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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더 이상 이곳에서의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2024.10.21

한때 베이루트 중심부 소재 번화한 상업 센터였던 아자리에(Azarieh) 건물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발생한 피란민들을 위해 대피소로 변모했다. 국가 당국에 따르면 현재 이 대피소에는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레바논 전역 800개 이상의 대피소 중 하나이다. 이곳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며, 건물은 장기 거주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가족들이 적절한 자원과 기본적인 물자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거주민들의 긴급한 의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곳에 이동의료팀을 파견하여 필수적인 1차 의료서비스와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피해 아동들을 중점적으로 돌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위생용품•매트리스•담요와 같은 필수 비식량 물자를 배급해 취약한 가족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자리에 대피소에서 한 아동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이마드 하셈(Imad Hachem) 

이마드 하셈(55세)은 레바논 베이루트(Beirut) 남부 교외에서 아내, 여자 형제, 아들, 사촌과 함께 살고 있었다. 현지시각 9월 27일 발생한 공습으로 헤즈볼라 전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가 사망한 후, 이마드는 이 지역의 치안 상황이 악화될 것임을 직감했다. 가족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각종 신분 확인 서류들을 포함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물품을 챙겨 대피했다. 며칠 동안 매트리스와 담요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마드는 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식량 덕분에 현재 아자리에 대피소에서 겨우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위와 강우로 대피소의 생활 환경이 보다 열악해질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틀 동안 암 치료를 받지 못한 사촌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거주하던 이마드 하셈.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우리는 보건부에서 비싼 치료를 받곤 했지만, 이제는 그 치료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_이마드 하셈 

이마드는 며칠 전 자신이 살던 동네를 방문할 수 있었다. 집이 파괴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레바논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돌봐야 할 아내와 아들이 있습니다.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떠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야겠죠.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떠나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_이마드 하셈 

에즈디하르 알 디카르(Ezdihar al Diqar) 

에즈디하르 알 디카르(39세)는 레바논 동부 바알베크(Baalbek) 출신으로,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남편, 14세 딸, 17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첫 폭격이 도시를 덮쳤을 때, 가족은 상황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며 처음에는 남아 있기로 했다. 그러다 9월 28일 오후 10시 30분경, 저녁 식사 중 인근 지역에 공습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받고 급히 대피하기로 결정했다. 

레바논 동부 바알베크 출신 에즈디하르 알 디카르.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에즈디하르의 남편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마운트 레바논(Mount Lebanon)에 있는 지역으로 떠났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고려했을 때, 혼잡한 대피소에 머무르는 것이 상황을 보다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하에 그녀를 아들과 그 형제와 함께 다른 아파트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에즈디하르는 두 자녀를 데리고 이웃 14명과 함께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떠나 도심으로 향했다. 이들은 피난처를 찾지 못해 첫날 밤을 길거리에서 보냈고, 이후 시내 중심부에서 한때 번화한 상업용 건물이었던 아자리에 대피소로 이동했다. 이곳은 현재 피난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 상태다. 아자리에에서 2주를 보낸 후, 에즈디하르는 대피소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어 어디로 가야 폭격을 피할 수 있을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제 베이루트 중심에서 이스라엘 공습에 이어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는데, 우리와 불과 2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죠.”_에즈디하르 알 디카르 

여성으로서 에즈디하르는 대피소 밖으로의 이동을 제한하거나, 가족이 머무는 대피소 내부 작은 공간의 문을 잠그는 등 추가적인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느낀다. 

에즈디하르는 꿋꿋하게 이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지만, 어머니로서 전쟁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목격하고 있다. 

제 딸은 겨우 14살이지만, 우리가 겪어온 모든 어려움 속에서, 특히 공습과 같은 상황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너무 빨리 철이 들어야 했죠.”_에즈디하르 알 디카르 

아바스(Abbas) 

시리아 출신인 아바스(28세)는 아내와 부모와 함께 안전을 찾아 레바논으로 왔다. 그는 베이루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직장을 잃었다. 아바스의 가족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살다가 폭격을 피해 떠나기로 결정했다. 여러 날을 길거리에서 보낸 후, 그들은 아자리에 대피소로 이동해 18일째 한 방에서 다 같이 생활하고 있다. 아바스는 8개월 된 아들 아미르(Amir)의 건강이 매우 걱정된다고 말한다. 

시리아 출신인 아바스와 그의 아들 아미르.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아미르는 열이 나고, 우리가 이곳에 온 이후로 자주 아픈 상태입니다. 우유와 기저귀도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점점 더 자주 울고 있어요. 환경 변화와 우리를 둘러싼 불안정한 상황, 특히 폭격 소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_아바스 

아바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시리아를 떠났지만, 이제는 갇힌 기분이라고 설명한다. 

안전을 찾아 레바논에 왔지만, 오히려 더 취약해진 것 같아요.”_아바스 

시리아 내 아바스의 자택은 파괴되었고 경제 상황이 열악해 일을 구할 수도 없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제이나브 오제이르(Zeinab Ozeir) 

제이나브(29세)는 9월 27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헤즈볼라 전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다음 날, 남편과 자녀들을 데리고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떠났다. 처음에는 북부로 향했지만, 그곳에서 떠나라는 말을 듣고 다시 베이루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레바논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피난민들을 위한 아자리에 대피소에 정착했으며, 부부는 10제곱미터(약 3평) 방에서 4명의 자녀 헬레나(Helena, 8세), 아흐마드(Ahmad, 7세), 아미르(Amir, 18개월), 아바스(Abbas, 2개월)와 함께 살고 있다. 

제이나브 오제이르와 그녀의 아들 아바스. 2024년 10월. ©Antoni Lallican/Hans Lucas 

제이나브는 사랑하는 이들과 집을 두고 떠나야 했던 이후로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불확실한 감정에 대해 설명한다. 

더 이상 이곳에서의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설령 전쟁이 끝난다 해도 우리 집은 어떻게 될까요? 가족과 친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_제이나브 오제이르 

그녀는 2006년 전쟁을 겪었지만, 이번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또한 전쟁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헬레나와 아흐마드를 학교에 등록시켰는데, 그 이후로 아이들은 언제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계속 묻고있다. 무엇보다도 전쟁은 모든 가족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이나브는 악몽으로 가득한 밤과 작은 소리에도 계속 깨어나는 상황을 겪고 있다. 전날 이스라엘 폭탄이 대피소에서 2km 떨어진 건물에 떨어졌을 때, 아이들은 더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제이나브 역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녀와 남편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가족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만 있다면 목적지가 어디가 되었든 레바논을 떠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