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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방글라데시: 환자에게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데 타협은 없다

2025.01.09

이름: 김유현

포지션: 간호 활동 관리자(Nursing Activity Manager)

파견 국가: 방글라데시

활동 지역: 콕스바자르

활동 기간: 2024년 5월 - 2024년 11월(6개월)


방글라데시에서 국경없는의사회 간호 활동 관리자로 근무한 김유현 활동가. ©김유현/국경없는의사회

6개월 동안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활동하고 오셨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6개월간 근무하고 돌아왔습니다. 콕스바자르는 대규모 로힝야 난민 캠프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에요. 병원 이름은 ‘언덕위의 병원(Hospital on the Hill)’이었는데요, 난민 캠프 중앙에 위치한 2차 병원이었습니다. 입원환자는 50여명, 외래 진료를 보러오는 환자가 하루에 300명 정도, 그리고 응급실에는 200-300명이 오기도 하는 큰 병원이었죠. 그곳에서 저는 간호 활동 관리자(Nursing Activity Manager)로 일했어요. 120여명 되는 간호사 팀을 운영하고, 의료 보조인력, 병원 자원봉사자와 의료통역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병원의 감염 예방통제팀과도 협력했죠.

로힝야 난민 캠프의 의료보건 상황은 어땠나요?

미얀마 상황이 악화되면서 난민 수가 급증하고 있는 시기였어요. 하루에 난민이 300명씩 캠프로 유입됐고, 가장 많았을 때는 한달에 30,000명이 밀려들어온 적도 있다고 해요. 난민 캠프 내에서도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매일같이 총격이 있을 정도였어요.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새로 유입된 난민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다른 기관에서는 대부분 유엔난민기구에 난민으로 등록이 완료되어야 식량이나 다른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는데, 국경없는의사회는 아직 등록이 안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진료를 하고 약을 제공해요. 그런 점 때문에 난민들이 우리 병원을 찾는 것 같아요. 게다가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치료 효과도 좋기 때문에 난민들이 이미 잘 알고 있고,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치료받기 원해요. 환자들이 며칠을 걸어서라도, 무리해서라도 우리 병원으로 오는 이유죠.

난민은 늘고 있지만, 전반적인 지원은 줄고 있습니다. 보안이나 이동제한 등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비정부기구들이 철수한 상황이었죠. 국경없는의사회가 유일하게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단체였어요. 그래서인지, 우리 프로젝트는 운영을 시작한지 5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모든 기간을 통틀어 받은 환자 수가 최고치였어요. 말라리아나 뎅기열,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급성 호흡기성 장애 환자가 급증한 시기였는데, 비정부기구들의 활동이 중단되고 약품 수송이 지연되면서 약도 부족해지고, 무척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예를 들면 8월에 도착했어야 하는 약이 10월이 되어서야 도착한 일도 있었어요. 현지에서 약을 구입해서 사용했지만 그 마저도 한 달 이상 걸렸습니다. 방글라데시 내 국경없는의사회의 다른 운영센터에 연락을 취해 공급받거나 다른 국제 비정부단체와 협력해 약을 구하기도 했죠.

언덕 위의 병원에는 주로 어떤 환자가 많았나요?

우리 병원에서는 B형 간염, C형 간염, 심장 질환, 호흡기 질환, 천식, 당뇨병, 고혈압 등의 비전염성 질환 진료를 제공했는데, 특히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중심으로 치료했어요. 간염은 약이 고가라 치료를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중증 환자들이 무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었죠.

 

당뇨병 환자에게는 인슐린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바늘이나 바늘 보관함 등을 제공하고 사용하는 방법까지 교육해서 질병에 맞게, 환자의 상태에 맞게 질병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이 다른 기관과 다른 점이었어요.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퇴원 후 복용해야 하는 약과 후속 치료까지 제공했죠. 간염 환자의 경우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으면 간암 등으로 발전할 수 있고, 심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어요. 그래서 꼼꼼한 관리가 필요한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그런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죠. 이렇듯 치료의 질과 효과가 좋아서인지, 로힝야 난민 사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었답니다.

 

사실 병원의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서 놀랐어요. 특히 치료의 질 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감염 예방통제 체계부터 운영 정책이나 의료 물품, 환자에게 제공하는 치료까지, 상당히 질이 높은 편이었어요. 물론 최고가의 치료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한국의 병원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환자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 갖춰져 있어야 할 것들은 너무나 잘 갖춰져 있었죠.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실제로 환자에게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장비, 물품에는 타협이 없었습니다.

