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파나마 국경에 걸쳐 있는 100km 길이의 황무지인 다리엔 갭(Darien Gap)을 건너는 이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서 납치된 이주민들은 산간·우림 및 습지대에 성폭력 목적으로 설치된 텐트 안에서 단체로 강간당하고 있다. 올해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다수의 아동을 포함해 파나마에 성공적으로 도착한 성폭력 생존자 397명에게 치료를 제공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경로인 다리엔 정글을 자국 경제 상황 때문에 강제로 건너야 했던 한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보안상의 이유로 익명 처리)는 여정 동안 반복적인 성폭력 피해 사례를 목격했다며 울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다리엔 정글을 건너고 있는 이주민들. 2023년 8월. ©Natalia Romero Peñuela/MSF
강간을 다섯 차례나 겪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글을 건너는 건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해서지, 삶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끝내는 것은 뱀이 아닌 정글에서 사람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남성들입니다.”
해당 여성을 비롯한 약 46만 명의 이주민들이 올해 다리엔 갭을 건너 미국을 향해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러한 여정에서 이주민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거나 강에서 익사할 뿐만 아니라 약탈, 납치, 강간 등 모든 형태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녀는 같이 이동하던 일행 전체가 무장한 남성들에게 납치되어 폭력을 당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제 다리를 몽둥이로 때렸어요. 저처럼 무리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구타를 당했죠. 돈이 없다고 말했는데 수색했을 때 돈이 나왔던 사람들은 더 심하게 맞았어요. 그들은 ‘그럼 그렇지. 이 여자 돈을 좀 가지고 있네,’라고 말하고는 강간했어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강간당하는 것을 봤어요. 사람들이 벌거벗겨진 채 구타를 당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 명, 두 명, 또는 세 명이 붙잡아서 강간하고 나면 다음 사람이 와서 다시 강간했어요. 소리를 지르면 때렸고요.”
파나마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생존자 수를 보면 다리엔 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건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월에만 107명이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그중 한 주에는 59명이 치료를 받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왔는데, 이는 3시간마다 한 건의 성폭력이 발생한 것과 같다. 강간 생존자 중 3명은 각각 11세, 12세, 16세 아동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이미 충격적이지만 낙인 및 두려움 때문에 성폭력 사건이 과소 신고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형태의 폭력을 겪을 피해자를 둘러싼 낙인, 가해자의 협박, 성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형태의 성폭력 경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음으로 인해 성폭력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제때 의료 지원을 받진 못하고 있어요. 또한 그들이 당한 범죄 사건을 신고하면 북쪽으로 이동하는 여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존재합니다.”_카르멘사 갈베스(Carmenza Gálvez) /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환자들이 국경없는의사회 팀에게 전달한 바에 따르면, 무장한 남성들이 다리엔 갭을 지나가는 비용을 지불하라고 강요하며 이주민 무리를 납치하고 돈을 훔치고 있다. 또한 원치 않는 접촉부터 강간에 이르는 성폭력이 다른 이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혹은 이러한 목적으로 설치된 텐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치료한 성폭력 피해자의 95%는 여성이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폭력을 당하거나 일부는 살해당했다.
일부 젊은 남성들도 여성들을 보호하려다 구타당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요. 그들은 한 남자아이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이마에 총을 쏴서 죽였어요. 우리는 단지 더 이상의 죽음과 강간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는 여성 전사입니다. 우리는 정글에 강, 동물, 뱀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가장 해로운 것은 정글 속에 있는 남자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강간하고 우리의 삶을 끝내고 있어요.”
파나마에서 성폭력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성폭력으로 인한 심각한 의료적 및 정신적 피해를 지적한다.
성폭력은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성매개 감염이 제때 치료되지 않으면 여성의 가임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죠. 성폭력은 피해자를 HIV 감염에 노출시키고, 이로 인해 AIDS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위험이 생깁니다. 성폭력은 신체적 외상, 원치 않는 임신, 사회적 고립, 죄책감, 경험한 사건에 대한 반복적 생각, 우울증, 불안감, 자살 충동, 불면증, 약물 남용 위험을 초래하고 새로운 성폭력 사건 발생 위험을 증가시킵니다.”_카르멘사 갈베스
국경없는의사회는 성폭력을 포함해 이주민들이 노출돼 있는 수많은 위험을 종식시키기 위해 다리엔 갭에서 효과적인 대응을 보장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런 종류의 폭력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_카르멘사 갈베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원치 않는 임신과 HIV를 비롯한 성매개 감염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72시간 이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남미 및 중미, 멕시코, 미국 간 이주 경로의 여러 지점에서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신원보호를 보장하며 무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파나마 내 라하스 블랑카스(Lajas Blancas) 및 산 비센테(San Vicente) 이주민 임시 등록 센터와 바조 치키토(Bajo Chiquito) 지역사회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일반 진료 51,500건, 정신건강 진료 2,400건, 상처 드레싱 17,400건, 성폭력 치료 397건을 제공했다. 이주는 범죄가 아니다. 이동할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다.
라하스 블랑카스 내 국경없는의사회 텐트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의사와 환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년 4월. ©Natalia Romero Peñuela/MS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