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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야외 감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2024.07.15

비키 호킨스(Vickie Hawkins)는 2022년 10월 10일부터 국경없는의사회 네덜란드 사무총장과 암스테르담 운영센터(OCA) 경영진 의장을 역임하고 있다. 비키는 2014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 영국 사무총장으로 근무했으며, 옥스팜에서 처음 경력을 쌓기 시작한 이후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여 국경없는의사회 중국 사무소의 재정 코디네이터로 입사했다. 이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등 여러 국가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현장 책임자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005년 국경없는의사회 영국 사무소의 프로그램 유닛(Programmes Unit) 책임자가 된 그녀는 2011년 미얀마 현장 부책임자로서 다시 현장으로 떠났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경영 이사직을 맡았다. 20년 이상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근무한 비키는 사우샘프턴 대학교(Southampton University)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 학위를 받았다. 아래는 비키가 시리아 북동부에서 활동하며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전해온 내용이다.

국경없는의사회 네덜란드 사무총장이자 암스테르담 운영센터 경영진 의장을 역임하고 있는 비키 호킨스. ©MSF


국경없는의사회에서 25년간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사람이 있을 때도 있죠. 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게 어떤 느낌, 즉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기운일 때가 있는데, 이런 건 설명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시리아 북동부에서 전개되는 프로그램에 최근 방문했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였죠.

 

시리아 북동부에서 우리 팀은 1차 의료지원과 더불어 당뇨병이나 심장병 같은 비전염성 질환(NCD)을 치료하고, 알홀(Al-Hol) 캠프에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정수장을 운영합니다. 또한 의료팀은 알홀 캠프에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시리아 북동부는 복잡한 지정학적 세력들로 이루어진 그물망 속에 존재합니다. 이웃 국가인 튀르키예와 이라크 사이 위치해 시리아 나머지 지역과 분리되어 자치적으로 통치되는 시리아 북동부는 여러 통제선으로 갈라져 있어 이곳에 거주하는 약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 머리 위에는 마찰의 소용돌이가 시끄럽게 휘몰아칩니다.

 

시리아 북동부에 갔을 때 처음 방문한 곳 중 하나는 시리아-이라크 국경 인근 알홀 마을 남쪽 외곽에 있는 대규모 수용소인 알홀 캠프였습니다. 그곳에는 4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대한 울타리가 쳐진 텐트와 그 주변을 둘러싼 무장 경비병들로 이루어진, 사실상 야외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먼지를 견디며 텐트 안에서 수년 동안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알홀 캠프에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해 읽고 들은 바가 많았지만, 직접 보고 나니 이미 제한적인 환경에서 제한적인 공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몸소 실감할 수 있었죠.

 

해당 캠프는 원래 시리아와 이라크 내 분쟁으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에게 임시 거처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던 곳입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사람들이 이슬람국가(IS) 통제 지역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후, 해당 캠프는 점점 더 안전하지 않고 비위생적인 야외 감옥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알홀 캠프 내 사람들은 사실상 갇혀 있는 상태이며, 수감자 중 프랑스, 캐나다, 호주, 시리아, 이라크 등 출신 국가로 송환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알홀 캠프를 둘러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의 숫자였습니다. 캠프 내 인구 중 무려 65%가 18세 미만이고 51%가 12세 미만입니다. 캠프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쓰레기로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흙바닥에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들에겐 교육이나 사회 활동을 정기적으로 접할 기회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그렇게 살도록 강요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집니다.

