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리비아에서 이주민이 물건과 같이 팔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이것은 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유럽, 아프리카와 리비아의 많은 지도자들은 난민과 이주민을 학대와 노예 대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017년부터 리비아의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했는데, 수천 명이 처한 처절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금 센터에 갇히거나 아무런 보호 없이 내버려진 채 끝없는 폭력의 순환 속에 갇혀 있다.
마지막 세 번째 파트에서는 난민과 이주민이 구금센터를 벗어난 이후 생존하기 위해 어떤 역경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지 살펴본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유럽 국가가 바다로 피한 난민과 이주민 송환을 멈추고 이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
트리폴리에서 생존한다는 것
2018년 12월,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필리포 그란디(Filippo Grandi)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트리폴리(Tripoli)에 집합·출항소(Gathering and Departure Facility)를 연다고 발표했다.
집합·출항소는 리비아에서 처음 시도되는 형태의 시설로, 취약한 난민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시설에서는 난민 재정착, 가족 상봉, 제3국 내 긴급 시설로 이동, 기존 망명했던 국가로 귀환, 자발적 본국 귀환 등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 긴급 대피가 필요한 취약한 난민에게 즉각적인 보호와 안전을 제공하며, 리비아에 갇혀있는 수백 명의 난민에게는 구금의 대안을 제시한다. |
그로부터 1년 후, 리비아 외부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안 이 시설이 난민에게 즉각적인 보호와 안전을 제공하리라는 희망은 좌절됐다. 2019년 7월에서 11월, 트리폴리의 구금센터에서 풀려난 난민과 이주민이 집합·출항소에 수용되었다. 이곳에는 유엔난민기구가 다른 국가에서의 재정착을 위한 자리를 확보해주어 이동을 기다리고 있던 소수의 난민이 있었다. 하지만 12월 유엔난민기구는 과밀집된 집합·출항소에 대한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시설 운영의 주체는 리비아 당국이며, 국제 기관 또한 접근에 제약이 있고, 수용된 인원의 이동의 자유도 제한 받는 등, 사실상 시설에 대한 권한이 매우 한정적이었음을 인정했다. 유엔난민기구는2020년 말까지 집합·출항소에 대한 지원 대부분을 중단할 것이며, 현재 수용된 인원에게는 시설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까지 당장의 위험으로부터 보호가 절실한 이주민과 난민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제공할 다른 시설은 없다. 국제 기관의 감독 하에,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보호소를 구축할 것이 제안 되었으나, 리비아의 여러 담당 기관에 의해 모두 거절됐다.
집합·출항소를 떠나거나 구금센터에서 풀려난 난민을 대상으로 유엔난민기구나 트리폴리 내 협력기관이 제공하는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일부 현금 지원, 생필품 제공, 건강상태와 요청사항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지긴 하나, 보호소나 거주지 지원은 제공되지 않아 난민은 직접 비용을 지불해 숙소를 구해야 한다. 결국 다시 납치나 강제 노동, 성폭력, 착취 또는 그 이상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리비아 내 도시의 도로변에는 날마다 단 몇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는 이주민이 모인다. 고용주에게 발견되어 일용직을 얻는 것이 목표다. 고용주는 도로를 지나다 일할 사람을 발견하면 차를 세워 태운다. ⓒAurelie Baumel/MSF
에리트리아 출신 난민인 사무엘(가명)은 2019년 7월 가리얀(Gharyan) 구금센터에서 풀려났다. 사무엘은 에리트리아에서 정치 활동을 하다 수감됐고, 이후 리비아로 왔다가 인신매매단에게 수 개월 붙잡혀 있었다. 이후 트리폴리 내 다르-엘-제벨(Dhar-el Jebel)과 가리얀 구금센터로 이동했는데, 구금센터에 머무는 동안 결핵에 걸렸다.
