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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나이지리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의 ‘인생 이모작’

2024.07.11

이름: 정부근

포지션: 공급망 관리자(Supply Chain Manager)

파견 국가: 나이지리아

활동 지역: 아부자

활동 기간: 2023년 11월 - 2024년 5월(6개월)


나이지리아 아부자의 모 프로젝트 재고조사 현장에서 현지 직원들과 함께한 정부근 활동가 ©정부근/MSF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는 처음 일하고 오셨습니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공급망 관리자(Supply Chain Manager)로서 나이지리아 아부자 현지에서 이뤄지는 물품과 서비스의 조달을 담당했습니다. 조달팀은 아부자 사무소나 나이지리아 내 3개 다른 프로젝트 장소에서 필요로 하는 의약품 현지 조달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물품, 즉 기름 등 발전기에 필요한 연료부터 컴퓨터, 에어컨, 스마트폰 등 각종 사무실 비품까지 제때, 적정가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나이지리아 전체 조달 책임자는 조달 코디네이터(Supply Coordinator)이며, 저는 아부자 사무소 조달과 더불어 현장 프로젝트에서는 구매할 수 없는 물품을 조달해주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국내외 유수 기업체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으시고 임원급으로 은퇴하셨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은 기업 현장에서 일하셨던 경험과는 꽤 달랐을 것 같습니다.

많이 다릅니다. 일단 경영진의 우선 순위가 완전히 다르죠. 민간 기업은 이익이 우선이고, 국경없는의사회는 생명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니까요. 그런데 국경없는의사회는 국가 정부의 관리를 받는 게 아니고 100% 순수하게 민간에서 경영하는 조직이거든요. 처음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매니지먼트 역량과 기술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알아서 잘 굴러가서요. 파견되기 전에는 ‘현지 직원들이 있고, 국제적으로 파견되는 직원(International Mobile Staff, 이하 IMS로 표기) 즉, 활동가들은 단기로 6-9개월씩만 파견된다’고 해서, ‘이게 관리가 잘 되겠나’하는 회의를 품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잘 굴러갑니다. 조직 내 규정과 매뉴얼이 잘 구비되어 있고, 필요한 IT 시스템과 솔루션이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직원들의 정신 상태가 완벽합니다. 제가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유럽계 다국적회사 사장으로도 있어봤고, 한국 정부 원조기관에서 파견되는 타국 정부 장관 자문으로도 일해봤는데요. 이런 곳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어서 처음엔 ‘여기는 뭐가 있어서 잘 굴러갈까?’ 궁금했을 정도로 잘 돌아갑니다. 아무래도 민간 부문은 높은 급여가 일의 동력이 될 테지만, 국경없는의사회는 급여가 높은 편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는데도요(웃음). 결국은 정책과 매뉴얼 부분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활동 지역 의료보건 상황 심각성도 직접 느끼셨나요?

제가 현지에 있던 3월 말에도 모처에 국경없는의사회 프랑스 회장 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해당 현장은 치안이 불안해서 외국인이 2인 이상 가면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지침을 직접 겪게 될 때마다 다시 한번 안정적인 치안을 누리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게 됐고요.

 

의약품 조달의 경우 국제 조달이 필요한 품목은 약사(Pharmacy) 팀에서 직접하고, 현지 조달이 필요한 품목은 저희 팀에서 했는데요. 제가 함께 일한 현지 직원이 모두 5명이었는데, 모두 국경없는의사회 조직 내에서 5-6년 혹은 10년씩 일해서 다른 포지션에서 옮겨오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의약품 창고를 관리하다가 온 직원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의약품 필요성과 조달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죠. 의약품 코디네이터의 경우 30대 중반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동료였는데 국경없는의사회 IMS로서의 활동을 보람 있고 금전적 보상도 괜찮은 직업적 활동으로 생각하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저보고는 자기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많은데 몸이 구부정하지도 않고 활기차게 잘 움직이고 학습도 열심히 한다고, 저를 봐서 이제 자신도 인생을 길게 보기로 했다더군요(웃음). 그럴 때 보람이 있었습니다.

5명의 팀원들과 함께한 정부근 활동가 ©정부근/MSF

그 외에 다른 IMS 동료들이 말라리아에 걸리는 걸 봤을 때 과연 말라리아가 풍토병 수준이구나 실감이 나긴 했습니다. 제가 현지 도착 2주쯤 되었을 때 에티오피아 출신 동료가 말라리아에 걸려 힘들어하는 게 워낙 안되어 보여서 제가 사이즈가 큰 피자 한 판을 사다 줬더니 감동해서는 울먹이더군요. 한국인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정’의 표시인데 말이죠.

좋은 동료들과 근무하셨나 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에티오피아 출신 동료 외에도 우간다 국적 여성 동료 2명, 그 외에도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프랑스, 일본, 필리핀, 남수단 등 다양한 국적의 IMS 동료들이 약 10-15명 정도는 늘 있었습니다.  나이가 좀 지긋하고 현지 부임한 지 가장 오래되어 숙소 내에서 나름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인 항공 코디네이터 동료가 있었는데 한국 이야기가 나와서 알고 보니까 한국에서 미군 장교로 근무했더군요. 저도 카투사로 근무했는데 부대 생활은 제가 좀 더 빠르더군요(웃음). 40여 년 전 한국에서의 시절 인연을 확인한 우린 틈만 나면 같이 숙소 근처에 산책을 다녔습니다. 현지 생활에 유용한 팁도 많이 전해 들었고요. 미국인 동료가 떠난 후, 후임으로 60대 초반의 프랑스인이 왔었는데 비슷한 연배라서 그런지 그와도 금세 친해졌습니다.

