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현장소식

뉴욕타임즈, 에볼라와 싸우는 최전선에서 진화하는 국경없는의사회

2014.10.16

<뉴욕타임즈> 게재,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 대응 관련 기사

에볼라와 싸우는 최전선에서 진화하는 국경없는의사회-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에볼라 대응 증강

글 셰리 핑크(뉴욕), 애덤 노시터(프리타운), 제임스 캔터(브뤼셀)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무차별로 번지기 시작했을 때, 그 나라 관료들은 국경없는의사회 에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들은 혼란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에라리온 정부는 우리에게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진 모든 곳에 가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시에라리온의 전 코디네이터 월터 로렌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에라리온 정부가 믿을 만한 에볼라 바이러스 희생자 수 통계도 내지 못한다며 숨김없는 태도로 불만을 제기했다. 로렌지는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이 시에라리온 관료들에게 경고했던 말을 전한다. “우리 활동가들이 ‘에볼라에 관해서는 아마추어 같은 일 처리를 허용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를 보내야 합니다’라고 당국자들에게 엄중히 말했습니다.”

카일라훈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 치료센터 ©Magali Deppen/MSF

그 후로 즉시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에라리온 동부 카일라훈에 치료센터를 열었다. 수풀을 헤치고 12일 만에 급히 만든 치료소였다. 그리고 2주 전 남부 도시 보(Bo)에 또 다른 치료센터를 열기 전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하루 24시간 3교대 근무 조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비가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장비가 고장 나서 치료소 건립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지난 3월, 이번 서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에 최초로 대응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여전히 이 지역에서 가장 앞선 국제 의료 구호단체로서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현지 의료체계가 거의 붕괴되고 미군을 포함한 외부 단체들 대부분이 구호 지원 약속을 아직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에라리온, 기니, 라이베리아에 치료센터 6곳을 운영 중이며 추가할 계획도 있다. 이번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은 에볼라 환자 대다수를 치료해 왔는데, 과거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나 개발도상국들에서 다른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몇 주 사이 국경없는의사회는 한층 에볼라 대응 활동을 늘렸다. 현지 직원 수를 3배로 늘리고, 브뤼셀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에볼라 훈련 센터를 최초로 외부인에게 개방해 에볼라 퇴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활동 규모를 증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직까지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로 한 거죠. 우리는 위험하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손을 놓지 않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국제 회장 조앤 리우 박사의 말이다.

전쟁 지역을 비롯한 위험 지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운영해 온 국경없는의사회가 다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룬 비결을 설명해줄 한 가지 단초는, 바로 이 단체의 독립성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정부 및 다른 기관에 의존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러기 위해 오지 주둔 군대가 그러듯이 전 세계에 인프라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브뤼셀에 있는 최첨단 물류 센터는 지난 몇 달 동안 마스크, 안전복, 대형 천막, 의료품 수십 만 개를 서아프리카에 공급했다. 이들은 필요한 물자를 24시간 내로 현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뤼셀의 물류 지원팀은 활동가들의 체온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장비를 갖춘 천막과 감염된 체액을 흡수할 수 있는 시체 운반용 자루를 개발하거나, 정기적으로 소독해야 하는 젖은 부츠를 빨리 말리는 방법을 찾는 등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브뤼셀 물류 센터의 전문가들은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역을 세밀하게 나눠 설계했다. 그 치료센터는 출입 지점의 일원화, 고위험/저위험 구역의 엄격한 분리, 2인 1조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오염된 보호 장비를 제거하는 동안 서로를 지켜봐 줄 수 있는 공간 등이 특징이다. 지난달, 에볼라 대응 활동을 하던 프랑스 간호사가 에볼라에 감염되자 안전 조치는 더욱 강화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군의 현장 활동가와 기부자들에 의존한다. 이 기부자들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뚝심, 다들 기피하는 지역에서도 의료 구호 활동을 해온 국경없는의사회의 성과를 보고 수십억 달러의 기금을 보내 주었다.

물론 분쟁에 연루된 어느 정부가 국경없는의사회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다른 구호단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의 잘난 척하는 태도, 자신들을 안전 불감증으로 보이게 만들 만큼 엄격한 국경없는의사회의 안전 수칙, 장기적인 지역 보건 체계 개발에는 관심이 없는 긴급구호 중심 활동에 불만을 제기할 때도 있다.

