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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리비아: 의료사각지대 속 극단적 폭력에 노출된 이주민들

2025.02.14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에 따르면 2024년 리비아 소재 이주민과 난민은 약 787,000명에 달했다. 일부는 일을 찾아온 것이지만 일부는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달하고자 한다. 리비아에서 이들은 구금센터 내외에서 각종 폭력과 학대에 노출돼 있다. 납치, 갈취와 인신매매, 육체적 폭력과 성폭력을 당해 의료보건 지원을 가장 필요로 할 때조차 의료보건 접근성은 심각하게 저해된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약 100km 떨어져있는 해변 도시 주와라(Zuwara)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돌보고 있는 환자 아흐메드(*익명 사용)는 튀니지로 가던 중 체포와 구금을 당한 수단 소년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맞다가 정신을 잃었어요. 일어나보니 아직도 저를 때리고 있더라고요. 기형이 되고 이빨이 없어졌어요. 친구 사우드 말로는 그들이 내 머리를 벽돌로 쳤대요.”

리비아 주와라 시 소재 센터에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원 ©Shouqi Benarabi/MSF

리비아에서 증빙 서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법적으로나 해당 국가기관들로부터나 아무런 보호 조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료지원에 접근하지 못하죠. 매일같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신매매나 고문, 강간을 당한 사람들을 만납니다.”_스티브 퍼브릭(Steve Purbrick), 국경없는의사회 리비아 프로그램 담당자 

보호받지 못하고 의료보건 접근성도 없어 

리비아는 지중해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출발점이 되는 국가다. 아흐메드같은 미등록 이주민들은 여정 내내 폭력에 노출된다. 우선 과밀하고 위험하며 보건위생상 좋지 않은 장소에서 살게 된다. 방을 공유할 때도 있지만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폐가 등에 체류할 때도 있다. 

이들의 건강 상태는 이들의 주거 여건과 이들이 겪는 극심한 폭력 정도를 반영합니다. 보호나 치료 접근성 없이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빠르게 악화합니다.” _닥터 이쌈 압둘라흐(Issam Abdullah), 국경없는의사회 의사/의료 부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는 미스라타와 트리폴리, 주와라에서 1차 의료와 성·생식보건, 정신건강, 결핵 진단과 치료, 성폭력 관련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입원이 필요한 건은 수도로 전원된다. 아흐메드는 턱관절 수술이 필요한데 대안이 없어 국경없는의사회가 비용을 대고 수술은 트리폴리에서 이뤄졌다. 

2024년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15,000건 이상 진료를 행했다.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 대다수는 경험한 폭력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유럽에 가 닿기 위해 부인 및 자녀 2명과 탔던 배가 전복돼 홀로 살아남은 카메룬 출신 넬슨은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리비아에서 당신 운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작은 건수 하나로 인생 자체가 바뀌어 버리죠. 죽을 수도 있고, 감옥에 갈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의사를 만나러 가거나 빵을 사러 가는 도중에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경찰과 마주칠 수도 있죠. 운 좋은 날이면 눈에 안 띄겠지만, 운 나쁜 날이면 체포 당하는 겁니다.”_넬슨 

치료 지연 

경찰이나 군대의 납치나 체포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고립된 장소로 숨어들어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미 건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에서야 최후의 보루로 의료지원을 찾는다. 

2024년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진단하고 치료한 결핵 환자는 250명이 넘는다. 이중 제때 치료 받지 못해 죽은 사람이 16명이다. 

아주 뒤늦게서야 치료 방법을 찾는 결핵 환자들이 옵니다. 그러면 치사율도 높아지고 전염도 더 넓게 퍼집니다. 우리 팀은 또한 도중에 중단되는 치료의 부정적 영향도 목격하고 있습니다.”_닥터 압둘라흐   

2024년 국경없는의사회 의사가 리비아 주와라에서 결핵 의심 환자의 엑스레이를 확인하는 모습 © Shouqi Benarabi/MSF

살마(*익명)는 37세 대학교수로 당뇨를 앓고 있다. 2023년 4월 수단 전쟁이 시작됐을 때 피란길에 올랐다. 

당뇨에 걸린 사람에겐 규칙적 식사와 의약품이 필요한데 리비아에선 이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제가 떠날 수 밖에 없었을 때 건강은 매일 빠르게 악화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됐어요. 요리도, 옷 입는 것도... 완전히 딸들에게 의지하게 됐습니다.”_살마

리비아로부터 또다시 

이동 중인 사람들은 무장세력이 마련해둔 비즈니스 모델에 갇혀 버립니다. 유럽연합과 그 회원국들의 묵인 하에 돈을 갈취 당하는 거죠. 길을 지나는데 대한 대가, 석방에 대한 대가, 여정을 계속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범죄 조직의 희생자가 될 위험은 언제나 남아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의료지원 외에도 우리는 리비아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안전하고 합법적인 통로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특히 리비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인도적 통로(humanitarian corridor)를 통해서요.”_스티브 퍼브릭

2021년 이후 이미 7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를 위해 해당 통로를 사용했다. 이중 약 60여명이 국경없는의사회 리비아팀의 환자였다. 이중 시실리 팔레르모의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이어서 돌본 환자가 14명이다.

2023년 4월 국제연합이 발간한 보고서는 리비아 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