 

폭력과 절망 사이 갇혀 있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수년 동안 알홀의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기록해 왔지만 5년이 지난 현재도 상황은 섬뜩할 정도로 변한 게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시리아 북동부를 떠난 후 몇 주 동안 보안군의 습격이 또 한 번 있었습니다. 6월 10일 월요일 이른 새벽에 텐트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우리 캠프 진료소에서 부상 치료를 받던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사람들이 신체적 폭행을 당했으며, 개인 소지품이 파괴되고, 9명의 아이들이 정신이 혼미한 모친으로부터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아직 자녀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죠. 12세 이상의 소년들은 외부와의 접촉이나 감시가 거의 없는 캠프 외부의 구금 시설로 매일 같이 이송되어 수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벌어진 소위 ‘보안 작전’은 1월 29일에 일어난 폭력적인 습격에 이은 것으로, 이 과정에서 텐트가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구타당했으며 최소 아동 1명과 여성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라카(Raqqa)와 하사케(Hassakeh) 도시에서 전개되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그램을 방문했을 때, 저는 시리아 북동부 내 절박함이 비단 알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 북동부 전역에서 서비스 격차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저는 1차 의료보건 센터를 지원하고, 영양실조 아동을 위한 치료식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NCD를 치료하는 2개의 진료소를 운영하고, 콜레라와 홍역을 비롯한 질병 유행에 대응하는 우리 팀을 방문했습니다. 하사케시에서 전개되는 NCD 프로그램에는 약 3,000명의 환자가 있으며, 라카에서 전개되는 NCD 프로그램에서는 2,800명 이상의 환자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니셔티브와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시리아의 경제 위기가 10년 이상의 분쟁 기간 동안 사람들이 겪은 모든 것에 더해 오늘날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국경없는의사회의 무상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식량을 살지 혹은 만성 질환 치료에 필요한 약을 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또한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것을 잃어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11년 이전에는 시리아의 보건 체계가 잘 발달되어 있었지만, 시리아 북동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은 국경을 넘을 수도, 일상 너머의 미래를 볼 수도 없는 이 비좁은 곳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버림받은 느낌은 제가 들은 여러 사연에서도 느껴집니다. 안타깝게도 데이터가 이를 증명하죠. 제가 시리아 북동부에 있는 동안 시리아 지원을 골자로 한 2024년도 국제회의가 개최되었고, 그 결과 시리아 전역의 인도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재원이 20% 삭감되었습니다. 이는 2년 연속 감소한 것이죠. 2024년 시리아의 인도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화 40억 7천만 달러가 필요하지만, 인도적대응계획(Humanitarian Response Plan, HRP)을 통해 조달된 재원은 그중 6%인 미화 3억 2천6백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리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면서 국제 사회가 시리아 상황에 얼마나 무감각해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알홀 캠프의 경우 지원 수요가 이보다 더 시급해질 수 없는데, 올해 3월 재원 부족으로 인해 알홀을 포함한 11개 캠프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의료 이송 체계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러한 재원 삭감으로 인해 알홀 캠프 및 시리아 북동부 내 기타 캠프 주민들은 치료 및 예방 가능한 질병을 포함한 전문 보건의료에 더해 외과 수술 같은 긴급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사라진 겁니다.

 

경제 위기와 식량 및 의료 물자 공급 문제에 더해 시리아 북동부는 전례 없는 물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강우량 감소, 유프라테스강(Euphrates River)의 수위 저하 및 극심한 가뭄,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던 알루크(Alouk) 정수장의 공급 중단, 파괴된 수도 인프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시리아 주민들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수확량 및 소득 손실이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콜레라, 홍역, 호흡기 감염과 같은 질병이 급속히 확산할 위험이 늘어났고요.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팀과 환자들로부터 질병 유행으로 인한 영향을 예방 및 제한하기 위해 시리아 북동부에서 전염병 대비를 강화하고, 보건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고,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등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시리아 북동부를 떠나며 그곳에도 일말의 희망은 있지만, 세계로부터 잊혀 수많은 문제를 홀로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국제 사회가 인도적 지원 제공에 있어 여전히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죠. 특히 시리아동북부자치행정부(Autonomous Administration of North and East Syria), 미국이 주도하는 ISIS 대응 국제연합(Global Coalition to Defeat ISIS), 국제 공여 단체, 알홀 캠프에 자국민이 억류되어 있는 국가들은 해당 캠프에 억류된 사람들을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시리아 분쟁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앞서 언급한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 느낌입니다. 이는 이미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이들은 사실상 갇힌 채 취약한 상태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