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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사진으로 보는 현장] 남수단 국경없는의사회 1년: 긴급 구호를 요하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 맞선 발자취

2012.08.09

7월 9일, 첫 번째 독립 기념일을 맞게 된 남수단(South Sudan)에서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 팀은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에 봉착한 난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마다 폭력의 그늘을 안고 도착한 약 100,000 여 명의 수단 난민들은 대부분 질병과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어퍼 나일 주(Upper Nile State)의 캠프 역시 턱없이 부족한 자원과 열악한 생활 환경은 다를 바 없지만, 난민들은 이곳을  캠프를 피난처 삼아 고단한 몸을 쉬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이들이 겪어온 여정을 돌아보고자 한다.

 

붕괴 직전이나 마찬가지인 남수단의 공중 보건 체계와 더불어 지난 1년 동안 발생한 국가적 비상사태들이 남긴 것은 국경 지대를 따라 넘쳐나는 수많은 난민들이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남수단에서 가장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지역에 15 곳 이상의 병원을, 그리고 여덟 개 주와 분쟁지역인 아비에이(Abyei) 국경 지대에 간이 진료소를 운영함은 물론 가장 외진 지역에 이동 진료소와 현장팀을 파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팀들은 출산 보건, 1차 및 2차 보건, 폭력의 희생자들과 난민들과 관련한 열악한 의료 환경의 증거를 하루도 빠짐없이 목격한다. 이들을 위해 의료팀들은 말라리아와 칼라아자르(kala azar, 흑열병)를 포함한 질병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영양실조를 비롯한 다양한 건강상 문제들을 살핀다.

2011년 7월 독립의 찬반을 붇는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 중 심각한 물리적 충돌과 폭격이 북남부 국경 지대의 산유지인 아비에이와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기존의 프로그램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난 1년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거의 지속적으로 이처럼 첨예한 비상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응해왔다.

2011년 5월, 국경없는의사회는 아비에이에서1차 의료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에 따르는 대신 이동 진료팀을 거리로 파견해 난민들에게 의료 서비스와 음식은 물론 비닐과 모기장과 같은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남쪽으로 약 25 마일 (40킬로미터) 떨어진 아고크(Agok)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지역에 유일한 2차 진료소를 운영하였고, 의료팀들은 예방접종과 출산 보건 뿐 아니라 구명을 위한 수술에도 전력을 다했다.

극도의 폭력 사태와 치열한 공방전은 국경 지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잔혹한 지역간 무력 충돌은 종글레이(Jonglei) 주에서도 발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1년 8월 이 지역과 12 곳의 인근 마을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 사태 이후 피에리(Pieri)에 위치한 진료소에서 100 명 이상의 부상자를 치료했다. 부상자 중 상당수는 총상에 신음하는 여성들과 아이들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남수단 출신의 한 지역 스태프는 습격이 일어나는 동안 살해당했고, 피에리의 국경없는의사회 시설에서는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첫 날까지 종글레이 주 남부 피보르(Pibor) 주변에서 더 많은 공격이 일어나자 공포에 휩싸인 수 천의 가족들은 숲으로 더욱 깊숙이 숨어들었다. 그 결과 이들은 의료 시설에 접근하기 더욱 어려워졌고 수 주 동안 인도적 지원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두려움과 깊은 상처로 마을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마른 강바닥의 강둑을 따라 만들어진 임시 대피처에 자리를 잡았다.

1월 7일, 다시 이들에게 돌아온 국경없는의사회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피보르의 병원과 레크옹골(Lekwongole) 마을의 진료소를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몇 주에 걸쳐 의료팀은 총상과 자상을 입은 100 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봤다. 역시 여성들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수단을 빠져나가려는 난민들의 긴 행렬은 11월에 시작되었다. 약 13,000 명의 사람들이 고향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어 마반 카운티(Maban County) 어퍼 나일 주의 도로(Doro)까지 먼 피난길을 떠났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즉각 비상 의료 개입 활동을 시작했다.

12월이 되자 더 많은 수의 난민들이 도착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 대응 모드를 전폭적으로 가동시켰다. 식수 부족이 곧 주요 문제로 부각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점차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사람들의 수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식수 문제와 씨름하게 되었다.

수많은 난민들은 계속해서 캠프로 밀려들었고, 자원은 한계에 다다랐다. 곧 두 번째 난민 캠프가 자맘(Jamam)에  세워져야 했다. 나이 지긋한 한 수단인의 증언은 난민의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예시해준다. 그에 따르면, 그가 살던 고향에서 5,000명은 피난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그의 고향 전체 인구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자급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가족들이었다. “우리는 전부 이곳으로 왔어요.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어퍼 나일 주의 난민 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비상 자원의 대부분이 소요되는 동안, 갈수록 더 많은 수의 가족들은 고향에서 연일 이어지는 공습과 식량난을 피해 남코르도판(South Kordofan)의 누바(Nuba) 산을 타고 국경을 넘어 남수단 유니티 주(Unity State)의 가장 큰 국경 지대 마을인 이다(Yida)의 난민 정착지로 피난했다. 2011년 6월에는 누바산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수천은 아니더라도 족히 수백 명은 되는 새로운 난민들이 매일 캠프로 밀려들게 되었다. 우기가 시작되자 이다 캠프의 보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점차 심각해지는 보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활동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미 2011년 말 이다에 15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열고, 소아 지료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이다 지역에 산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본 진료소를 인수하였다. 2012년 3월 현재, 약 700 여명의 환자들이 매주 병원을 찾고 있다.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 30퍼센트는 5세 이하 영유아이다.

