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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문] 쿤두즈 병원 공격으로 숨진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

2015.11.24

2015년 10월 3일은 국경없는의사회 역사에서 암흑의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 이른 아침,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외상 병원은, 병원을 정확히 겨냥한 반복적인 공습으로 한 시간여 동안 타격을 입었습니다.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동료들은 놀라운 결의와 용기를 발휘하여 자신과 환자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비극적인 그날,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총 1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전체가 희생자들의 가족 분들과 한마음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너무나도 그리울 우리 동료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숨진 동료 중 한 사람이었던 자비울라(Zabiullah)는 그의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날아가겠지만 그 추억은 남을 것이며,

상처는 치유되겠지만 그 흔적은 남을 것이라네.”

압둘 마크수드(Abdul Maqsood, 22세)는 중앙 환자 정보 담당자로 일했습니다.

열정적이고 능숙한 크리켓 선수였던 마크수드는 일용직 노동자로 병원 근무를 시작했고, 몇 개월 후 영구직 팀원으로 채용되자 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마크수드는 헌신적으로 일에 임했고, 그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와 일에 대한 헌신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압둘 나시르(Abdul Nasir, 22세)는 병원 청소부로 일했습니다.

쿤두즈 지역에서 태어난 나시르는 2013년 7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일에 참여했습니다. 나시르를 알던 사람들은 그가 매우 단정하고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는 사람으로, 항상 팀에 기여하고 자신에게 부과된 일보다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시르는 또한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었고, 환자들과 간병인들에게 도움을 주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시르는 자주 집중치료실 문 가까이에 앉아 있거나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갈 때면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나시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값진 도움을 베풀던 사람이었습니다.

압둘 살람(Abdul Salam, 29세)은 친근감 있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외과 수술실에서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그는 직원들 중에서도 가장 열의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삶의 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람은 숙련된 외과 간호사일 뿐만 아니라 약학 분야에도 학위가 있었고, 여가 시간이면 크리켓이나 부즈카시(아프가니스탄의 대중 스포츠)를 하곤 했습니다. 병원 공격 직전에 격렬한 교전이 있던 주에, 살람은 환자들과 동료들을 돕고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눈도 거의 붙이지 못했습니다. 살람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혼이었던 살람에게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포함해 슬하에 자녀 2명이 있습니다.

압둘 사타르 자히르(Abdul Satar Zaheer, 47세)는 의료 부국장으로 일했습니다.

수많은 직원들을 관리했던 자히르에 대해,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양심적이고 공손하며 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타르는 깊은 밤까지 일할 때가 많았습니다. 일을 좀 줄이라던 아들의 말에 사타르는 “아빠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란다.”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사타르 박사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고, 의료팀이 더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놀라운 끈기와 유머 감각으로도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공격이 일어나던 밤, 그는 휴식을 갖는 대신 환자들 곁에 머물러 있기로 결심하고, 당직을 서던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주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여덟 아이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던 그는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했습니다.

아미눌라 바조리(Aminullah Bajawri) 박사는 32세의 한 아버지로서, 응급실 의사로 일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바조리 박사도 쿤두즈 교전이 벌어졌을 때 안전한 곳을 찾아 시를 떠나지 않고, 대신 병원에 남아 환자들과 친구들, 동료들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공격 전까지 그는 1주일 내내 근무했고, 그가 당직을 서는 동안 회복을 보이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는 의료 문제를 명료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았고, 환자 치료에 있어서 실용적인 접근을 취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민 박사는 큰 신뢰를 받는 사람으로서 방대한 교육을 받은데다 융통성도 있었고, 환자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아민의 꿈은 신경외과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신경외과의가 부족해 아동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민 박사는 또한 쿤두즈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학생들은 그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랄 모하마드(Lal Mohammad, 28세)는 쿤두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던 그는젊은 간호사들의 멘토 역할을 맡아 일했습니다. 천성적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던 모하마드는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환자들에 대한 그의 헌신은 다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는 항상 환자들에게 최대한의 편안함을 제공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미소와 배움에 대한 열의, 그리고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유족으로는 그의 아내와 자녀 셋이 있습니다.

