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젤린 쿠아(Evangeline Cua) 박사는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없는의사회 쿤두즈 외상 센터에서 활동했던 필리핀 출신 외과의사로, 10월 3일 미국의 공습으로 병원이 파괴되던 당시 현장에 있었다. 끔찍했던 그날 밤을 무사히 버텨낸 쿠아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젯밤, 악몽 속에 그 일이 또 다시 펼쳐졌다.
수술실에서 나를 보조하던 외과의사와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냉정을 잃고 허둥지둥 서둘렀다. 방금 전 우리와 함께 있던 간호사들은 이미 건물 밖으로 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총알 속을 헤치고 대피하고 있었다. 주변을 온통 뒤덮은 먼지 때문에, 나는 반쯤 질식한 상태로 연신 기침을 해댔다. 수술용 마스크를 썼는데도, 누가 모래라도 먹인 것처럼 입이 너무 껄끄러웠다. 내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도 잘 들렸다. 옆방에서 겹겹이 나오는 연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건물 지붕 한쪽 끝에 붙은 불은 어둠 속에 번쩍이며 흔들리더니 곧 주변 나뭇가지에도 옮겨 붙었다. 집중치료실은 불타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계속 들려오는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상공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비행기인가? 공습인가? 왜 병원을 공격하지? 왜 우리를? 그러던 중 아무 경고도 없이, 또 다시 귀를 찢을 듯한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나 건물을 뒤흔들었다. 천장이 우리 위로 무너져 내리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전등도 나가 버려서, 우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나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고, 전선에 맞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혼미한 정신으로 흐느끼며 눈을 떴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집에 온 지 벌써 수개월. 오른쪽 무릎에 남은 희미한 상처 외에, 쿤두즈 외상 센터에서 일어난 그 끔찍한 사건은 이제 내 기억 저 밑에 묻혀 거의 잊혀졌다. 업무 보고, 정신과 상담, 명상 기법, 끝없이 쓴 일기 등등…그날 밤의 고통을 떨쳐 내려고 나는 부단히 노력했지만, 불꽃 하나를 보고 악몽을 꾸는 날에는 온갖 기억이 밀려와 어렵게 쌓은 내 노력을 허물어 버리곤 했다.
이렇게 조용히 끝나는 건가 싶어 조금은 아쉬워하던 나의 아프가니스탄 활동을 마치기 2주 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격렬한 교전이 벌어지면서 갑자기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14년 만에 쿤두즈 시는 또 다시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병원에서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겨우 벽시계를 보고서야 늦은 오후라는 것을 알 정도였다. 총알이 빗발치고 폭발이 일어나는 소리들이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이제 막 여섯 번째 수술을 마치고, 개수대 근처에서 천천히 손을 말리는 중이었다.
“의사 선생님, 응급실 환자 중에 누구부터 수술해야 할지 좀 봐주시겠어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지금요?”
“네, 지금요.”
공습 직후 피해를 입지 않은 방에 만들어진 간이 수술실에서 부상자들을 위한 수술이 이루어졌다. 가운데 보라색 스카프를 쓴 사람이 이 글을 쓴 에반젤린 쿠아 박사이다.
바닥에는 못해도 십수 명이 있었다. 응급실 복도 양쪽에 둔 들것에도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전통의상 살와르 카미즈를 입은 여성들도 있었는데 옷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여성들 중 1명은 임산부였고, 또 다른 1명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 해어지고 군데군데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도 있었고, 양쪽 다리에서 피가 흘러 고통 속에 신음하는 어린 아이도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친절한 눈을 한 노인이 나를 멈춰 세우더니, 아프간 남성 같지 않게 내 팔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내게 영어로 이렇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 부탁이에요. 제 아들이 밖에 있어요. 가서 제 아들 좀 봐주시겠어요? 착한 애예요. 제 막내 아들이에요.” 노인은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벽 근처에 둔 들것에 누워 있던 그를 제대로 본 순간, 나는 터져 나오는 숨을 겨우 참았다. 가슴에 입은 상처가 너무 커서 폐 일부가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이미 눈빛은 흐릿했고, 맥박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뭐라도 좀 해보려던 나는 그의 정맥 주사를 조절해 주었다. 그리고 병원 시트로 그의 흉부를 가만히 덮어 두고, 간호사 1명에게 아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하겠다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노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마치 자기 아들에게 두 번째 삶의 기회라도 준 것마냥 내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준 그의 모습은 아마 영원히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2015년 10월 3일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외상 병원이 폭격을 받은 이후 불에 타고 있는 모습
내 악몽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엄청난 굉음, 그리고 우리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던 나무 판자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나의 비명. 그리고 내가 바닥에 쓰러진 그 순간.
“일어나세요! 어서요!”
나는 고통 속에 주춤거리며, 어둠 속에서 그가 누군지 보려고 애쓰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쪽이 기울어진 바로 그 지붕을 보았다. 지하실! 드디어 살았다.
우리는 달려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너무 무섭고도 실망스럽게도, 우리가 들어간 곳은 지하실 창문의 배기 장치 안이었다. 지상에서 2미터 아래, 두꺼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그 곳은 위로 아주 얇은 판이 지붕으로 덮여 있을 뿐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막다른 골목. 우리가 갔어야 할 지하실은 벽의 반대편에 있었다!
우리가 숨은 곳 바로 위쪽 창문 안팎으로 불꽃이 너울대는 것이 보였다. 곁에 있던 동료는 망설임 없이 벽을 타고 오르더니 무사히 구덩이를 빠져나가 밖으로 돌진했다. 나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홀로.
나는 이미 공황에 빠졌다. 화도 났다. 누구한테든 한바탕 퍼붓고 싶었다. 누군가 얼굴을 한 대 날려주고 싶었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전쟁에 연루된 양측이 다 싫었다. 나는 그들이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모든 피해를 직접 보고, 그것이 자기 식구들이라고 한번 상상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도 이 몰상식한 전쟁을 계속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나는 두렵기도 했다. 나는 산 채로 불타 죽기 싫다. 그렇게 쌓였던 좌절감이 터져 나오면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러고 났더니, 놀랍게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생각이 또렷해졌다. 나는 다시 외과의사로 돌아왔다. 오른쪽 구석에 작은 철사 줄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뜨거운 그 철사 줄을 끝까지 붙잡고 움직여, 몇 분 뒤에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바라보니, 장미 정원 근처에서 내 동료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얼굴에 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근처에서 계속되던 총성이 멈췄을 때, 우리는 건물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건물은 우리가 있던 곳에서 몇 미터 거리에 있었다. 중간쯤 갔을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덜컥 겁이 났다. 고작 납치나 당하려고 내가 그 불길을 뚫고 살아남은 건 아니었다! 제발 납치는 아니길.
그 때, 아프간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언제나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오세요, 여기 안전한 곳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