2012년 초 분쟁지역인 아이베이의 남부에 위치한 아고크 주변 지역 난민들과 거주민들은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수 개월 전부터 영양실조 위험에 노출된 어린 아이들을 위한 예방 차원의 영양보충제 지급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12년 1월 11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종글레이 주 유아이(Yuai)에 위치한 진료소에서 13명의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어퍼 나일 주 나시르(Nasir)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으로 항공편으로 후송해 긴급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이 날 후송된 환자들은 종글레이 북부에서 일어난 지역간 분쟁에 다친 부상자들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번에도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구타와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이었다.

수단과 남부 수단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본격화되면서 4월이 되자 국경 지대를 따라 양측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4월, 국경없는의사회는 유니티 주 아고크로부터 서부로 22마일 (36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아비엠논(Abiemnon) 에서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네 명의 부상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수술을 실시하였다.

통합 주의 벤티우(Bentiu), 어퍼나일 주의 말라칼(Malakal)에서 같은 내전으로 인해 부상 당한 환자들 역시 응급 시술이 필요했다. 이 두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많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30여명 이상의 총상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이 중 부상 정도가 심각한 환자 세 명은 수술을 위해 리에르(Leer)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폭력은 남수단에서 의료적 비상사태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어퍼 나일 주 지역에서는 자주 칼라아자르 또는 내장 레슈마니아증(visceral leishmaniasis)이 자주 발병한다. 이 질환은 샌드플라이에 물려 전염되는 기생병으로, 별다른 치료책도 없이 거의 모든 환자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2010년, 칼라아자르는 지난 8년 동안 가장 큰 규모로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예년보다 8배나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그 수는 2011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에 국경을 맞대로 인접해 있는 서에콰토리아(Western Equatoria)의 얌비오(Yambio)는 신의 저항(Lord’s Resistance Army, LRA)의 출현에 기인한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LRA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나 파이터로 이용되었던 아이들을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남수단의 많은 지역에서 보건 문제는 단지 질적인 수준을 따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들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이 운영하는 진료소나 병원은 곧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와랍(Warrap) 주 고그리알(Gogrial)에서 이 임신부는 문진을 받으러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해 왔다고 국경없는의사회에게 말을 건넸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하루 종일 걸어 어제 여기에 왔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 근처에는 진료소가 전혀 없어요. 배도 아프고 등도 아파요. 여기 진료소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성 사망과 영아 사망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모자 보건을 살피는 데 힘을 쏟으며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북부 바엘 가(Bahr–El–Ghazal) 주에서 유일한 중간 진료 병원(referral hospital)인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들은 아웨일 민간 병원(Aweil Civil Hospital)에서 모성과 소아 사망률을 줄이고 영양실조 문제를 감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경험에 따르면, 영양실조는 ‘기근기’를 거치는 동안 증가한다. 이러한 기근기는 지난 해 비축했던 식량이 바닥이 나고 이듬해 수확한 곡물이 아직 취합되지 않은 기간에 발생한다. 그러나 2011년 기상 이변으로 강우 패턴이 예기치 않게 진행되면서 곡물 수확량은 예년 수준을 밑돌았고,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 영양실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영양실조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의 폭을 전폭적으로 넓여햐 했다.

일반적으로 열악한 남수단의 보건 상황으로 인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남수단 전역에 걸쳐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독립기념일 전야에 국경없는의사회가 특히 주목하였던 것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난민들의 상태였다. 5월과 6월, 우기가 시작되고 있던 때, 약35,000 여 명의 난민들이 추가로 수단의 블루 나일(Blue Nile) 주를 거쳐 국경을 넘었다. 이제 어퍼 나일 주의 총 난민 수는 100,000을 웃돌았다.

이같은 긴급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기란 특히 어려운 일이다. 난민들이 임시로 거처를 마련하고 있는 지역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특히 부적합한 환경이다. 우기에 들어서면 이 지역의 땅은 건조한 땅이라고는 섬조각처럼 아주 조금만 남길 뿐 광대한 습지처럼 변해버린다.

더 많은 난민들이 캠프로 계속 몰려올 때 즈음, 홍수 수위는 계속 상승했다. 결국 자맘 캠프에 머무는 아이들은 진흙범벅의 침수 지역에서 젖은 옷을 입고 축축한 이불을 덮은 채 잠을 청해야 한다. 설사, 호흡기 질환. 말라리아에 더해 이제는 습기로 저체온증까지 기승을 부리게 되면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들은 어린 환자들을 돌보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1년은 남수단 전역의 보건의 불확실한 미래와 수단을 떠나 온 난민들의 불안한 미래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 “이 사람들은 끔찍한 폭력을 피해 고향은 수단을 등져야 했고 더 안전한 삶을 찾아 떠난 고된 여정 속에서 가족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범람원에 자리한 난민 캠프에서 몸을 제대로 가릴 곳도 없이 앉아 있어야 합니다. 캠프의 끔찍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에 노출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맘 난민 캠프의 긴급대응 코디네이터인 타라 네웰(Tara Newell)의 말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78년 이래로 이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