모하마드 에산 오스마니(Mohammad Ehsan Osmani, 32세) 박사는 집중치료실 의사로서, 환자들에 대한 놀라운 열의와 헌신을 보여 준 젊은 박사였습니다.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는 환자들이 많아 추가 업무를 하거나 교대 근무를 대신해야 할 때도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자유 시간에는 자진해서 병원에 남아 일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오스마니의 에너지와 웃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번져 나갔습니다. 오스마니는 자신이 머무는 방을 기분 좋은 기운과 연민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남을 도우려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공습이 있던 날 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벙커에 대피하기를 거부하고, 위독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계속 돌보는 편을 택했습니다.

모히불라(Mohibullah, 38세)는 헌신적인 한 아버지로서, 3년 전에 쿤두즈 외상 센터에 합류한 숙련된 응급실 간호사였습니다.

그는 여덟 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제 중 몇 명도 의료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외래병동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한 모히불라는 이후 응급실로 근무처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줄 알았던 모히불라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인내를 보였습니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을 읽었고, 동료들에게도 조언을 구하곤 했습니다. 또한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늦게까지 남아 있으려고 했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웠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나지불라(Najibullah, 27세)는 2011년 8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해온 한 아버지로서, 응급실 청소부로 일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던 그는 이야기하길 좋아했고 항상 친절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가 시간이면 그는 지식을 더 얻고자 공부를 했고, 청소 업무에 더해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역할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나시르 아마드(Naseer Ahmad, 23세)는 2014년 6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일에 참여한 집중치료실 간호사였습니다.

그는 온화하고 조용하며, 배움에 열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영어 수업도 들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차분한 행실은 집중치료실 간호사로 일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면서 그의 밝은 정서와 생각을 나누기를 좋아했습니다. 집중치료실에서 그는 위독한 환자들에 대해 홀로 책임을 다하길 원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일에 대한, 그리고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크나큰 헌신을 잘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곁에서 돌볼 가족이 없는 환자들을 늘 도와주곤 했습니다.

샤피퀄라(Shafiqullah, 39세)는 2015년 2월부터 일했던 경비원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항상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자신의 일에 매우 헌신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었던 그는 동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동료들은 그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유족으로는 자녀 넷이 있습니다.

타실(Tahseel, 35세)은 한 아버지로서, 조제팀에서 매우 값진 역할을 해냈던 사랑 받는 동료였습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조제실은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는 병원에서 그 어떤 긴급 상황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유머 감각도 매우 뛰어 났고,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남을 돕는 데 매우 헌신적이었던 타실은 휴가 중 마지막 며칠을 반납하고 병원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팀에서 그의 도움이 가장 필요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타인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는 앞으로도 늘 기억될 것입니다.

자비울라(Zabiullah, 29세)는 기혼자로서, 2015년 2월부터 병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몇 권의 책을 파슈툰어(아프가니스탄 공용어 중 하나)로 옮기는 작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유명한 인물 ‘칸 압둘 가파르 칸’(Khan Abdul Ghafar Khan)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우호적이고 친절한 태도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تیر به شی وختونه خو یادونه به یی وی

جور به شی زخمونه خو داغونه به یی وی

“시간은 날아가겠지만 그 추억은 남을 것이며, 
상처는 치유되겠지만 그 흔적은 남을 것이라네.”

지아우라만(Ziaurahman, 23세)은 집중치료실 간호사로서, 2013년 12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재능 있는 간호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트레이닝 모임에 늘 참여했던 그는 배움에 대한 남다른 열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매사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고, 천성적으로 남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들을 돌볼 때면 병상 곁에서 환자들을 챙기던 그였기 때문에, 그의 환자들은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모든 직원들에게 좋은 친구였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