가리얀 구금센터에서 풀려난 후 사무엘은 유엔난민기구 협력 비정부기구 직원과 함께 트리폴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합·출항소로 가는 줄 알았지만, 트리폴리 구르지(Gurji)에 있는 복지센터에 도착해 ‘도시 지원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다. 사무엘은 2 년간의 구금과 학대로 병들고 약해진 상태였으며, 가지고 있는 돈은 450 디나르(한화 약 38만원) 뿐이었다. 이 돈으로 앞으로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사무엘은 트리폴리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차라리 가리얀 구금센터의 생활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라타(Misrata)의 한 불법거주지. 각 방에 15명 정도가 산다. 월세는 총 150 디나르(한화 약 12만 4천원)으로, 보통 한 명당 10 디나르(한화 약 8,300원)를 낸다. ⓒAurelie Baumel/MSF
“유엔난민기구와 세스비(CESVI - 이탈리아 비정부기구) 는 현금 지원만 제공했습니다. 우리는 트리폴리에 아는 사람도 없고, 지역을 잘 모릅니다. 갈가레스(Gilgaresh)에 사는 에리트리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가 지낼 곳을 찾았어요. 세를 얻어 살고 있는데, 유엔난민기구 아니면 세스비 직원이라는 한 사람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매트리스나 이불이 없었는데, 그 사람이 세스비에 우리에게 매트리스와 이불을 제공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유엔난민기구 직원이 방문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자신이 구속될 수 있다며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한 달치 세를 냈는데, 그곳에서 일주일 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유엔난민기구나 세스비의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다. 집합·출항소에 보내달라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하다면, 구금센터라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응답이 없었고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를 함께 부담하고 지낼 곳을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다른 곳을 찾았습니다. 폐허가 된 곳이었고 문이나 창문도 없어 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몇몇 에리트리아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려 돈을 조금 주었지만 그들도 우리를 계속 도와줄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안전한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지난 주에도 두 명이 일하러 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 당 1,000 디나르(한화 약 85만원)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상황이 제게 벌어졌다면 저는 그 돈을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트리폴리에 산다는 건 감옥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에리트리아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했는데, 이곳에서는 생존하려면 조용히 지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한 가지 방법은 지중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에리트리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똑같습니다. 돌아가면 평생 군복무를 해야 합니다. 저는 개신교도인데, 에리트리아 정부는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리비아에서 지내는 것도 위험하고, 에리트리아로 돌아가도 위험하고, 지중해를 건너는 것도 위험합니다. 이것이 제가 처한 상황입니다.” _ 가리얀 구금센터에서 풀려난 후 트리폴리에 살고 있는 에리트리아인 난민 사무엘
인도적 지원의 부재
2015년 말부터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아프리카 긴급신용기금(EU Emergency Trust Fund for Africa)’을 통해 리비아 내 이주 관련 프로젝트에 4억 8백만 유로를 투입했다. 기금의 절반 정도는 주로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이주기구를 통한 난민·이주민 보호 및 지원에 사용된다. 또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이주 통제와 망명 체계 구축 등 다양한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9천8백만 유로를 리비아에 배정했다. 이렇게 리비아로 흘러 들어간 유럽 납세자의 5억6백만 유로뿐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는 양자 협력의 일환으로 리비아에 자금을 보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중요한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 난민과 이주민을 리비아에 억류하는 것이다. 유럽이 자금을 대는 리비아 내 지원 및 보호 프로그램은 이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고, 때로는 잔인한 정책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충분한 자금이 조달되고 있는데도, 정치적 제약, 안전 문제, 현장에서의 투명성 부족으로 인도적 개입에 기대되는 최소한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단체에게는 리비아 당국과 협상의 여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리비아 정부나 다양한 현지 이해관계자와의 협상에 있어 유엔난민기구는 상당한 재정을 지원하는 국가로부터 그만한 정치적 지원은 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타 유엔 기구와 마찬가지로 유엔난민기구 또한 운영 전개에 심각한 제약이 있다. 리비아 내 국제 직원의 수는 매우 적으며, 이마저도 대부분 트리폴리에 집중되어 있다. 리비아 통합정부(GNA)는 유엔에서 인정한 정부라는 사실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지만, 유엔의 주요 기관 중 하나인 유엔난민기구는 인정하지 않는다. 리비아는 망명 체계가 없으며, 난민 지위와 관련한 1951년 제네바난민협약에도 비준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까지 유엔난민기구는 소수 몇몇 국가에서 온 망명신청자와 난민만 등록 할 수 있었다.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은 있으나 이는 리비아 내 난민과 이주민 대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트리폴리 내 다르-엘-제벨 구금센터에 수용된 이주민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 이 구금센터에는 500여 명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데, 대부분이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 출신이다. ⓒAurelie Baumel/MSF
망명신청자를 보호하는 것이나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과 같은 매우 간단하고 근본적인 관념과 1951년 제네바난민협약에 명시된 바와 같이 수 백 년간 이어온 전통은 리비아 내에서 벌어지는 국가와 정부간 기관 사이의 담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이주 통제’로 대체됐다. 유럽 국가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이주 정책과 이것이 리비아에 가져온 참담한 결과는 오래 전부터 밝혀졌고 2017년에는 대중의 격분을 불러일으키도 했으나, 사실상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리비아의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보다 광범위하고 투명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임의 구금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동이 조율되는 동안 안전과 지원을 보장할 보호소 구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유럽이 바다로 탈출한 난민 및 이주민 송환을 멈추고, 안전한 국가에서 생존자를 맞이할 공간을 충분히 제공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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