그러나 199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국경없는의사회의 성과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의 에볼라 전염 사태를 끝내기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지만 이번 에볼라 발병 초기에 늑장 대처로 국경없는의사회의 비판을 받은 다른 단체의 지도자들조차 최근 수개월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이 위험 지역에서 일궈낸 성과를 칭송할 정도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부총재 브루스 에일워드는 국경없는의사회를 프랑스어 약자로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위험 상황에서도 일하는 MSF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용기의 동의어입니다. 이런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가 얼마나 적은지 생각해 보면, 이들의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보여줍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안락함을 거부하는 견고한 문화

국경없는의사회는 스스로를 하나의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감수성이야말로 단체 운영에 힘을 불어넣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단체의 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스스로 비판하는 연구소 CRASH를 세웠다. 이곳의 문화는 안락함을 허용하지 않는 견고함을 자랑한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들은 정부나 유엔(UN) 직원들이 머물곤 하는 호화 호텔을 거부하고,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든 가장 위에 있는 임원이든 마찬가지로 다른 구호 단체의 동일 직책급보다 훨씬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한다.

회색 후드 티에 낡은 검정 재킷을 입고 담배를 연신 무는 47세의 장 플레팅크스는 체첸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인도네시아에서 잔뼈가 굵은 구호 전문가이며 현재 브뤼셀에서 물류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자문위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며, 도움이 되기보다 일만 더한다고 판단하는 기부는 거부한다. (그는 얼굴 보호용 마스크가 매달 20만 개 필요한 시점에 마스크 1만 개를 주겠다고 한 업체를 두고 “그건 장난이죠”라고 말했다.) 플레팅크스는 “최대한 한 푼이라도 현장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써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비아프라의 분리 독립군을 상대로 싸우던 1960년대 후반에 결성되었다. 적십자사 소속 젊은 프랑스인 의사들이 반군들이 굶주리는 지역에 식량을 공급하겠다고 하자 나이지리아 당국은 이를 거부했고, 의사들은 적십자사의 중립과 침묵 서약을 깨고 적십자사를 뛰쳐나왔다.

이들이 결성한 모임에서 1971년 국경없는의사회가 설립되었다. 초대 사무총장 베르나르 쿠시네는 미디어에 정통한 좌파로서 훗날 프랑스 외무장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의 사명은 간단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이지요.”

그 뒤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환자들이 고통을 겪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정치적, 군사적 경계도 개의치 않았고 허가가 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창립자는 이를 “개입의 권리”라고 불렀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은 공공연한 현장 증인이 되었다.

오늘날 국경없는의사회는 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의료 위기 상황에서 긴급 의료 구호에 집중하는 몇 안 되는 조직 중 가장 큰 단체다. 다른 단체들은 구호를 제공하되 주로 의료 체계 구축에 초점을 맞춘다. 국경없는의사회 재무보고서에 의하면 작년 기부금 13억 달러의 대부분은 전 세계에서 모인 민간 기부금이었다. 정부 기관에서 온 자금은 9퍼센트에 불과했다. 작년 국경없는의사회는 보건, 물류, 기타 전문가 약 6000명을 67개국에 파견했고 현지인 3만 명을 고용했다. 올 들어 그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기니에서 에볼라 발병이 확인되었을 때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미 서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이었다. 그 중에는 그 지역의 고질병이자 치명적 질환인 말라리아 퇴치에 여념이 없는 팀도 있었으며, 옆 나라 시에라리온에서는 산부인과와 소아과 진료를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난민 캠프에서 홍역, 뇌수막염, 콜레라를 치료하고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소규모로 발생한 에볼라 감염을 치료하면서 전문성을 키워온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번에도 즉각 에볼라 바이러스퇴치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4월 일군의 활동가들이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에볼라 치료소를 세웠으며 바이러스가 번질 것을 대비하여 직원을 훈련시켰다. 여름 내내 몬로비아에 환자가 급증하자 국경없는의사회는 국제 활동가를 늘리고 현지인 직원을 투입하여 바이러스 확산에 보조를 맞춰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에볼라에 대해 처음 들은 뒤로 에볼라 발생 지역에서 일하는 꿈을 품었던 29세 미국인 현장 활동가 에밀리 벨터스는 시에라리온에서 지역사회 지원 구축을 도왔다. 그녀는 6주 만에 현지 직원 700명을 고용했고 예산도 상당히 늘렸다. “저에게 그럴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어요.” 그녀의 말이다.