일본, 부룬디 등 출신의 IMS 동료들과 함께한 정부근 활동가 ©정부근/MSF

한국과 꽤 다른 색다른 환경에서 생활은 괜찮으셨나요?

아침 여섯 시 반이면 조식을 주로 시리얼, 계란프라이, 샌드위치 3가지 메뉴 중에서 번갈아 먹었는데, 먹은 걸 설거지하다 보면 2-3인씩 주방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저는 그럼 출근 준비 후 걸어서 숙소 맞은편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출근해 사무실 문을 다 열어 환기시키고 커피를 준비하며 기다리다 보면 이제 직원들의 출근 모습이 보이고, 상황 파악이 되죠. 11시쯤 되면 조금 지치고, 오후 1-2시는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에는 보통 공급선 관리 차원에서 외근을 했습니다. 외근 장소는 제약회사가 될 수도 있고 문구점이나 계약 대상인 숙박업체가 될 수도 있죠.

 

저는 일종의 ‘정보의 장’인 공용 주방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며 다른 동료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조리법을 보고 직접 만들어 동료들에게 대접한 저의 첫 불고기는 설탕을 두 스푼이 아니라 두 컵을 넣는 바람에 실패해서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다시 물어봤습니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동료들과 합작한 김치전도 완벽하게 나오진 않았고요. 가서 생전 처음으로 계란도 삶아봤는데, 하필 안은 쇠로 되어 있지만 겉이 플라스틱인 냄비를 사용하는 바람에 냄비째 태워먹는 민폐를 끼쳤습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 싶고 동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열심히 요리를 연습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집사람도 좋아하더라고요. 요리 학원에 등록하라고 하고요.

어느 날 주방 식탁 위 풍경 ©정부근/MSF

솔직하게 말해서 현지에 나가보기 전에는 제가 나이가 많다 보니 조금은 어색하고 위축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자신감이 붙었어요. 우간다 여성 동료들은 주방에서 저녁에 오래 함께 앉아있으면서 제가 많이 안 먹는 것을 보더니 (사실은 입이 짧아서 그런 건데) (웃음) 저를 본받아 식탐을 조절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상대방이 재미있어 하는 걸 보니까 선순환이 되고 제가 돌이켜봐도 참 잘 지내고 온 것 같습니다. 조직 갈등이 하나도 없었고, 여러가지 좋은 기억이 참 많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으셨던 겁니까? 새로운 생활이 즐겁기만 하셨나요?

어쩌면 제가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 기여한 정도가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국경없는의사회 근무 경험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입니다. 첫 활동이라 일종의 학습 과정이기도 했는데 많이 배웠습니다.

 

제 전공과 경력이 무역통상 쪽이지만,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국제 구호 단체에서 공급망 관리에 대한 실무를 몸소 하게 되면서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민간 부문 특히 개인 후원자들의 후원 비중이 거의 100%에 가까운 높은 비율이기 때문에 책무성이 유독 크구나, 사업 비용을 최대한 절감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도 직접 느꼈고요.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인도주의 국제 구호 단체로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사명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니까 사업의 실행 타이밍이 중요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공급선 관리도 비용 대비 고품질로 빨리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몸소 느끼고 왔죠. 국경없는의사회가 이미 여러 IT 툴을 사용해 잘 운영하고 있구나, 나도 그 일원이구나, 하는 것도 체득되는 느낌이었고요.

 

수십 년 전 제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한국 대기업에서는 경쟁이 치열했고 자기가 맡은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 와 보니 한 국가 내에서 개별 프로젝트로 세분되어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시간표를 짜고 각 부서별 수요 요청에 따라, 예산을 운용해 입맛에 맞게 조달해주는 데서 오는 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현장에 있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거기서 계속 일할 직원들에게는 누차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고객 만족이다. 그런데 우리 고객이 누구냐?’ 내부적으로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소, 프로젝트 현장 책임자가 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생명을 살리는 환자들이 될 수도 있죠.

미래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혹은 후원자 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도 작년 초반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을 시작한 후원자입니다. 활동을 나가게 된 동기로 생업에서 은퇴 후에 ‘내가 후원하는 곳에 직접 가서 체험을 해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현장에 다녀온 후부터는 집사람과 결혼한 자식들에게도 국경없는의사회 후원을 권유해서 이제 그들도 후원자가 됐습니다. 주위 친구 소모임 등에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경험과 현장 사례를 소개하고 적극 추천할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더 나이들기 전에 너희도 다녀와라. 아니면 후원을 해라’하고요. 저는 대학교 등에 강의도 나가는데, 제가 다녀온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을 경영 우수 사례로 소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인생 이모작 시기에는 손주들 돌보기와 강의 등 여러가지 우선순위가 있을 수 있고 실제 저도 그런 것들도 다 하고 있지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도 정말 좋은 선택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재고조사 후 직원과 식사하는 정부근 활동가 ©정부근/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