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윤호일
포지션: 내과의(Medical Doctor)
파견 국가: 수단
활동 지역: 움라쿠바(Um Rakuba)
활동 기간: 2022년 6월 – 12월
수단 활동 중 만난 아이들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
수단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제가 활동한 수단 움라쿠바에는 인접국가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전때문에 국경 근처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느닷없이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살기위해 목숨을 걸고 달아나 수풀 속에 며칠씩 숨었다 겨우 강을 건너온 것이죠. 이런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캠프가 꾸려지면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지원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2년정도 되어가네요.
분쟁과 피난에 대응한 긴급구호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환자의 약 60% 정도가 수단 주민이고 다른 40% 정도가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이들을 위해 1차 의료를 제공하고 있고, 외래 진료소, 응급실, 입원실, 영양 치료 센터, 분만실, 정신건강 진료소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활동지역의 가장 심각한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환자를 주로 보셨나요?
우선 풍토병인 흑열병(내장 리슈마니아증) 환자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어요. 말라리아는 흔하고요. 영양실조 환자도 많았습니다. 영양실조로 오는 아동환자 중 95%가 수단 주민이었던 것 같아요. 수단 주민들은 아이를 가능한 많이 낳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보통 큰 아이가 젖을 떼기 전에 또 임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아이들이 적절한 영양을 못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매달 사망례 분석을 해보면 사망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은 영양실조였어요.
모자보건 관련 문제도 심각했고, 각종 외상과 화상 환자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가정집 지붕이 짚으로 되어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을 때는 등 전반적인 주거 환경이 낙후되어 있어서 화재가 많은 편입니다. 그 외에도 뱀이나 전갈에 물려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까지… 정말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수단 활동 중 만난 아동과 함께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
난민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짐을 싸서 집을 떠나온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마을에서 총소리가 들려 곧장 도망쳐 나와서는 정말 운 좋게 난민 캠프에 도착한 사람들이에요. 마을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고,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가 없죠. 난민 캠프에 들어오고 나면 이곳에서 나가기가 힘들어요. 사실 ‘멘탈이 붕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축구 보면서 환호도 하고… 그게 저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사람이 어떻게든 다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복수가 찬 젊은 남성 환자였어요. 계속 복통을 호소했고, 체중도 급격히 빠지고 있었죠. 결핵성 복막염이 의심돼서 복수를 빼는 시술을 했습니다. 파견 이후 복수 천자*를 처음으로 시행했던 환자였죠.
*복수 천자: 복수를 채취해 검사를 시행하거나 복강 내에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고여 있는 복수를 제거해 복부 불편감을 감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 복수가 증가하면 복통이나 호흡 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검사 장비가 불충분하다보니 쉽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정황상 결핵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있어서 결핵 치료를 시작했어요. 이후 병원 밖에서 우연히 이 환자를 마주쳤는데요,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현지 직원들에게 제가 가진 의학적 지식과 술기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복수∙흉수 천자, 뇌 척수액 뽑는 시술, 기흉이 있을 때 가슴에서 공기를 빼내는 시술, 제가 현장을 떠난 후에도 이런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였죠. 현장은 검사나 치료에 필요한 장비도 부족하고, 술기를 가진 의료진도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큰 장비가 없더라도 시행할 수 있는 시술 위주로 교육했죠.
수단 병원에서 동료들과 함께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 있으면서 도리어 제가 배운 것도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병도 많이 봤어요. 예를 들면 적혈구가 낫처럼 구부러지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란 병은 의과대학 시절 배우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유전 질환인데, 그곳에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모래파리로 전염되는 리슈마니아증이나 모기가 매개체인 말라리아도 한국에선 흔치 않죠.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호흡기내과 의사인데, 가장 기본적인 엑스레이가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엑스레이가 없는 환경에서 환자를 본다는 것이 호흡기 의사로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죠.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일반 혈액검사(CBC)도 안 되고, 전해질 검사도 안 되고… 처음엔 ‘환자를 어떻게 보나’ 막막했는데, 또 다 보게 되더라구요. 예전에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 연락처나 노래 가사를 다 외웠는데, 휴대전화가 나오고 노래방이 나오면서 못 외우게 되지 않았습니까?(웃음)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부족하다보니 진찰도 더 세심히 하게 되고, 임상적인 추론도 훨씬 중요해졌죠. 물론 환경이 개선되어 엑스레이 검사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검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 생각하고 고민하며 진료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일과는 어떠셨나요?
하루 일과는 닭이 우는 시간에 시작합니다(웃음). 보통 새벽 4시-4시 반 정도였죠. 이슬람 문화권이다보니 새벽에 기도소리도 들리고, 양철 지붕 위로 비둘기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리고, 늦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웃음).
