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효민
포지션: 마취과의(Doctor Anaesthetist)
파견 국가: 차드
활동 지역: 아드레
활동 기간: 2023년 9월 – 2023년 10월
차드 아드레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이효민 활동가(맨 왼쪽)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이야기’ 코너에서 올해에만도 벌써 두 번째 뵙습니다. 올해 초에는 지난 세월 이미 여러 번 활동 다녀오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를 해 주셨죠 (*이효민 활동가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기 참고). 이번에는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차드 아드레 지역에서 약 1개월간 활동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모이살라에 다녀온 이후 차드로 활동을 나간 것은 두 번째인데, 이번에 다녀온 아드레는 차드 동부에 위치하고 있어 최근 심각하게 분쟁 사태를 겪고 있는 수단과 접경지대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차드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처럼 치안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상황인 나라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드레는 올해 4월 격화 후 지속되고 있는 수단 내 분쟁 사태로 실향한 난민들이 많이 도착하고 있는 곳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도 최근 계속해서 중점적으로 현장소식을 전하고 있는 지역이죠 (*국경없는의사회 차드 현장소식 참고).
2023년 9월 차드 동부 아드레 소재 난민 캠프 중 한 곳의 전경. 2023년 4월 수단 분쟁 격화 이후 130,000여 명의 난민이 머물고 있다고 알려졌다. ©MSF/Nisma Leboul
예전부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비교적 소규모로 의료지원 프로젝트를 하던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프로젝트 규모가 확대될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소아과 병동이 있고, 그곳에서 차로 십여 분 걸리는 곳에 외과와 모성관리 병동(분만장, 수술장, 신생아실, 산후입원실)이 있습니다. 모성관리 병동은 원래 벽돌 건물이고 그 주위 부지에 외과 치료를 위한 텐트 수십 개가 지어진 겁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점차 확대되는 난민 캠프들 내에서도 활동하고, 외곽지역 대상 이동진료소도 따로 운영합니다. 저와 같이 타국에서 파견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용 숙소 안에 머무는 다국적 직원들만도 4-50명에 이르는 수준이었고요. 그래서 지금 아드레 지역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소는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마취과의로서 활동을 나가시면 안 그래도 24시간 대기 상태로 근무하시는데 최근 유입되는 환자가 급증한 장소였다니 더욱 힘들고 바쁘셨겠어요.
제가 주로 일한 곳은 외과와 모성 관리를 함께 하는 장소였는데 말씀드렸듯 기존 벽돌 건물 안에는 모성관리 및 신생아 병동이 있고, 외과 수술실과 병실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공기주입식 텐트로 지었어요. 외과 병동은 그러니까 전부 텐트 안에 있는 거고, 저도 공기주입식 텐트 안 수술실에서 주로 근무한 거죠.
차드 아드레 국경없는의사회 공기주입식 텐트 병동 안에 앉아 있는 이효민 활동가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국경없는의사회의 차드 아드레 공기주입식 병원 소개 참고)
저는 이전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일할 때도 공기주입식 텐트에서 일해본 적이 있어서 공기주입식 텐트로 이뤄진 근무환경이 완전히 낯설진 않았지만, 차드 아드레의 경우 외과 병동 자체도 전부 텐트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환자용 텐트만 10개가 넘었고 수술실용, 엑스레이실, 장비 소독실 등 텐트가 따로 있는 등 규모가 상당히 컸어요. 다만 현지 온도가 보통 35-37도 정도 되는데 에어컨 시설이 없고 공기 순환 장치가 텐트당 한두 개 놓인 형편이라 제가 일해본 수술실 중에서는 가장 더웠습니다. 화장실 앞에 손 씻는 곳도 ‘바께쓰’에 물이 담겨 있고 거기에 수도꼭지가 연결된 형태인데 오후에 가면 이 물은 뜨거워진 상태입니다.
제가 9월 마지막 주에 도착했는데 사실 그때는 외과 수술실로 실려 들어오는 환자 숫자 자체는 줄어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7-8월중에는 유입 환자수가 최고치를 찍고 밤 10시까지도 수술이 이뤄졌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기간에도 많은 날은 하루에 25건까지 수술이 진행되긴 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가본 국경없는의사회 근무지 중에서는 가장 많은 건수 축에 속하죠. 프로젝트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곳에서 근무할 때면 마취과의가 외과의와 함께 매일 아침 회진을 돈 편인데 이번에는 저는 중환자실 회진만 매일 돌고 외과의도 전체 환자 회진은 하루에 소화하지 못하고 일주일에 걸쳐 전체를 도는 식이었어요. 그래도 보통 저녁 6-7시면 어느 정도 일과가 마무리됐지만요. 아드레는 현재 워낙 일이 과중해서 비의료직종 국경없는의사회 팀원들도 최장 3개월 이상 현장 근무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환자들이 많았나요?