멕시코에서 타지키스탄에 이르기까지 여러 긴급구호 현장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일해 온 59세 미국인 간호사 메리 조 프롤리도 시에라리온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효과적 운영을 지역 보건 직원의 공으로 돌렸다. “현지 간호사들이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싶어요. 이곳에는 안전을 보장해 줄 제대로 된 장비가 있으니까요.’ 이곳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안전하다는 느낌, 그리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상황이 악화되자 국경없는의사회는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했다. 지난 8월 국경없는의사회 리더들은 다른 구호단체에 긴박한 경고를 전했고 이는 다른 단체나 국가가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스스로의 활동에 대해 토론과 비판을 하는 연구소 CRASH의 연구 책임자 장-에르베 브라돌 박사는 이러한 활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젊은 후배들에게 역동적인 운영과 탁월한 기술적 지원 구조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인 관심을 끌어야 하는 적합한 때를 파악하는 요령도 가르칩니다.”

타 단체들의 지지부진한 활동

다른 단체들 대부분이 여전히 구호 채비를 갖추는 사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앞으로 나아갔다. 현장 활동가 중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30퍼센트에 그치며, 이번 여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채워야 할 자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에볼라 프로젝트에 대해서만큼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선발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서, 위기 대응 경험이 없는 의료인은 아무리 자격을 갖췄다 해도 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브뤼셀에서 지원자 훈련을 강화해왔고 전문가들 중 일부를 서아프리카의 다른 현장 활동지로 이동시켰다.

브뤼셀의 물류 팀은 인원을 보강하고 공급자를 늘렸으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책을 새로 고안하거나 원래 있던 방법들을 수정했다. (현재 붉은 색 쾌속정이 수상 앰뷸런스로 단장하고 거대한 이곳 창고에 대기 중이다. 규모가 작은 에볼라 발발 지역의 환자들이 있는 콩고로 향할 배다).

되풀이되는 염소 소독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바코드 달린 환자용 팔찌, 오염된 체액을 빨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진공청소기, 험준한 지형에서 시체를 운반하도록 고안한 수레. 요청한 물품 목록만 봐도 현장 활동이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지 알 수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물류 팀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장착된 컴퓨터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기니에 보낸 그 컴퓨터는 환자가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수풀 속에서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살균 키트 7만 개를 환자 가족뿐 아니라 몬로비아의 모든 택시운전사를 포함한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물류 책임자 플레팅크스는 현재 상황을 “에볼라 바이러스는 멈추지 않는 지진과 같습니다. 공급망 측면에서 보면 응급사태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에라리온 내의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는 중이다. 마케니나 프리타운 중 한 곳이 될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라이베리아에서는 수도 몬로비아의 250개 병상 센터의 진료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센터는 지금까지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한 에볼라 치료센터 중 가장 큰 규모의 시설이다. 이곳 활동가들은 탈수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정맥주사를 놓을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정맥주사는 시간이 걸릴 뿐더러 주사바늘 사고로 의사와 간호사를 감염시킬 위험이 있다.

에볼라 대응을 지휘하는 벨기에 사무소의 책임자 크리스토퍼 스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어떤 타협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진료의 질적 향상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여파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지 직원이나 활동가가 분쟁 지역에서 살해되거나 납치되는 일은 있어도 에볼라에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3월 이후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16명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 중 9명이 사망했다. (대변인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은 지역사회에서 감염되었으며 치료센터에서 일하다 일어난 감염은 없었다. 국제 활동가 중 유일하게 감염된 프랑스 간호사는 몬로비아 치료센터에서 활동했고, 최근 완치되어 파리에 있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국제 회장 조앤 리우 박사는 활동가들의 헌신과 조직의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 단체가 늘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에게는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 다들 더 많은 지원금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치료소만 지어 놓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구호를 하려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켜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기사의 원문은 <뉴욕타임즈> 2014년 10월 10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 원문 보기: http://bit.ly/NYT_eb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