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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또 다른 생존의 문제, 전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헬프라인

2024.10.30

제 딸은 겨우 14살이지만, 전쟁을 겪고 특히 폭격과 같은 상황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 빨리 철이 들어야 했죠.”_에즈디하르(Ezdihar) / 레바논 실향민 

현지시각 9월 28일 밤, 베이루트(Beirut) 남부 교외에 거주하는 에즈디하르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이스라엘군 공격이 임박했다는 경보를 받았다. 남편은 어머니를 돌보러 갔고,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웃들과 함께 베이루트 중심부로 피난했다.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그들은 원래는 상업 건물이었지만 현재 3,500여 명의 실향민을 수용 중인 아자리에(Azarieh) 피난처로 갔다. 레바논 당국에 따르면 현재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체 실향민 수는 약 120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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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자리에 피난처에서 지내고 있는 에즈디하르와 그녀의 딸.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국경없는의사회는 에즈디하르의 딸을 포함해 아자리에와 같은 집단 피난처에 머무는 주민들의 의료 및 정신건강 지원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에즈디하르의 딸을 비롯한 아이들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세대로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전쟁 및 실향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건 당국에 따르면 전쟁이 격화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레바논에서 2,3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지난 3주 사이에 사망했다. 또한 11,1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폭력이나 파괴를 목격하는 경험은 특히 아동의 심리적 및 정신적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즈디하르의 딸을 비롯한 레바논 전역의 수많은 아동은 집을 강제로 떠나고, 학업이 중단되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식량과 안식처와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도 구하지 못하는 등 전쟁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서 행동 문제, 가령 분노•공격성•기타 문제가 되는 행동들을 발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동들의 안위가 더 크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_아마니 알 마샤크바(Amani Al Mashaqba) / 국경없는의사회 베카(Bekaa)주 정신건강 활동 책임자 

그러나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동 뿐만이 아니다. 다수의 국경없는의사회 환자들은 끊임없는 폭력 위협으로 인해 압도감과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말하며, 불안정한 상황 속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실향 과정에서 가족과 떨어지는 아픔은 이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만성 질환을 관리하거나 1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은 특히 정신적 외상 관련 정신건강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정신적 외상이 수면 장애부터 식욕 상실까지 초래하면서 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죠._알 마샤크바 

국경없는의사회는 레바논 전역의 이동진료실에서 심리적 응급처치와 심리교육을 제공하는 등 실향민들에게 1차 의료서비스와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취약성을 표현하게 하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팀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실향민 대다수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설득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일반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도록 교육 받은 어린 소년들은 더욱 그렇다. 

정신건강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헬프라인을 개통해 실향민들이 불안, 슬픔 등 정신적 외상과 관련된 증상 관리를 돕는 임상심리사들에게 원격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헬프라인 

이러한 헬프라인을 통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서비스를 대면으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특히 격렬한 폭격과 이동 제한으로 인해 이동이 어려운 레바논 남부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향을 겪고 높은 교통비와 정신건강을 둘러싼 문화적 낙인으로 인해 의료지원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접근성 개선은 지금처럼 불안정한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 

헬프라인에 전화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녀가 전쟁 상황에 대처하도록 돕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로, 자녀의 행동 변화를 발견한 경우가 많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서운 폭탄과 총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자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진실과 다르게 꾸며서 설명하기도 한다. 가령 총소리는 결혼식에서 축하의 의미로 쏘는 '축하 발포'라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들은 헬프라인을 통해 부모들이 자녀들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자녀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에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이 느끼는 감정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러한 소리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나 말로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도록 독려할 수 있습니다.”_알 마샤크바 

아자리에 피난처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페이스 페인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지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처음에는 하루 5건이었던 헬프라인 전화 수신 건수도 하루 중 오후에만 80건까지 급증했다. 지금까지 정신건강 관련하여 거의 300건에 달하는 전화가 접수되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지난 2주 사이에 발생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팀은 2024년 10월 21일 기준 약 5,000명에게 심리적 응급처치 그룹 세션을 제공했으며, 450명 이상에게 정신건강 개별 세션을 제공했다. 또한 환자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거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등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하고 있다. 필수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매트리스, 위생 키트 등 필수 비식량 물품도 배급하고 있다. 

레바논 위기 사태 

이번 전쟁은 경제 위기 장기화로 인해 레바논 인구의 80% 이상이 빈곤에 빠지고 지원 수요가 긴급한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공공 의료서비스는 미흡해지고 민간 의료서비스는 비용 증가로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등 레바논 의료보건 분야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임상심리사 중 한 명은 한 실향민 여성이 국경없는의사회 서비스가 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울었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재정적 부담 없이 이러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_알 마샤크바 

더욱이 레바논에는 150만 명의 시리아 주민과 2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피난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여러 차례 실향을 겪었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추방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는 트라우마를 다시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_알 마샤크바 

국경없는의사회는 국내실향민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서 지원 수요 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전개 상황에 따라 최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서 파트너 단체 및 병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