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리비아에서 이주민이 물건과 같이 팔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이것은 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유럽, 아프리카와 리비아의 많은 지도자들은 난민과 이주민을 학대와 노예 대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017년부터 리비아의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했는데, 수천 명이 처한 처절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금 센터에 갇히거나 아무런 보호 없이 내버려진 채 끝없는 폭력의 순환 속에 갇혀 있다.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이번 특집 기사에서는 난민과 이주민이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과 유럽의 정책이 이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파트는 리비아의 현재 상황과 그 배경을 짚어본다.
단절된 유럽으로의 이주 루트
지난 수십 년 동안, 니제르나 기타 사하라 이남 국가의 이주민들은 건설, 농업, 서비스 산업에서 일할 기회를 찾아 산유국인 리비아를 찾았다. 국제이주기구(IOM)는 리비아 내 이주민 수가 70-100만명 사이일 것으로 추산한다.
2011년 봉기와 카다피의 몰락, 이어진 내전으로 리비아 내 이주 노동자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경쟁 관계의 정권들과 민병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무력 분쟁을 일으키며 국가가 분열되었고, 공공 서비스가 붕괴되었다. 이주민 대다수는 거주 허가증을 비롯한 서류 상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체포되거나 임의 구금될 위험에 처했다. 리비아를 거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거나, 리비아가 최종 목적지인 모든 이주민은 표적이 되며, 이주 루트는 더욱 위험해지고 단절되었으며, 통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커졌다.
카다피 집권 당시 유럽연합과 이탈리아가 리비아와 맺은 합의는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이주민과 난민이 유럽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대가로 자금을 제공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카다피는 심지어 2010년 이탈리아 방문 당시 유럽연합이 리비아의 지중해 해안을 봉쇄하는 대가로 매년 50억 유로를 지원하지 않으면 “유럽은 아프리카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4년 시작된 2차 리비아 내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자원 약탈 및 인신매매, 석유·무기 밀수와 같은 불법 행위를 유발하며 지하 경제 활성화의 근간이 되었다. 리비아는 탄압, 분쟁,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위한 커다란 ‘관문’이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난민 억제 및 송환 정책을 시행했다. 해상 구조 인력을 해체했으며, 리비아 해안 경비대에 자금을 지원해 공해상에 있는 이주민과 난민을 가로막고 리비아로 강제 송환하도록 했다. 이것은 국제법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또한 범죄나 밀수 조직에 연루된 관계자와 거래를 맺었다. 그 결과 리비아 내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인신매매, 납치, 구금, 갈취가 성행했고,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확률은 갈수록 커졌다. 현재 리비아의 상황은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유엔 및 기타 단체의 기록과 고발을 통해 밝혀졌다.
콤스(Khoms) 해안가에 위치한 수크 알 카미스 (Souq al Khamis) 구금센터는 리비아 내 극심한 폭력뿐 아니라 정부, 민병대, 범죄조직간의 모호한 경계를 잘 보여준다. 2019년부터 콤스는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바다에서 가로막고 리비아로 송환한 이주민이 도착하는 주요 항구가 됐다. 또한 많은 난민 및 이주민이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시도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Aurelie Baumel/MSF
CNN효과와 2년 후 현실
2017년 11월, CNN 보도를 통해 상품처럼 취급되는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폭력의 수위가 드러났다. 이 보도는 세계적으로 강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아프리카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가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의 잔혹함과 고문과 노예의 정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럽의 정책입안자를 포함한 많은 국제 리더들은 리비아의 상황을 강력히 비난했다. 유엔이 인정한 리비아 정부인 리비아통합정부(Government of National Accord, GNA)는 “CNN이 제기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공식적인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통합정부 장관은 이 혐의에 대해 “비인간적이며, 리비아인의 문화와 역사에 반하는 상황”이라 표현했다.