콕스바자르 소재 '언덕 위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유현 활동가 ©김유현/국경없는의사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이곳에 도착한 지 5일 정도 되었을 무렵 저는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 소아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요. 저는 간호사라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일에는 어느정도 익숙한 편이었지만, 이번엔 아이 엄마의 비명소리가 마음에 사무쳤어요. 엄마로서는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이 병원에 오는 것 밖에 없었어요. 한국이었다면 어떻게든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로힝야 난민들에게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고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한 곳 뿐이라 이 곳에 왔는데, 결국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사망한 것이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 ‘내가 이곳에 있는동안 최대한 사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활동하시는 동안 보람 있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우리 병원에서는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제공해줬는데, 한 환자가 당뇨병으로 시력이 안 좋아지고 보호자가 지속적으로 간병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인슐린 투여를 못한 경우가 있었어요. 계속 저혈당 쇼크가 와서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래 진료에서 환자에게 교육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보호자도 방법을 몰라 인슐린 투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그래서 입원하는 환자에 한해서는 별도의 세션을 마련해서 환자가 스스로 투여하거나 주보호자가 투여해줄 수 있게끔 교육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명확하게 인지한 다음 퇴원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1:1 대면교육을 통해 간호사가 인슐린 투여하는 방법을 꼼꼼히 알려줬어요. 이후에는 쇼크로 입원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전에 입원했던 환자도 다시 봤을 땐 컨디션이 좋아보였어요. 환자에게도, 병원에도 보탬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이렇게 프로세스만 조금 바꿔도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을 보고, 많은 걸 느꼈습니다.

4명의 팀원들과 함께한 김유현 활동가 ©김유현/국경없는의사회

어려운 일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간호관리자로서 관리해야 하는 직원이 많고 까다로운 상황도 종종 있었어요. 한 번은 지역 전반에 이동제한이 생겨 간호사들도 병원에 오갈 수 없는 상황이 있었어요. 콕스바자르에 출퇴근하는 간호사들이 길이 막혀 병원으로 올 수가 없었던 거죠. 병원에 환자는 몰리는데 직원이 없으니 매일 병원을 운영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고맙게도 병원 내에서 출근이 가능한 다른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늘려줘서 어느정도 대처할 수 있었어요. 하루에 12-16시간씩 일하는 직원도 있을 정도였죠. 서로 돕고 헌신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해 준 덕분에 그 기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거의 2주 동안 이어졌던 것 같네요.

사실 오전 회의 때 불만을 표시하는 직원도 있었어요. “나도 출근하는 것이 어렵고, 가능하면 안 나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때 우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한 말이 참 기억에 남아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런 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예요.” 병원 운영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 정신이 없고 지치는 나날이었는데, 그 한 마디에 힘을 얻었어요. 직접 내 눈으로 우리 말고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내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는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죠.

이번이 첫 활동이었는데, 활동을 마친 소감은 어떠신가요?

개인적으로 아직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감격스러웠어요. 국제 활동가 중에 정말 멋진 분들이 많았는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도 풍부하고 이 일에 대한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단체에 신뢰가 생겼죠. 현지 직원 중에서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단체가 일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인 것이 부끄럽지 않았죠. 단체가 재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는 특히 예산 사용에 대한 결정을 굉장히 까다롭게 하는 편이에요. 관리자 입장에서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 단체가 꼭 필요한 곳에 재정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단 몇 원이라도 정확하게 확인하고, 구입하려는 물품이 있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 또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요. 후원자님들께서 이 과정을 보신다면 ‘내가 낸 후원금이 잘 쓰이고 있구나’라고 안심하고 뿌듯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IMS 동료들과 함께한 김유현 활동가 ©김유현/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서의 일상은 어떠셨나요?

사실 숙소에 대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는데, 에어컨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전기가 끊길 때는 종종 있었지만요. (웃음) 최소한의 개인 공간이 있다는 점이 감사했고, 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와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인사 담당자가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써줘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활동가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분께서 일부러 기호에 맞는 음식이나 영양에 좋은 음식을 준비해주기도 했죠. 

 

콕스바자르에는 바다가 있어서, 여가시간엔 바다에 가서 이따금씩 업무에서의 해방감을 누리기도 했어요. 한 시간 정도라도 동료들과 일몰도 보고, 해산물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죠.

 

난민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제 단체 중에는 활동가 숙소가 도시에 있어서 멀리 출퇴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숙소는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물론 그만큼 환경은 열악할 수 있지만, 긴급한 상황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이유였어요. 국경없는의사회의 정체성과도 맞닿은 부분인 것 같아 더욱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한두 달 쉬고 다음 활동을 가고 싶어요. 다른 프로젝트는 또 어떨지 궁금해요. 프로젝트 마다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다고 들어서, 또 다른 자극을 받고 다른 역량을 또 키워보고 싶어요.

 

지난 6개월, 난민 캠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그곳의 아이들을 볼 때였어요. 아이들 중에는 캠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캠프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자신이 어떤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캠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국가를 선택하지도, 부모를 선택하지도 못하지만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 활동 현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김유현/국경없는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