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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이 떠올라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요.”

2014.10.17

2013년 12월에 일어난 정치적 위기 이후로 남수단에서는 전국적인 분쟁이 발생했고, 그 영향으로 현재 1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상황입니다. 인적이 드문 외곽 지역에 있는 피난민들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며, 현장에서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의학 자문위원 마르티에 호튀즈는 피난민들을 만나 건강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한 외딴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아래는 마르티에가 전하는 피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남수단 어퍼나일 주의 지그미르 지역에서 배를 타고 이동 진료를 나가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학 자문위원 마르티에 호튀즈 ©MSF

헬리콥터가 저를 내려준 곳은 남수단 북부 어퍼나일주의 한 외곽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지상 전투가 나시르까지 닥치면서 이곳으로 피난 온 수백 가구들이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보려고 왔죠. 제가 만난 정부 관계자들과 오래된 그곳 지도자들은 제게 ”사람들이 다 배를 곯아요. 도망쳐 오느라 땅에 심을 것들을 전혀 못 챙겨 온 거죠. 소 젖을 짜서 얻은 우유, 밖에서 찾을 수 있는 식용 식물들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죽어가고, 여성들은 출산할 때도 전혀 도움을 못 받고 있지요.”라고 말했습니다.

현지 보건 담당자들도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 설사나 폐렴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많이 봤다고 하죠. 약도 거의 없는 낙후된 보건소에서 일하느라 무기력해진 얼굴들이었습니다. 만뎅에서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텅 빈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저는 통역가에게 분쟁을 직접 겪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곧 무릎까지 물이 올라오는 늪지를 헤치고 움막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다랐고, 거기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나시르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던 로즈는 나시르 시내에서 격렬한 교전이 일어나면서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로즈는 자신이 지낼 수 있도록 움막 한 켠을 내준 가정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를 얻도록 소, 염소를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했습니다. 로즈는, “소들 상태가 좋지 않아요. 지난 몇 주간 7마리를 잃었죠. 하지만 피난민 중에서는 소 한 마리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요.”라며 이어 늪지대 잡초들을 가리키면서 “‘저기 저 초록색 보이죠? 저 풀을 뜯어다가 끓여서 요리를 해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수도도 고장 난 것 같은데 먹을 물을 어디서 구하냐고 물었더니, “늪지에서 퍼오지요. 그래서인지 애들도 아프고, 다 큰 남자들이 아플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 물이 우리가 가진 전부인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그미르에서는 소바트 강가의 작은 마을에 가봤습니다. 지금은 훼손되어 버린 진료소 근처에서 마을 여성 15명과 둘러앉아 얘길 나눴죠. 집을 떠나 이곳에 피신한 분들이 많았고, 다들 분쟁으로 숨진 식구들이 있었어요. 남편을 잃은 분도 몇 분 있었습니다. 분쟁이 일어나면서 어떻게 집을 떠나왔는지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증오와 죽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죠.

프란세스라는 분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질퍽거리는 늪지에 살아요.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내야 하나 날마다 걱정하며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다니죠. 아이들과 잘 만한 안전한 곳을 겨우 찾더라도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요. 살아남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은 다른 사람들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죠……”

끊임없이 걱정할 것은 다만 안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분들은 식구들을 위한 깨끗한 물과 식량을 충분히 구하려고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루시라는 젊은 엄마는 ”해결할 길도 없는 이 모든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어쩔 때는 그냥 모든 걸 스스로 끝내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듣고 있던 다른  분들 모두 말이 없었죠. 루시 옆에 있던 분이 루시를 따뜻하게 안아줬어요. 다음에는 메리라는 분이 지금까지 견뎌온 비참했던 일들을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메리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도 나타냈어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무슨 일이 다가올지는 신만이 아시죠. 하지만 힘들지만 또 다시 하루하루 노력해 보는 거죠. 우리 모두 혼자가 아니니까요.”

2주 후, 저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이 지역을 다시 찾았습니다. 보건소도 여러 곳 세우고, 이동 진료 팀도 꾸려서 운영했습니다. 이동 진료 팀은 입원해서 치료식을 받아야 할 영양실조 아동들을 찾으려고 배를 타고 소바트 강가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닙니다. 다니면서 고장 난 수동 펌프를 고쳐 주기도 합니다.
토르케치 마을에 가서는 그나마 가장 마른 땅을 골라 이동 진료소를 세웠습니다. 거기서 미리 훈련된 이동 진료 팀원들을 만나죠. 그 팀원들은 우리와 만나기 앞서 며칠간 주변 마을에서 영양실조 징후를 보이는 아동들과 임산부들을 다 찾아내어 우리와 만날 때 데리고 옵니다.

첫 번째 아동을 치료하고 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이 손주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등은 굽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으며 팔다리는 빳빳한 막대기 같아 보였고, 두 눈동자에 보이는 하얀 반점은 할머니의 시야를 모두 가렸습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죠.

그런데 함께 온 손녀를 보니 영양실조가 심각한 것 같아서, 아이 팔 둘레를 한번 재봤으면 좋겠다는 뜻을 몸짓으로 전달했습니다. 아이 손을 가만히 잡고 뮤악(MUAC, 팔뚝 굵기로 영양 상태를 측정해주는 도구) 테이프를 팔에 감아봤더니, 정말이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할머니 손을 잡고 의자로 모시고 갔습니다. 동료들에게 부탁하여 그 가족을 우리 프로그램에 등록시켰습니다.

할머니가 프로그램에 등록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나니, 움막에 있던 더 많은 노인 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심각하게 마른 분들이 많았고, 어떤 분들은 영양실조 징후도 보였습니다. 노인들이 이렇게 취약한 상태인데 그동안 아동들에게 집중하느라 우리가 이들을 얼마나 쉽게 지나쳐 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부서질 듯 약한 손을 잡고 있는 동안, 과연 이 분은 그 긴 세월 동안 무엇을 보고 겪으셨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악수를 하려고 내 손을 찾아 더듬거리시면서, 희미한 목소리로 ‘슈크란(고마워요)’이라고 제게 속삭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