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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우크라이나: 빈니차에서 정신건강 지원 제공

2024.06.21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마리우폴(Mariupol)에서 살았어요. 우리한테는 아름다운 집이 있었고, 저에게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는 자신감을 가지고 앞날을 기대했죠. 이 모든 것이 2022년 2월에 끝장났어요. 친척들 모두 우리 집 지하실로 모여들었어요. 아이들과 어른들을 포함해 13명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죠. 폭발음이 너무 커서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날아갈 정도였습니다. 떠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었어요. 만약 그곳에 남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 않을 거예요.”_알리나 로셰바(Alina Rosheva) / 우크라이나 국내실향민

20일 동안 지하실에서 피신하며 지낸 알리나(20)는 친척들과 함께 길고 위험한 여정을 떠났다. 그녀는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검문소 십여 개를 지나서야 최전선을 넘어 우크라이나군 통제 구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포리지야(Zaporizhzhia)를 거쳐 서쪽으로 향한 그녀는 마침내 빈니차(Vinnytsia)시에 도착했고, 이곳은 그녀의 임시 거처가 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국내 실향민은 알리나를 포함해 460만 명 이상이며, 그중 16만 명은 빈니차에 머물고 있다. 2022년 4월부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동진료소를 운영하여 실향민들이 머무는 도시 안팎의 피난처에서 의료 및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했다. 이렇게 제공되는 심리적 지원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교육 직원들은 성인과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 그룹 세션을 운영한다.

빈니차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외상 센터에서 보건증진 교육 직원이 그룹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2024년 4월. ©Fanny Hostettler/MSF

심리적 지원은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심리 세션을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얘기를 부모들한테서 들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세션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이 함께 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기뻤습니다.”_마리아나 라초크(Mariana Rachok) /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교육 직원

전쟁 외상 환자를 위한 정신건강 치료

빈니차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분쟁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인 정신건강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2023년 9월, 국경없는의사회는 전쟁 관련 PTSD를 겪는 환자들을 위한 외상 센터를 빈니차 지역에 마련했다.

환자들 대부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한 실향민입니다. 이들은 절망감, 악몽, 반복되는 플래시백(flashback, 예기치 못하게 과거 경험이 갑자기 떠오르는 현상), 불안, 단절감을 겪습니다. 이는 모두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3~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이는 PTSD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상태가 나날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_릴리아 사브첸코(Lilia Savchenko)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들은 현재 매주 약 3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초기 진단 시 의사와 임상심리사는 상담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검사와 임상 관찰을 기반으로 진단을 내린 뒤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치료 프로그램은 환자의 정신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 10~15회 상담으로 이루어집니다.”_릴리아 사브첸코

상담 진행 시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들은 증거를 기반으로 마련된 치료법을 3단계(안정화, 외상 기억 처리, 사회적 재통합)로 나눠 환자들의 필요에 맞게 제공한다.

정신건강 치료를 둘러싼 낙인

PTSD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도움을 구하길 주저하는데, 이는 정신건강 치료를 둘러싼 낙인 때문에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이는 환자들의 도움을 구하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식 제고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_안드리 파나시우크(Andrii Panasiuk)  /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사 및 정신건강 책임자

PTSD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 증상에 대해 알리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일반의(GP) 및 재향군인회들과 함께 심리치료 세션을 진행한다. 또한 야마리우폴(I’Mariupol) 센터와 헤르손(Kherson) 허브 등 국내 실향민을 위한 지역 단체들과 진행하는 창작 워크숍과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PTSD 징후에 대한 심리교육 세션을 진행한다. 이러한 활동 진행 시, 보건증진 교육 직원들은 신뢰 구축을 위해 각 참석자와 개별적으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식별하고 이들이 치료를 받도록 격려한다.

야마리우폴 센터에서 창작 워크숍 및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든 작품들. 2024년 4월. ©Fanny Hostettler/MSF

저는 종종 신체적 부상과 정신적 부상의 유사점을 찾곤 합니다. 상처를 소독하거나 치료하지 않고 단순히 덮어놓고 무시하려고 하면 상처는 더 심해질 뿐입니다. 임상심리사들이 사람들의 집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데려올 수는 없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서 극복하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_마리아나 라초크

다시 살아갈 힘

헤르손에 있는 집을 떠나온 리디아 바주알예바(Lidia Bazualyeva, 74세)는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PTSD 관련 정신건강 지원을 받은 경험을 전하며 미소를 띠었다.

이런 모든 창작 활동들과 임상심리사와의 상담이 저한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됐어요. 저는 외상 후 겪는 이런 굉장히 힘든 상태에서 서서히 빠져나왔어요. 이렇게 만난 분들은 이제 저의 유일한 가족이에요. 보건증진 교육 직원들이 제공하는 활동들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어요. 이들과 소통하고 정보를 나누다 보면 저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해요.”_리디아 바주알예바

국경없는의사회에게 PTSD 관련 정신건강 지원을 받은 리디아 바주알예바. 2024년 4월. ©Fanny Hostettler/MSF

알리나 로셰바도 최근에 국경없는의사회 PTSD 프로그램을 마쳤다.

저는 굉장히 많은 심리치료 세션에 갔어요. 힘든 여정이었죠. 회복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는 길고 복잡한 과정이에요. 하지만 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공황발작이 멈췄어요. 증상이 사라졌죠. 드디어 이런 증상을 통제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어요.”_알리나 로셰바

현재 알리나는 야마리우폴 단체에서 문화 활동 조직을 담당하고 있다. 빈니차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이제 다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우크라이나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우크라이나 활동을 1999년에 처음 개시해 HIV/AIDS, 결핵, C형 간염 치료를 제공했다. 2014~2019년에는 분쟁 피해 지역인 루한스크(Luhansk)와 도네츠크(Donetsk)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하고, 현지 보건 인력을 대상으로 동료 지원 및 정신건강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활동을 전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급격하게 격화된 이후 2년간 국경없는의사회는 활동을 확대하여 환자 대피 및 이송, 이동진료소를 통한 의료 및 정신건강 치료, 수술·응급·집중 치료, 물리치료, PTSD 관련 심리적 치료 등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9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빈니차 지역에서 심리적 지원을 목적으로 새롭게 구축된 정신건강 센터에서 전쟁 관련 PTSD를 앓는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심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진료소 또는 협력 기관들에서 약 1,400건의 상담과 4,400건의 인식 제고 세션을 제공했다. 현재까지 81명의 환자들이 심리치료를 끝내고 프로그램을 마쳤다.


▼우크라이나 빈니차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외상센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