유럽연합은 아프리카연합 및 유엔과 함께 국제이주기구가 지원하는 ‘자발적 귀환’을 촉진하고 유엔난민기구(UNHCR) 주도의 인도적 난민 이동을 준비하기 위한 TF팀을 만들었다. 유엔난민기구는 2017년 12월 니제르 니아메(Niamey)의 임시 수용처로 난민을 이동시켰다. 이곳에서 난민들은 난민 지위 확정을 받고, 제3국 재정착과 같은 해결책을 기다릴 수 있다. 또한 유럽연합의 주요 협력 기관인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이주기구는 리비아 내 이주민 및 난민 보호와 지원을 위한 추가적인 자금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관심이 일어난 지 2년 후, 리비아에 갇힌 채 폭력을 당하고 자유가 억압된 수천 명의 난민과 이주민은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들은 여전히 인신매매범 사이에서 화물처럼 거래되고 있다.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환경에 가두고, 유럽 망명 신청에 있어 기본적인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에 유럽 납세자의 세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법 심사도 거치지 않은 채 열악한 감옥에 기약 없이 구금된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국제이주기구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민이 2017년부터 약 4만8천명 정도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극심한 위험에 처해 있다.
리비아에서 임시로 난민을 다른 국가로 이동시키는 과정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데,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절차가 매우 길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안전한 국가 내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차 마다 생존자들이 몰리며 급격한 ‘병목’이 일어난다.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가능한 난민과 이주민을 받지 않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017년 말부터 약 3천명의 난민을 니아메에 있는 임시 수용처로 이동시켰다. 루마니아에도 이동 체계가 마련되었고, 2019년 9월에는 르완다에서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난민을 리비아에서 바로 이동시키는 ‘인도적 이동’을 위한 항공편을 준비한 국가는 없다.
리비아를 벗어나 제3국가에서 재정착할 수 있는 난민의 수는 한 해 약 2천명 정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유엔난민기구는 현재 여성, 가족, 아동을 우선적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본국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온 젊은 미혼 남성은 대부분 리비아에 구금되어 이동의 기회가 거의 없다.
이렇듯 제한적인 이동 체계와는 대조적으로, 유럽국가가 후원하는 리비아 강제 송환 체계는 매우 원활히 시행되고 있다.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유엔난민기구가 리비아에서 이동시킨 난민은 2,142명에 불과했지만, 바다로 탈출을 시도하다 강제로 리비아로 송환된 난민은 9천명에 달한다.
2019년 4월 리비아통합정부와 리비아국민군(Libyan National Army, LNA)의 무력 분쟁이 격화되며 리비아의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음에도 유럽은 강제 송환 및 리비아 내 억류 정책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 주요 이주 경로를 표시한 지도. 모든 경로는 리비아를 통과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고자 시도하기 때문이다. ©AURELIE BAUMEL/MSF
리비아 내 국경없는의사회 치료 및 지원 활동 지역. 국경없는의사회는 구금센터 등 리비아 내 이주민이 모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 AURELIE BAUMEL/MSF
2019년 4월 이후 리비아에서는 2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수도 트리폴리와 인근 지역에서는 무차별 포격, 총격, 공습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유엔리비아지원단(UN Mission in Libya)에 따르면 4월부터 약 1,000여 회의 드론 공격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리비아국민군을 지지하기 위함이었다.
7월 3일 트리폴리 동부 지역에 있는 타주라(Tajoura) 구금센터가 공습을 받아 53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 당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충분히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공습이 일어나기 전 여러 번 분쟁 속에 갇힌 난민과 이주민을 즉각 대피시킬 것을 요청해왔다.
현재 약 3,000-5,000명의 이주민과 난민이 ‘공식’ 구금센터에 갇혀 있다. 이것은 트리폴리에 위치한 리비아 내무부와 산하 기관인 불법이민단속국(Directorate for Combatting Illegal Immigration)가 명목상 운영하는 구금센터다. 이중 대부분은 유엔난민기구에 등록되어 있으며,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망명 신청자들이다.
이에 더해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리비아 전역의 인신매매범이나 밀수업자에 의해 숨겨진 ‘감옥’과 창고에 갇혀 고문과 학대를 당하는 난민과 이주민도 있다.
리비아 남부 도시 내 인신매매범이 이주민과 난민을 가두는 창고나 건물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어떤 경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에 수백 명이 갇혀 있으며, 움직이거나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몇 달을 지나며 학대와 갈취를 당한다. ⓒAurelie Baumel/M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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