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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일상에 ‘평화’가 깃든다는 것

2025.02.27

이름: 이효민

포지션: 마취과의 (Doctor Anaesthetist)

파견 국가: 남수단

활동 지역: 아웨일(Aweil)

활동 기간: 2024년 10월- 2024년 11월 (2개월)


 

남수단을 10년만에 다시 방문하셨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이번에 다녀온 남수단 아웨일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지역으로, 치안이 꽤 안정적인 편입니다. 저는 10년전 남수단 벤티우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당시는 내전이 극심했던 시기라 내전이 멈춘 현재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어요. 더 이상 거리에 무장한 군인들이 다니지 않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습니다. 긴장도도 훨씬 낮아졌고 안정된 느낌이었어요. 내전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죠.

이번에 다녀오신 활동 지역에는 어떤 의료보건 문제가 있나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아웨일 주립병원에서는 15세 미만 환자를 위한 소아과와 소아외과, 그리고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고, 말라리아 치료를 위한 병동을 확장하고 있었어요. 이 지역 역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이고, 성인의 경우 말라리아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5세 미만의 아동과 임산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근무한 병원 전반적으로 말라리아 대응이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뱀에 물려 병원을 찾는 환자도 매일 있었어요. 이런 경우 뱀의 종류에 따른 신속하고 정확한 항독소 치료가 중요한데, 뱀에게 물려도 바로 병원에 오지 않아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민간요법이나 알 수 없는 주사 치료를 남용해서 상처가 깊어지거나 감염되는 일도 자주 발생했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주사 치료를 받고 엉덩이 등 피부에 고름이 생겨 병원을 찾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심한 경우 고름을 빼내고 항생제 치료를 하는데 보통 한 번에 낫지 않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이러한 치료를 반복해야 합니다. 상처가 깊은 경우에는 고통이 크기 때문에 수면마취를 한 뒤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을 하기도 했어요.

지역 내 병원 자체가 많이 없기도 하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역 주민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인식도 높지 않았습니다. 민간 요법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매우 안타까운 점이죠.  
 

아웨일 주립병원의 말라리아 검사 및 치료 구역.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나요?

결과가 좋지 않았던 환자가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파견 첫 주에 복막염이 의심되는 신생아의 수술이 있었어요. 장티푸스로 인한 천공이 의심되었는데 이후로 수술을 두 번 더했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드물지는 않았지만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어린 환자였고, 당시 몸무게가 4kg 도 안 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치료는 했지만 스스로 회복하기에는 너무 약했던 거죠.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한 번은 과다 출혈로 응급실에 온 산모의 수술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궁파열이 예상되어 수술을 진행해보니, 자궁이 아니라 비장이 문제였어요. 알고 보니 이 산모는 근처 시장에서 누군가에게 맞아서 비장이 파열된 거였죠.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수술 이후 여러 수치가 좋지 않아 경과가 걱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이틀 뒤에 산부인과에 갔을 때 다행스럽게도 건강히 태어난 아기와 함께 걸어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기뻤어요. 두 달도 안 된 아기를 잃기도 했지만, 아이도 산모도 함께 살린 일도 있었던 거죠. 

다양한 결과를 마주한 환자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힘드실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현장을 찾는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이거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치료하던 환자들이 사망하는 등의 상황을 마주할 때면 좌절감도 많이 느끼고 심적으로 힘들었죠. 하지만 활동을 몇 년 동안 반복하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환자를 치료하지만, 지역의 식량이나 보건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아이들을 잃는 일은 계속 반복됩니다. 조혼 풍습, 내전 등 국가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환자는 끊임없이 생깁니다. 좌절하게 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우리와 같은 인도주의 의료단체가 들어가 활동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다시 현장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건 확신해요. 

현장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어떤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하셨나요?

아웨일에서 초기에는 하루에 20~30건의 수술을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환자가 몰려들다가 하나 둘 상태가 호전되어 병원의 환자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뿌듯했죠. ‘우리가 없었다면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료 병원이 아니라면 이들은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으로 지역사회 아웃리치(Outreach)가 있습니다. 이동진료소를 운영하며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하던 환자들을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직접 찾아가 환자를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활동을 보면 우리가 정말 실질적인 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요.

이외에도 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역의 산모 건강이 증진되거나, 말라리아 유병률과 같은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의 활동이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동료와 환자 상태를 논의하고 있다.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이번 활동에서도 정말 바쁘게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보통 아침 8시 수술실에 모여 회의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수술팀, 마취과, 물리치료사 등이 함께 모여 전날 밤의 상황을 공유하고 그날의 일정을 이야기한 뒤 병동 회진을 시작합니다. 중환자실부터 시작해서 소아과 병동, 신생아 병동 등을 모두 돌면서 외과적 문제가 없는지 각 환자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회진 후에는 보통 마취과 간호사 두 명과 함께 일했어요. 평일에는 일찍 끝나면 숙소로 돌아오지만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간호사들의 근무시간은 오후 5시까지라서, 밤에는 혼자 일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응급 호출이 있었던 것 같아요. 토요일은 공식적으로 쉬는 날이긴 한데 상태가 안 좋거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 경우 병원으로 향했죠.

한국의 일반적인 근무 환경과 비교하면 업무강도는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지역에서 활동할 때 마취간호사 없이 혼자 일했던 경우도 있어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대비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업무강도 때문에 마취과 전문의 활동가는 활동기간이 대체로 한 달, 길어도 6주를 넘지 않습니다.

아웨일은 치안이 안정적인 편이라 해지기 전에는 병원 밖을 걸어 다닐 수도 있었어요. 숙소에서 병원까지 10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기도 하고 근처 시장을 구경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활동지에서는 비의료 분야의 한국인 동료도 있어서 주말에 수다도 떨고 가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활동지에서 한국어로 수다떠는 게 얼마나 큰 활력소인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어요(웃음). 동료가 음식 솜씨도 좋아 카레, 야채 튀김, 오이무침 등등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많이 얻어먹었는데, 특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주말에 같이 끓여 먹었던 짜장라면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벌써 17번째 활동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에서 활동가님께 특별하게 기억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번 활동을 통해 내전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현재의 아웨일은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에요. 경제적인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활동가로서도 주말에 숙소 주변을 30분도 넘게 산책할 수 있는 것, 인근 시장을 갈 수 있다는 것은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입니다. 저는 10년 전 남수단의 내전이 극심했을 당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정해진 장소에만 있어야 했어요.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는 거리에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어요. 

개인의 삶에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화가 왜 필요한지, 전쟁이 얼마나 모든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그 모든 변화의 이유를 온몸으로 목격한 느낌입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분쟁 없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