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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브라질: '포르텔 사람' 소리 듣는 한국인 약사

2024.04.30

이름: 강경애

포지션: 약사(Pharmacy Manager)

파견 국가: 브라질

활동 지역: 파라주 포르텔

활동 기간: 2023년 8월 – 2024년 2월(6개월)


약품 창고에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한 강경애 활동가(맨 오른쪽) ©국경없는의사회/강경애

일전에는 시에라리온을 다녀오셨죠.(*관련글 읽어보기) 이번에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를 통해 파견된 활동가로서는 최초로 브라질을 다녀오셨습니다.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브라질은 나름 부유한 국가라(2022년 세계은행기준 1인당 GDP 17,827.6달러, PPP적용) 그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장 사업으로 개입할 일은 없었습니다. 브라질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후원자들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후원해주는 나라지, 본인들이 수혜를 받는 데 익숙한 나라라고는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진행되면서 열악한 사정으로 의료 접근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시작된 것이죠. 코로나19 비상대응팀이 철수하면서 상황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경없는의사회가 브라질 포르텔에서 2023년 3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실 굉장히 먼 곳이죠. 한국에서 출발하면 공항에서 비행기들만 갈아타면서 30시간 이상을 가는데, 먼저 스페인 마드리드로, 거기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가고요. 그 다음에는 3-4시간 걸리는 브라질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벨렝이란 곳으로 갑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벨렝에서 내륙 안쪽 포르텔까지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해먹을 매단 모터보트를 타고서 마라호 강을 따라가면 20시간은 걸립니다. 낮 열두 시에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했던 기억입니다.

 

저는 현장 약국 의약품 공급과 관리에 책임이 있었는데, 현지 체계 및 시내에 있는 일종의 중앙 공급 약국과 공조해 일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말씀드렸듯 브라질은 원조를 받는 데 익숙한 나라가 아닙니다. 외국인들의 개입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도 있다는 인상이었고요. 저는 가서 재고품 목록을 작성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강점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이라고 생각해요. 팀원들과 열심히 일하는 한편 주민들과도 많이 만나서 거부감을 해소하고 협조를 얻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무소 근방에서 브라질 청소년들과 함께한 강경애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강경애

마침 다녀오신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내용이 한국어로 소개된 적이 있어요.(*관련글 읽어보기) 활동가님이 현지에서 몸소 느끼신 해당 지역 의료보건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는 여성과 아동에 초점을 맞춰 소아과와 성생식보건 진료 및 인지제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긴 강을 따라 강변 곳곳에 소규모 부족 단위로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의료서비스 접근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지역에는 그야말로 집 하나만 있는데, 그곳에서 카누를 타고 몇 시간을 노 저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보건증진활동과 정신건강 상담 등 실태 파악과 진료가 시작됩니다. 인프라와 환경문화적 요소로 근친상간 혹은 미성년자 임신 등이 발생하는 경우를 좀 봤습니다. 다행히 이에 대한 브라질 관련법들이 허술하지는 않지만, 청소년 임신 방지가 중요해 보였습니다. 보건증진 교육 때는 브라질 사람인 매니저들이 모형을 보여주며 포르투갈어로 상세하게 피임 교육을 합니다.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산전후 관리 중요성도 설명합니다. 

 

말라리아의 위험도 언급해야겠습니다. 외국인 활동가도 말라리아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예방약 복용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왔습니다.

여러가지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도 일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제가 부임하고 중앙 공급 약국 환경과 재고 관리 체계 개선 작업을 했는데요. 일단 공급 예산과 약품의 유효기간 등에 유의하며 재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약품 공급을 하려면 보통 해당 약품이 20시간은 햇빛을 받으며 운반되어 오는 상황에서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약품 구매 조달의 경우, 아프리카에 위치한 활동지에서는 차라리 유럽을 통해 국제 조달을 할 수 있었는데, 브라질의 경우 현지 구매만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회사 품목의 경우와는 달리,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지에서 구입 가능한 해당 품목 허가승인을 받는 데서부터 일단 한두 달 시간이 소요됩니다. 현지에 수급이 충분치 않은 이 의약품이 벨렝까지 오는데, 그리고 거기서 다시 포르텔까지 오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이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런데다가 기본 온도 35-7도에 습도는 90-100퍼센트에 가까운 날씨가 이어지니까요.

