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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파키스탄: 현장의 감초, 로지스티션

2025.01.24

이름: 고은아

포지션: 기술직 관리자(Logistics Manager)

파견 국가: 파키스탄

활동 지역: 구지란왈라

활동 기간: 2024년 7월- 2024년 12월 (6개월)


파키스탄 펀자브 구지란왈라 국경없는의사회 약제내성 결핵 환자 치료 센터 앞에 선 고은아 활동가 ©고은아/MSF

첫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다녀오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파키스탄 구지란왈라라는 지역에서 기술직 관리자(Logistics Manager)로 결핵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결핵 환자 중에서도 약제내성 결핵 환자를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파키스탄에는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자신의 질병을 숨기느라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많습니다. 다행히 펀자브 지역은 그렇게 보수적이진 않지만 의료시설이 열악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곳을 찾아오곤 합니다.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도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어요. 제가 처음 파견됐을 땐 한달에 환자가 30명 남짓이었는데, 돌아올 무렵엔 하루에 10명 이상의 환자가 찾아오고 있었죠.  

결핵 환자는 역시 사회적 낙인 때문인지 병원에 찾아와서도 바로 진단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병원 내부에서 격리 병동과 검사실 등 결핵 환자를 위한 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른 국제기구와 협업도 했고요. 합병증을 가진 결핵 환자들도 많아 결핵은 우리가 치료하고 합병증은 현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약간 자랑 같지만, 제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규모는 작아도 국경없는의사회 본부에서 방문했을 때도 매우 독특하고 전문적인 프로젝트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답니다. 고도로 전문화된 의료팀으로 꾸려진 프로젝트라 그런 것 같아요. 결핵이라는 게 단번에 진단해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보니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결핵 환자들을 더 전략적으로, 효과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관련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프로젝트죠.

펀자브 구지란왈라 국경없는의사회 약제내성 결핵 진료소 환자로부터 채취한 샘플을 테스트중인 국경없는의사회 랩 기술자 사하르 임티아즈 (국경없는의사회 2023년 자료사진) ©Gul Nayab/MSF

구지란왈라 지역의 의료보건 상황은 어떤가요?

구지란왈라 지역에는 큰 병원이 하나 있는데, 그 병원 내부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진료소가 있습니다. 지역 내 개인병원들이 있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환자들이 애초에 병원에 찾아오는 걸 꺼리기도 하고 치료비나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필요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아이가 결핵에 걸렸는데 합병증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라호르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럴 수 없었죠. 그런데 마침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가 양질의 치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와서 구지란왈라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금전적인 부담과 열악한 의료 상황으로 인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한 많은 사례 중 하나였죠.

9년 이상 지속된 약제내성 결핵 치료와 정신건강 지원을 받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구지란왈라 진료소를 찾아온 현지 환자 (국경없는의사회 2023년 자료사진) ©Gabriella Bianchi/MSF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있나요?

이 지역에서는 결핵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역 내 유일한 국제 비영리단체였어요. 우리는 병원 관계자들의 요청에 따라 병원 내부에 격리 병동과 검사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또 결핵 진단을 하려면 진엑스퍼트(GeneXpert)라는 진단기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진단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해당 기기를 가진 다른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합니다. 이런 식으로 병원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도구를 마련함으로써 병원 직원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런 시설들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과 환자들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병원 직원과 환자들도 같이 사용했어요.

기술직 관리자는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우선 가장 먼저 직원들과 하루 일정을 공유하며 업무가 시작됩니다. 직원의 이동 수단과 안전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보통 아침에 만나서 보건증진팀의 지역사회 방문 차량을 준비하거나, 오늘 어떤 직원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등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작업이죠. 병원 내 격리 병동과 검사실 건설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병원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요. 프로젝트를 다 완수하고 온 건 아니라 조금 아쉽지만 관련 계약서를 쓰는 첫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었던 점이 뿌듯합니다.

