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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지진 발생 후 1년, 아물지 않는 정신적 상처

2024.02.19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땐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 아이들이 발밑 땅이 흔들릴까 두려움에 떨 때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시리아 북서부 주민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다. 해당 지역은 경제적 위기 및 10년 넘게 지속된 전쟁의 충격에 더해, 2023년 2월 6일 시리아 북서부와 튀르키예 남부를 강타한 치명적인 지진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텐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과 건물을 두려워하죠. 우리는 정말 지쳤습니다.”_힌드(Hind) /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Idlib)주 아프린(Afrin)에서 다섯 아이와 지내고 있는 36세 여성

시리아 북서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 잔해 위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2023년 2월. ©Omar Haj Kadour

지진으로 인해 빈곤과 실향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보다 열악해졌으며 경제 상황과 교육 시스템의 기능이 악화되었고 인프라가 훼손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아이들은 보호자를 잃거나 신체적 부상 및 절단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요인으로 인해 시리아 북서부 전역에 있는 수천 명의 정신건강이 크게 저해되었습니다.”_토마스 발리벳(Thomas Balivet) /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책임자

2023년 2월 이전, 시리아 북서부 주민 다수가 전쟁으로 인해 이미 집을 잃은 상태였다. 지진 발생 이후에는 거처, 식량, 깨끗한 물, 혹은 기타 기본적인 필수품도 없이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전쟁과 지속되는 포격 때문에 이들리브 동부에 위치한 우리의 고향 사라키브(Saraqib)를 떠나야 했습니다. 수년간 실향민 처지로 안전한 곳을 찾아다닌 후, 북부에 있는 아프린에 정착했죠. 우리가 머물렀던 집에는 벽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햇빛을 가리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담요를 걸쳐 두곤 했습니다. 남편이 일을 하긴 했지만, 가족들의 끼니를 충당하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다음엔 지진이 발생했고 우리는 또다시 모든 걸 잃었습니다.”_힌드

규모 7.8의 첫 번째 지진은 시리아 북서부를 이미 할퀴고 갔던 전쟁의 상흔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파괴의 흔적을 남겼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서부 지역 전경. 2023년 2월. ©OMAR HAJ KADOUR
이들리브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책임자 오마르 알 오마르(Omar Al-Omar)는 지진 발생 후 첫 몇 시간 동안의 상황을 떠올리며 말한다.

저는 새벽녘에 이들리브 지역 소재 마을 살킨(Salqin)으로 향했습니다. 건물 전체가 붕괴되어 잔해가 되어버린 것을 직접 보았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제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잔해 밑에 깔린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입니다. 이후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와 공동으로 운영되는 살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으로 들어선 순간, 병실과 복도에 부상자와 시체가 즐비한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더 이상 서있을 수조차 없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병원에서 우리는 여진을 느꼈고 매 순간 엄청난 수의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제가 죽는 그날까지 절대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_오마르 알 오마르

2023년 2월 전부터도 시리아 북서부의 보건 체계는 자금이 부족한 의료시설 및 제한적인 서비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진으로 인해 55개의 의료시설이 파괴되어 정상 가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시리아 북서부 전역의 주민들은 의료 지원뿐만 아니라 화장실, 샤워실, 난방 시스템, 겨울옷, 발전기, 담요, 위생 키트, 청소용품 등이 필요했다.

첫 지진 발생 후 몇 시간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응급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즉시 국경없는의사회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필수 구호 물품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후 며칠 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식량과 대피소 자재 등 의료 및 비의료 물품을 실은 트럭 40대를 해당 지역으로 보냈다. 한편 국경없는의사회 식수위생 전문가들은 지진 생존자들을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을 건설하고 깨끗한 식수를 제공했다.

구호물자를 실은 국경없는의사회 트럭 뒤에 서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 2023년 2월. ©Rami Alsayed

긴급 대응의 급성기 이후, 우리는 대피소•식량•구호 물품을 제공하고 의료 지원과 식수위생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기본 생필품 부족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_토마스 발리벳

지진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문제행동이 특히 아동들 사이에서 급증했습니다. 공황 발작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공포증 및 심리적 문제로 인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있죠.”_오마르 알 오마르

주민들의 정신건강 수요 대응

국경없는의사회는 2013년부터 시리아 북서부 지역 주민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지진 발생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긴급 대응의 일환으로 종합적 정신건강 대응을 개시했다. 정신건강 상담사들로 구성된 이동진료 팀이 시리아 북서부 전역 80곳에 배치되어 심리적 응급처치와 중등도 및 고위험군 환자를 위한 전문 상담을 제공했다. 또한 사람들이 즉각적인 심리적 반응과 이후 발생하는 감정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세션도 운영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진 발생 후 총 8,026건의 개별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했다.

20일간 화상 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후에도 화재 관련 악몽에 시달려 전문 심리치료를 받은 옴란(Omran)의 경우 ©MSF/Amani Al-Ali

여성 및 아동을 위한 ‘안전한 공간’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파트너 단체와 협력하여 알레포(Aleppo) 북부와 이들리브주 소재 네 곳에 ‘안전한 공간(safe spaces)' 프로그램을 설립해 여성 및 아동들이 외부의 혹독한 현실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해당 활동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리브주 소재 세 곳에도 추가 설치되었다. 이렇듯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텐트에서 여성과 아동들은 그림 그리기와 같은 게임이나 활동, 그룹 세션에 참여하거나 단순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조용히 사색에 잠기든 활기찬 대화를 나누든, 이 공간에서 여성과 아동들은 잠시나마 마음속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리브주 북부에 위치한 마을 아트메(Atmeh) 소재 화상 병동에서 정신건강 팀원이 한 아동 환자와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2023년 10월. ©Abdulrahman Sadeq/MSF

약 25,000명의 여성 및 아동이 안전한 공간을 이용했으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중 1,900명의 여성 및 아동을 타기관에 보내 신체 및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힌드 또한 국경없는의사회의 안전한 공간을 자주 찾는다.

안전한 공간에 들어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고통과 두려움도요. 아이들도 저와 함께 와서 놀죠. 우리 모두 안전한 공간에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진 이후의 일을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_힌드

국경없는의사회는 2023년 2월 이후 시리아 북서부에서 여성과 아동들에게 정신건강 및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안전한 공간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MSF/Amani Al-Ali

분쟁과 지진의 잔해 속에서 살아가는 시리아 북서부 주민들은 여전히 깨끗한 물, 식량, 거처, 필수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

시리아 북서부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는 필수적입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만 회복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_토마스 발리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