새로 입원하는 환자보다 기존 상처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중간중간 총상이나 자상을 입은 외상 환자들이 새로 들어오긴 했지만요. 흉부 외상이 몇 건 있어 흉관 삽입 수술을 좀 했습니다. 총상 환자는 대부분 수단 국적인이었고 간혹 차드인들도 있었습니다. 상처가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감염이 나을 때까지 소독과 드레싱을 변경해줘야 하니까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2-3개월간 입원중이던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환자들이 계속 적체가 되니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거동이 가능하게 되는 환자들은 조금씩 이동을 시켰고요. 그런데 수단에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 대다수니까 이들은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게 되어도 갈 곳이 없어 난민 캠프로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 외에 모성 관리도 같이 하고 있었기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이 평균 하루에 한 건 이상, 많을 때는 하루에 5건 정도 있었습니다. 장티푸스 등의 이유로 복막염이 생긴 환자를 대상으로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 이건 딱히 분쟁 때문이라거나 수단에서 유입된 난민 문제라고는 볼 수 없죠.
차드 아드레 공기주입식 텐트내 수술실에서 집도중인 의료진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셨나요?
스티븐 존슨 증후군으로 저의 체류기간 내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12살 여아 환자가 기억납니다. 이 증후군으로 온몸에 수포성 질환이 생겨 마치 화상 환자같이 보이게 되는 병인데 이것의 원인이 사실 알 수 없는 약물의 부작용이거든요. 비단 아드레뿐 아니라 차드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역에서 항생제는 물론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약이 유통되고 사람들이 쉽게 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 환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항생제로 알고 받아 썼던 모양인데, 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발해서 전신이 수포성 피부로 뒤덮이고 수포가 터져나가고 해서 계속 전신에 붕대가 감겨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 상태로 병원에 왔다고 하는데, 한 달쯤 후 제가 떠날 때에는 거의 상처가 나아서 소독을 위한 마취도 특별히 필요로 하지 않고 병실에서 소독할 수 있는 정도로는 회복이 됐습니다.
다만 특히 안타깝게 생각한 건 얼굴 피부가 수포성 발진으로 감염되어 눈꺼풀 위아래가 붙어버렸다는 겁니다. 마취·소독할 때마다 눈을 뜨게 해 주려고 이 유착된 부분을 박리해 주는데, 현장에 안과의사는 없었고 해서 이 환자가 과연 추후 앞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걷고 움직일 수는 있게 된 상황이었는데 눈꺼풀이 유착되어 안구가 백태가 낀 듯 하얗게 변해버렸거든요. 아마 감염이 진행된 상태였을 겁니다. 외과의나 병원 책임의, 물리치료사와 논의하면서 계속 같이 걱정하고 안타까워했죠.
아무래도 늘 그러시겠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보시고, 객관적으로 근무 환경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게 아까 말씀드린 대로 현지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규모가 커진 응급 대응 프로젝트이다 보니 국경없는의사회도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이라 예전에 만난 적 있는 동료들을 여럿 다시 보게 된 점은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올봄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에서 일할 때 만난 방기 병원 수술실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국적 간호사 2-3인이 이곳에 그대로 투입되어 있어서 이들을 다시 만났고, 작년 차드 모이살라에서 함께 일했던 콩고민주공화국 국적 소아과의와 프랑스 국적 조산사도 와 있었고요.
생활환경은 확실히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아드레같은 경우 좁은 지역 안에 프로젝트가 크게 확대된 경우라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전 차드내 근무지만 해도 주변에 시장도 있고 직원들이 주에 1-2회 다같이 식사하러 나가기도 할 수가 있었는데, 아드레의 경우 여가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중간에 식당 한 곳이 허가되기는 했는데 이마저도 48시간 전에는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었습니다.
아드레 지역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직원 숙소 주변 전경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저는 한 달 동안 다행히 별일 겪지 않고 돌아왔지만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숙소 안에서 지내는 다른 외국인 직원들의 경우 설사나 뎅기열 등 건강상 문제를 좀 겪더라고요. 대개는 1인 1실을 사용하지만 이 숙소의 경우 방도 공유해야 하는 형편이었어요. 하지만 마취과의로서 저는 밤중에도 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남들 잠까지 깨우는 건 민폐니까, 저나 다른 수술간호사에게는 특별히 1인실을 쓰게 해주는 정도였습니다. 샤워도 ‘바께쓰’로 하고요.
환자들은 주로 아랍어를 쓰는데 차드 국적의 의사나 간호사도 아랍어는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통역이 두세다리 건너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여러 번 다녀오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다른 활동가나 예비 활동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제적 조언을 남겨주세요.
다른 말씀은 여러 번 드린 것 같고, 추가할 게 있다면, 어떻게든 현장에서 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챙기시길 바랍니다. 서양인 동료들의 경우 배구 같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긴장을 푸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같이 숙소나 근무지 외부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는 경우 본인이 스스로 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겠죠.
▶️국경없는의사회 이효민 활동가의 ‘국경없는인터뷰’ - 현지 활동을 나가기 전의 준비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