열악한 생활 여건으로 고생하는 직원들의 다양한 애로사항을 듣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어요. 파키스탄은 수질 문제가 큰 국가는 아니지만, 직원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사용하는 물의 수질을 점검했습니다. 그전에는 한 번도 수질 점검이 진행된 적이 없었다 하더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환자들이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요. 때때로 전기나 인터넷 공급 중단에도 대응해야 했어요.

활동하시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어떤 것이었나요?

많죠 (웃음). 사실 특정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기보다는 복합적이었어요. 많은 직원들이 한국인 활동가랑 일해 보는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제 딴에는 이들이 처음 만나보는 한국인으로서 일을 잘해야겠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고요.

문화가 다른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동료 간에 서로 다른 문화적 이해로 일의 진전이 더딜땐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첫 활동이어서 그런지 그게 그렇게 힘든건지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저처럼 현장 활동이 처음인 직원들이 많았던 덕분에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일종의 ‘전우애’ 같은 걸 느꼈던 거 같아요. 힘들 때마다 뭔가 거창한 걸 하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 많이 노력했어요. 주말마다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함께 햄버거를 시켜 먹거나 영화를 같이 보던 동료들 덕분에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또는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여성 ‘로지스티션(Logistician)’이 흔하지 않다고 들었어요. 파키스탄 자체도 워낙 보수적인 문화이다 보니 여성인 제가 ‘남초’ 직군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본부에서 걱정을 하기도 했죠. 근데 제가 공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힘든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어쨌든 이런 ‘남초’ 직군에서 여성으로서 일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뿌듯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평범한 수준인데 여기선 ‘와 너 진짜 열심히 일한다’ 혹은 ‘정말 성실하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뿌듯하고 좋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저랑 너무 잘 맞았어요. 우간다 출신의 의료 팀장, 나이지리아 출신의 물류 코디네이터, 체첸 출신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등 상상도 못 할 만큼 다양한 국적의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고요.

현장에서의 일상은 어땠나요?

아침에 출근해서 그날 하루 일정을 확인하고 다른 의료 팀원들이 병원으로 가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업무가 시작되었어요. 워낙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어떤 날은 물류 관련 업무를, 어떤 날은 공급 관련 업무를 보기도 했죠.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게 목표였지만 지역사회 보건 증진팀이 돌아오는 시간이 지연되거나 하는 경우엔 6시쯤 마무리되는 날도 있었어요. 근데 사실 기술직 관리자는 끝이 명확하게 정해진 업무라고 보긴 힘들어요 (웃음). 퇴근하고 나서도 직원들이 불편한 부분을 얘기하면 가서 봐주고 처리해줘야 했거든요. 그래도 이런 과정에서 다른 활동가와 소통을 굉장히 많이 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점이었어요.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로지스티션 특성상 업무에 끝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좀 내려놓고 쉬는 시간을 스스로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직접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현장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는 걸 꺼리는 환자가 많은 파키스탄에서, 그래도 국경없는의사회 덕분에 점점 찾아오는 환자 수가 늘어나고 완치 사례가 증가하는 걸 보면서 우리 활동이 정말 의미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한 번은 현지 파트너와 연락을 하는 도중에 본인 이웃이 결핵 환자인데 몇 년째 완치가 안 되어서 약만 먹고 있다면서 의사를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진료소를 알려줬죠.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내가, 국경없는의사회가 세상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경없는의사회 상담사이자 교육 담당자인 임티아즈 아흐마드가 구지란왈라 외곽지역에서약제내성 결핵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여성 보건 증진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보건정보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2023년 자료사진). ©MSF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로지스티션’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해준다면?

우리 로지스티션끼리는 “우리는 기술직 활동가지 마술사가 아니다(We’re logisticians, not magicians)”라는 말을 진짜 자주 했어요. 아무래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중에 로지스티션을 거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밤 12시에도, 주말에도, 일이 생기면 출동해야 하죠. 로지스티션이라면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감초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이 직군이 한국인들에게 잘 맞지 않을까 싶어요.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하되, 놀 때는 놀 줄 아는 게 또 한국인들의 특성이잖아요 (웃음). 저도 한국인으로서 부담도 있었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도 했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고 성장에 욕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 직군에 아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