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준혁
포지션: 기술직 관리자(Logistics Manager)
파견 국가: 우간다
활동 지역: 카세세(Kasese)
활동 기간: 2024년 4월- 2024년 10월 (6개월)
국경없는의사회 우간다 카세세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이준혁 활동가 ©MSF/이준혁
첫 활동을 다녀오셨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우간다의 카세세 지역에서 기술직 관리자로 6개월간 근무하고 돌아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카세세에서 10-19세의 청소년을 위한 특화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청소년의 필요에 맞는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특히 성•생식 보건 관련 서비스, HIV나 겸상적혈구빈혈을 가진 환자에 대한 치료와 더불어 사회적 또는 정신건강적 지원을 제공하죠.
이 지역에는 13 - 18세 청소년에게 자녀가 있는 경우가 꽤 있어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는 산전•후검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나 체유두종바이러스(HPV), 기타 성병 관련 예방 교육을 실시해요. 안전한 임신중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방 차원의 지역사회 참여 활동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보건증진 담당자가 지역사회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각 가정을 방문해서 기타 감염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진행했어요. 이 지역에는 불안한 치안과 의료시설이 부족한 환경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거나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교육 환경도 열악한 편이라 특별히 ‘지식센터’라는 공간을 마련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샌들이나 바구니 만드는 작업을 가르쳐주는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죠.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지역에서 직접 활동하는 유일한 국제 단체였어요. 루코키 지역의 보건소나 콩고민주공화국과의 접경지역인 부에라의 병원에 환자 이송이나 외래 진료를 지원하기도 해요. 기술적인 영역으로는 이런 의료시설 내 환경을 개선하는 일, 특히 의료시설이나 위생, 급수 시설을 필요에 따라 확충하거나 재건해주는 역할을 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산과 병동에 병상이 부족해 산모가 바닥에 누워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경우 병동을 새로 만들어주고 산모들이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또 다른 예로는 2019-2020년, 2022-2023년 에볼라 유행으로 인해 국경없는의사회가 루코키와 부에라 지역의 병원에 감염 예방 통제 시설을 설치하는 일을 지원한 적이 있는데, 현재는 엠폭스에 대응하는 데 사용되고 있죠. 이렇듯 의료 제반 시설을 확충하고 개선하는 일을 우리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 이준혁 활동가 ©MSF/이준혁
지역의 의료보건 상황은 어떤가요?
이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 토착 민족들은 가파르고 원시적인 환경인 르웬조리 산맥 자락에 주로 거주해요. 언덕배기에서 농사를 짓거나 석탄을 캐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자연재해가 잦아 인명피해도 많은 편이에요. 기본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낮을 뿐 아니라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도 많죠. 카세세 인구 100만명 중 60만명 정도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의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고 있어요. 특히 청소년은 전체의 60% 이상, 임산부는 70% 이상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또 댐이나 도로와 같은 여러 도시 기반시설이 붕괴되면서 생활 환경이 열악해진 경우도 많아요. 댐이 무너져서 물이 오염되면서 수인성 질병이 확산하는 경우도 있고, 도로가 황폐화되어서 안 그래도 낮은 의료 접근성이 더 저해되기도 하고, 에이즈가 성행하는데도 국가 차원의 대응이 부족한 경우도 잦고요. 낫적혈구빈혈증도 이렇게 방관되고 있는 질병 중 하나이고요. 이럴 때 국경없는의사회가 개입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직 관리자는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모든 의료활동은 물류 및 기술적인 지원을 필수로 수반합니다. 기술직 관리자가 하는 역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수송인데요, 예를 들면 활동에 필요한 물품의 재고를 관리하고, 품질을 확인하고, 의료팀과 공조해서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의료시설 건설이나 보수 작업을 진행하기도 해요. 의료시설에서 폐기물 처리가 원활하도록 폐기물 소각장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긴급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물자와 프로토콜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의료팀에서 필요한 제반 업무를 지원합니다. 모든 물류의 핵심은 적시적소에 지원을 제공하고,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특히, 의료분야는 생명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더욱 민감합니다. 의료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문제가 발생하기 전 미리 모든 걸 준비하는 것이 바로 우리 기술직 팀의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과 제반 지원 품목 현황을 체크하는 이준혁 활동가 ©MSF/이준혁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10살 정도 된 씩씩하고, 항상 웃던 한 아이가 기억에 남아요. 화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얼굴부터 상체의 반 정도에 걸쳐 2도 화상을 입은 환아였어요. 가족들의 돌봄도 못 받고 있는 아이였죠. 항상 우리 시설에 와서 책도 읽고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아이를 보면 우리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결여된 부분을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커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화재로 집을 잃었을 때 아무런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대견했죠.