일찍 일어나서 두어 시간 책도 읽고, 아랍어 공부도 하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시간이 되면 주방으로 가서 식사를 하는데, 그때부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의료 활동 매니저(Medical Activity Manager)를 만나서 어제 병원에서 있었던 일과 오늘 해야 할 일을 논의하고, 7시 반정도에 출발해서 8시 조금 전에 병원에 도착합니다.
간밤에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사망자가 있는지, 응급실에는 별 일 없었는지 훑고 난 다음 오전 회진을 시작합니다. 점심 시간이 될 때쯤 회진이 끝나면 숙소에서 식사가 배달되어 있죠.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오전 회진 때 문제가 있었던 환자를 다시 보게 됩니다. 응급실, 분만실, 드레싱룸, 입원실 등 병원 곳곳에서 저를 찾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죠(웃음).
2시부터는 꼭 동료들과 모임을 1-2시간 정도 가지려 했습니다.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환자 컨퍼런스를 하거나 사망례 분석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저녁시간이었죠. 퇴근할 때 동료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오는 차를 타면, 모두들 땀에 푹 절어있곤 했습니다. 가장 피곤하고 지치는 시간이지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차 안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그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수단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들과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
한국에 돌아오고 싶던 날은 없으셨나요?
딱 한 번 있었는데요,
제가 수단에 가자마자 우기가 시작됐어요. 낮 기온은 45도까지 올라가는데, 밤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었어요. 하루는 퇴근하려고 하는데 비가 정말 많이 왔습니다. 병원 건물은 아프리카 전통가옥인 투쿨(Tukul)이라 창문이 뚫려 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부니 비가 들이닥쳐서 안에 있는 것들이 다 젖었어요. 저와 동료가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창문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죠.
한참을 고생하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창문이 열려있어서 침대가 다 젖었더라구요. 부랴부랴 빨래를 하고 씻고 축축한 침대에 몸을 겨우 뉘였는데… 또 비가 왔습니다. 빨래 널고 왔는데… 다음날 아침 나가보니 역시나 빨래가 흙탕물 투성이가 되어있었어요. 출근하는데, 비참함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햇살은 믿을 수 없이 화창하고, 다들 아무일 없었다는 듯 환히 웃으며 인사하더라구요. 난민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텐트에서 지내니 상황이 더 열악할텐데, ‘어떻게 저렇게 긍정적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해보니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어있었어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활동가님의 국경없는의사회 첫 번째 파견 활동을 마친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대보다 좋았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긴 했어요. 국경없는의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큰 조직이고, 훨씬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지역의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최적화된 프로토콜이 준비되어 있어요.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지역은 의료 환경이 열악한데다 의사가 계속 바뀝니다. 다양한 배경과 실력을 가진 의사들이 오는데, 표준화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데이터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외래 진료 때 기록한 환자 정보를 데이터 관리자가 정리하는데, 그 정보로 주변 환경에 대한 분석도 가능하더라구요. 하루는 프로젝트 의료 책임자(Project Medical Referent)가 지난 주 병원에 이질* 환자가 두 배로 늘었는데, 환자들이 대부분 난민 캠프의 특정 구역에서 온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가서 원인을 찾았는데, 식수가 오염된 것을 발견해 식수∙위생 지원을 시작했죠.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국경없는의사회는 더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노력이 있으니 올해 난민 캠프에서 콜레라 유행도 막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질: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 증상이 나타나며, 원인균인 시겔라를 입으로 삼켰을 때 감염된다.
수단 활동 중 만난 아이들과 함께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
활동지역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난민 캠프의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존재를 정말 고마워합니다. 다른 병원은 애초에 갈 수가 없거든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의 직원 중에도 난민 캠프 출신이 많습니다. 난민 캠프 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병원 직원들끼리 운영하는 기금도 있어요.
수단 지역사회에서도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미가 큽니다. 수단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죠. 수단 동료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단의 민간 병원에서 받는 치료와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하는 치료의 질이 다르다고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편이죠.
병원에 환자가 많아서, 그날 오는 환자를 다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월요일 같은 경우 환자가 많이 몰리죠. 그날그날 병원에 오는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우리 목표였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집에 돌아오니 샤워기의 수압이 감격스럽고, 따뜻한 물이 나와 정말 행복합니다(웃음). 하지만 편안해져서 좋은 건 길어야 일주일이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것도 마찬가지죠! 처음 현장에 도착하면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많지만, 최대 2주예요. 이후에는 그게 정상이 되죠. 다시 현장에 가서 또다른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말 특별한 단체였습니다. 이 특별함은 많은 개인 후원자님들이 모아주시는 후원금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지 않고 대부분 민간 개인 후원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장 먼저 갈 수 있습니다.
수단 활동 중 만난 동료들과 ©윤호일/국경없는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