 소식을 전해왔다.
2020년 12월,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팀이 에티오피아 티그라이로 파견됐다. 티그라이에서 발발한 분쟁은 주민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현저히 저하시켰다. 긴급구호팀은 운영이 제한된 아디그랏(Adigrat)의 병원으로 향했다. 이후 수개월 동안 병원의 의료 서비스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인근 마을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해 주민들을 지원했다. ©Sonia Garcia/MSF
활동이 끝나갑니다. 집으로 돌아갈 티켓을 끊고 짐도 전부 챙겼습니다. 에티오피아산 커피와 전통 문양의 스카프로 짐이 가득 찼네요. 마음 속에는 지난 몇 달 간 쌓인 기억과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급작스레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사람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일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상상하기 어려운 극심한 인도적 위기, 그리고 너무나도 부족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대응. 분쟁으로 참혹한 위기를 마주한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에서 활동하며 제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천천히 풀어나가려 합니다.
2020년 12월 초
2020년 12월 초, 긴급구호 코디네이터, 로지스티션, 운전자 두 명, 그리고 의료 팀장인 제가 팀을 이뤄 아파르(Afar)로 향했습니다. 현재 티그라이(Tigray)는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상태입니다. 전화부터 인터넷, 전기까지 모든 게 끊겼죠. 그 어떤 소식도 외부로 발설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티그라이로 들여올 수 없습니다. 아파르는 티그라이와 인접한 고온 저습한 사막 지역입니다. 티그라이와의 경계에 위치한 의료 인프라는 직접적인 분쟁 발발 지역이 아닌데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원래 아파르와 티그라이 사이에는 밀접한 교류가 이뤄졌는데, 아파르는 무역, 인력, 전기, 전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티그라이에 의존하고 있었죠.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중환자들이 티그라이의 주도 메켈레(Mekele)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 9시간을 가야 합니다. 위중한 환자에게는 너무 먼 거리죠.
2020년 12월 중순
아파르에서 티그라이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 계획이지만 진입 허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전까지는 티그라이에 인접한 아발라(Abala)라는 마을에서 작은 병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12월 중순, 마침내 메켈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에티오피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 아디그랏으로 향했어요.
곧장 병원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140만 인구를 대상으로 2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땐 기존 수용력의 단 20%만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응급실, 수술실, 외과 병동과 분만실만 간신히 운영되고 있었죠. 소아과와 신생아 병동, 내과 병동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와 급성 기침이나 설사 환자를 위한 외래 서비스도 없었습니다.
아디그랏 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 도시 내 이동을 금지하는 통행제한 조치로 주민들은 야간에는 병원에 올 수 없기 때문에, 병원은 매우 조용하다. ©Sonia Garcia/MSF
2020년 12월 말
병원까지 긴 여정을 떠나기 전 며칠을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한 중환자가 많았습니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온 환자도 있었죠. 부상자나 임산부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하기전 사망한 태아도 있었습니다.
이곳까지 힘겹게 온 환자들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동 환자는 왜 한 명도 없는걸까요? 원래 병원에는 아이들이 많은데 말이죠.
12월 24일 아디그랏 병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병동이나 서비스는 며칠 이내로 운영을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여전히 자원이나 여력이 부족해 기존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재 아디그랏에는 국경없는의사회 외에 활동하는 다른 국제 인도주의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단체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일부의 영역만 지원하고 있죠.
2021년 1월
다른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더 서쪽에 있는 아두와(Adwa)와 악숨(Axum)으로 향하는 동안 이제 우리 팀은 다음 단계 활동을 준비합니다. 바로 지역사회 아웃리치(outreach)인데요!
우리는 이동진료소를 운영해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아동 환자나 합병증이 있는 임산부 등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피임제를 제공하며, 다른 긴급대응 활동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2월에는 우리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에 정신건강 지원 서비스도 추가될 예정이에요.
슈미츠가 안전한 분만 지원을 마치고 방금 태어난 신생아를 안고 있다. 이 아기는 아디그랏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잘라 암베사(Zala Ambessa) 마을에서 태어났다. 잘라 암베사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한 첫날, 진통을 겪고 있는 임산부가 진료소로 왔다. 몇 시간 후 이 임산부는 국경없는의사회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여아를 출산했다. 티그라이 분쟁으로 주민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저하되면서, 이 산모는 마을에서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전문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출산한 여성이었다. ©Sonia Garcia/MSF
2021년 3월
1월 초 이동진료소 운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거의 매주 새로운 마을을 방문했어요. 현지 상황이나 필요 규모에 따라 1~2주마다 재방문하고 있습니다. 아웃리치 활동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이곳 티그라이의 인도적 위기가 주민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 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식량이 부족합니다. 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티그라이의 인구 대부분이 정부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일부 지역은 마지막 식량배급을 받은 것이 작년 9월이었습니다. 좀 더 인구가 많은 마을에는 물자가 공급되긴 했지만 역시나 수요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했죠. 주민들은 식량을 최대한 아끼면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끼밖에 먹지 못하고 있었죠. 국경없는의사회의 영양실조 프로그램에서는 아동 뿐만 아니라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임산부도 지원했습니다.
재정도 부족합니다. 은행 시스템이 마비된 지 오래입니다. 일자리도 없고 지난 몇 달 간 급여를 받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시장에서 음식을 판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죠. 돈이 없다는 것은 먹을 것도 없다는 뜻이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요. 티그라이는 전 지역에 걸쳐 전기가 오랫동안 끊겨 있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 불안정한 상태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식수 펌프는 대부분 전기로 작동합니다. 지금은요? 주민들은 강물에서 식수를 길어 마셔야 합니다. 특히 외곽 지역은 더 그렇죠. 당연히 설사병이나 피부병 환자가 많을 수 밖에 없어요.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지에게 몇 주, 몇 개월 만에 생사만 겨우 알리는 메모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곤 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도 없습니다. 보건소는 문을 닫았고 직원은 모두 피난을 떠났습니다. 많은 보건소가 약탈 당하거나 로켓 미사일에 폭격 당해 파괴되었고요. 군인이 장악해버린 곳도 많습니다. 구급차는 대부분 도난 당해 군용으로 사용되고 있죠.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임산부, 아동, 부상자와 환자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민간인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쟁으로 민간인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치료한 환자 중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있고 큰 부상을 입은 임산부도 있었어요. 의료 종사자가 위협을 받은 상황도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곳 주민들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지금도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포가 희망의 불씨를 꺼뜨렸습니다.
극심한 인도적 위기
저는 티그라이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도적 위기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은 제가 2014년 처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을때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일보다 심각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재 이곳에 국제 인도적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디그랏을 비롯한 티그라이의 여러 지역에서 활동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기록한 여러 문제 중 몇몇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인도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많은 지원이 필요하지만, 국제 사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이후 몇몇 단체가 티그라이에 오긴 했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지원에 불과했죠.
티그라이에서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티그라이의 아름다운 풍경도 인상 깊지만, 그보다 티그라이 주민들의 강인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들에게는 희망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