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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알-달레에서 온 소식

2015.07.01

알-달레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예멘 보건부가 운영하는 병원들을 지원하면서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초 이후, 알-달레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는 1만317명의 응급실 환자를 받았고, 1232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기도 했는데 그중 490명 이상이 전쟁 부상자였습니다. 아래 내용은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알-달레에서 전해 온 소식들입니다.

예멘 보건부가 운영하는 병원들을 지원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카타바에 있는 응급실의 모습 ⓒJean-Pierre Amigo/MSF

예멘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알-달레에서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공습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폭발음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공습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조금 앞서 비행기 소리가 들렸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바로 제 옆에서 폭탄들이 터지는 것 같았죠. … 온 몸이 떨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알-달레 주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병원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려는데 교통편을 전혀 찾지 못해 정신을 잃는 듯했습니다. 병원 앞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갈 곳을 잃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작은 시내 버스에 올라탄 저는, 최대한 빨리 차를 몰아 그 곳을 벗어나 달라고 기사님께 부탁을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 휴가를 내고 식구들과 집에 있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리 오래 쉴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소득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날 그 사건은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도 저는 총성이나 폭발음을 듣기만 해도 온 몸을 벌벌 떨기 시작합니다. 집이나 병원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누군가 문을 쾅 닫으면, 갑자기 공포에 휩싸여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될지, 얼마나 더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전선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기보다, 공습과 교전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있고픈 마음이 더 큽니다. 여기 있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자스민과 자스민의 동생 아시아가 카타바에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Jean-Pierre Amigo/MSF 

자스민 모하메드 알리(26세)는 카타바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교사입니다. 카타바에서 분쟁이 시작된 이후의 일상에 대해 자스민과 자스민의 동생 아시아 모하메드 알리(25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라마단 중에도 폭력이 계속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교전 당사자들이 지키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정전이란 없을 거예요.”

계속된 위기 때문에 제가 일하는 학교는 벌써 3개월째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1학기만 마치고, 2학기는 도중에 중단해야 했죠. 지난달 급여는 받지도 못했답니다. 최근 우리 학교는 공습의 피해를 받았어요. 공격 목표였던 중앙 치안 사무소에서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거든요. 다행히도 당시에는 학교에 아무도 없었어요. 공습을 받은 후, 학교의 모든 창문이 산산이 부서졌어요.

예멘에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모든 게 더 어려워졌어요. 식량과 물을 구하기도 더 어려워졌죠. 상점들이 대거 문을 닫는 바람에 식료품 구하기가 어려워요. 주민들 중에는 카트(khat, 마취성 초목) 시장에서 일을 해 생계를 꾸려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폭격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이 일제히 카트 시장에서 달아나기 때문에 장사를 못하게 돼요. 우리 식구들도 카트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만약 시장에서 일을 못하게 된다면 식구들이 먹을 식량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게 될 거예요. 식료품 가격, 특히 기본적인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치솟았어요. 전에는 식용유 20리터에 5000예멘리알(YER)이었는데, 지금은 9500예멘리알을 내야 해요. 설탕 15킬로그램은 전에 12000예멘리알이면 샀는데, 지금은 18000예멘리알이나 지불해야 한답니다.

“물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예요.”

물은 모든 것을 의미해요.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더 이상 카타바에는 수돗물이 없어요. 연료가 부족해 카타바 시와 인근 마을에 있는 주요 수도 시설이 작동을 멈췄거든요. 집에도 물이 없고, 탱크도 채울 수 없는 상황이에요. 지금 카타바 시에는 무료로 식수를 쓸 수 있는 우물이 딱 하나 있어요. 만약 그 우물도 쓸 수 없게 된다면, 수도 시설이 있는 다른 곳까지 걸어가서 물을 길어와야 할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걸어서 왕복 3-4시간은 족히 들여야 하고, 무거운 물통을 집까지 가져 오려면 한 번에 하나밖에는 가져갈 수도 없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시추공을 지금 사용할 수가 없어요. 연료 문제 때문이죠.

그런가 하면, 카타바에 있는 중앙 우물은 매우 붐비고 있어요. 시내에 사는 여성들은 각자 호스를 여러 개 챙겨와 물통을 채우곤 하는데, 그 물통들을 다 채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답니다.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물에 가지 못했어요. 물을 실어다 주는 트럭이 지금도 다니긴 하는데요, 부유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어요. 물 트럭이 한번 오면 물 6000리터를 제공하는데, 그 값이 30000예멘리알이에요. 가족 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그 정도 양이면 고작 1-2주밖에 사용할 수가 없어요.

공습의 영향

공습과 폭격으로 공포에 휩싸여 우리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요. 지난밤에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폭격과 교전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했어요.

카타바를 떠날까도 생각해 봤는데, 지금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식구가 스물여섯 명이나 된다는 게 문제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여기 집이 있으니 카타바에 남아 있는 편이 나을 거예요. 더 조용한 인근 마을 그 어느 곳에도 우리 가족이 소유한 집이 없거든요. 알-달레 주의 담트(Damt) 지역에 친척들이 있어서, 거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상황이 더 나빠지면 식구 절반만 담트로 가고, 나머지는 카타바에 머무를 수도 있어요. 폭격이 계속되고 교전선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 정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할지도 모르겠어요.

카타바의 라마단 성월(聖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요. 카타바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곳이었고,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라마단 기간이 돌아오면 다른 지역 주민들도 카타바로 오곤 했는데, 올해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예요. 원래 카타바는 다른 지역들보다 라마단을 보내기에 더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어요. 라마단을 보내는 이곳 사람들의 문화 때문이죠. 거리에는 온갖 상점과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