숙소 바로 옆에는 엄마와 자녀 8명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있었어요. 제대로 된 문도 없고 커튼으로만 겨우 막아놓은 집이었어요. 가장 큰 아이가 14살이었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농사일을 돕고 동생들도 다 챙기더라구요. 이웃들과도 허물없이 지내고, 우리 직원들에게도 살갑게 대하는 밝고 성실한 친구였어요. 그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아이를 보면서 꿈과 희망, 가정에 대한 애정,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의 일상은 어땠나요?
우간다는 대통령과 정부가 존재함과 동시에 각 지역별 왕국과 수십 여개의 소수 부족이 함께 지내는 나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도 50가지가 넘어요. 카세세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 중 하나인 루콘조인들은 춤과 노래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도 무척 친근하게 대해주었죠.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똑같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물 한모금에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에 대한 접근은 우리보다 낫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으로 인한 아픔, 열악한 교육이나 의료 환경으로 인한 상실이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것을 느꼈어요. 이 아픔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어쩌면 국경없는의사회가 하고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기술과 지식을 전달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국경없는의사회가 없어도 의료 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주된 활동은 현지 보건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우리는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의료보건 시설 내 활동중 모습 ©MSF/이준혁
현장에서 직접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역사회에 온전히 동화되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많은 국제 구호단체가 현장에서 하는 일이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직접 현장에 와서 경험해보니 인도적 지원이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많은 시스템에 더불어 많은 이들의 노력이 존재하더라구요. 지역정부나 유관단체와 끊임없이 소통해가며, 지역사회와 동화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엿볼 수 있었고요. 실제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활동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지역주민들도 확실한 인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카세세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지역사회에서 반감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현지에서 고용된 직원들이 그간 큰 역할을 해서 점차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해요. 실제로 현장에서 국제 활동가보다 현지 직원들이 우리 활동의 근본적인 역할을 해요. 지역사회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이죠.
뿐만 아니라 국경없는의사회에는 적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부패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 있어요. ‘독립적인 단체’의 실질적인 강점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권한이 분산 되어있는 구조이고, 전문 분야별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편이에요. 여러가지 부작용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감사제도가 확실해요. 비리나 남용, 오용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 감독을 하죠. 자금을 투명하게 운영하려는 단체의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우간다 카세세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실에서 ©MSF/이준혁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육군 대위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복무 기간 동안 다양한 인류사와 전쟁사에 대해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관점을 한 가지 얻었는데, 바로 ‘연쇄성’입니다. 역사적으로, 한 지역의 분쟁이나 팬데믹 현상은 주변 국가뿐 아니라 전지구적인 영향을 주었죠. 완전한 분리는 가능성이 희박하고 봐요.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반대로 옳은 일을 하면 그것 또한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지구적인 안전과 안녕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혹시 구호활동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우선은 외국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저도 일상에서 짧은 시간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배운 영어로 현지에서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답니다. (웃음) 안전에 대해서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1순위로 두고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위험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의 모든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담당 부서가 있고, 안전을 담당하는 부서도 따로 있어요. 모든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단체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혹시 ‘국경없는의사회가 너무 위험하거나 무모한 활동은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후원자님이 계시다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준혁 활동가 이야기 동영상으로 만나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