 

물리적인 어려움에 더해 아까 말씀드린 현지 사람들과의 심리적 장벽이 있습니다. 외국인이 도착해 기존에 자기가 하던 일을 가르쳐 주려 들면, 아무래도 원래 근무하던 그곳의 전문가인 약사는 저항감이 들 수 있죠. 가르치려 들면 안 되고, 어느 정도 동화되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 후임으로는 포르투갈어를 따로 공부하고 모잠비크에서도 근무한 스페인 동료가 온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품 콜드체인 관리에 대해 강의하는 강경애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강경애

그렇다면 활동 기간 중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무엇인가요?

거부감이라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서의 국경없는의사회에 신뢰를 가지고 마음을 열게 되는 모습, 그리고 저 개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죠.

 

처음에 도착했을 때 중앙 공급 약국에 약사 1명에 창고와 수납 창구 정리 담당 2명이 있었어요. 우리 팀은 일단 선반에 놓여있지 않고 땅바닥에 부려져 있는 약품부터 일일이 손으로 라벨링하며 알파벳순으로 성분별로, 주사제 따로 경구제 따로 정리해두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 정리 작업에만 약 한달이 걸렸는데, 그렇게 결국 개선됐을 때 뿌듯했죠. 그리고 2월중 현지 국경일로 사무실도 휴일인 날이 있었는데, 기존 팀에서 자발적으로 재고 조사를 해야겠으니 지원 바란다고 연락하더라고요. 휴일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재고 조사를 한다고 하니 저도 휴일을 반납하고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그중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당신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출국 전까지 이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재고조사를 열심히 하냐고 물었더니 2월 중순에 카니발이 있어 그 전에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웃음). 아무튼 그렇게 미리 준비하려는 자발적 생각을 시작했다는 게 참 중요한 변화입니다. 저는 그 부분이 몹시 기뻤어요. 또 그들이 저를 동료로 받아줬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랑스러웠답니다.

의약품 창고 선반 관리 중인 강경애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강경애

생활 환경은 어떠셨어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은 외국에서 온 활동가 약 8명을 포함, 총 40명가량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인 사무실에 오전 7시면 출근했고요. 점심식사는 각자 흩어져 하니 저는 보통 동네 식당에 가서 뱃사람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포르텔 자체도 한국으로 치면 부안에서 진도읍 정도 규모랄까요? 퇴근은 5-6시 사이에 했는데 덥기도 하고 안전상 제한도 많아 시에라리온 근무지에서보다는 덜 자유로웠다는 느낌입니다. 재임 기간 중반쯤 강력 사건이 발생해 근 한 달간은 포르텔에서 걸어다니지 못했던 것 같네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어떤 영향을 가진다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 말씀드렸듯 원조라든가 남의 나라 도움을 받을 일이 없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동진료소 활동을 할 때 보니 처음엔 환자 1-2명이 찾아오던 곳도 나갈 때마다 찾아오는 환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진짜 활동을 하고 도움을 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점점 퍼지니까요. 동네 식당 주인도 홍보 대사가 되는 식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우리가 보통 전쟁 등 눈에 보이는 희생자들이 있는 사태가 발발하면 쉽게 더 관심을 갖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외딴 지역 의료 수요와 인지제고 교육 역시 일종의 응급 대응이 필요한 비상 상황인 것입니다. 결국엔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들이니까요. 빈곤 탈출과 영양 개선, 교육 문제들도, 전쟁 상황처럼 확연히 충격적이거나 눈에 잘 띄지는 않아도 엄연한 응급 상황이라는 것,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은 이 모든 곳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지 주민들과 보건증진교육 세션을 진행하는 모습 ©국경없는의사회/강경애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을 알려주세요.

당분간은 좀 쉬어보려고 합니다. 일전에 같이 소록도에서 근무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님을 찾아뵐지도 모르고, 어쩌면 포르투갈에 가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포르텔 동료들이 저더러 ‘우리의 포르텔 사람nossa Portelense’이라며 그립다고 연락이 오니 어쩌면 그곳에 다시 가볼 수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