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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위기: 시리아 난민의 눈으로 - 4. 수아르(Suar)

2016.03.15

수아르(Suar)는 시리아 군에서 빠져나와 이라크 쿠르드 지역으로 도주했다. 도미즈 캠프에 머무르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수아르는 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데라(Deraa) 상황은 점점 험해졌고, 저는 벌어지는 일들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반군 단체들이 불어나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점점 더 위험한 검문소에 배치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밤 중에 민가에 들이닥쳐 용의자들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들은 강도, 약탈, 폭행 등 불명예스러운 행위에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촌이 저를 몇몇 밀수업자들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여섯 사람과 며칠간 한 집에 숨어 급박한 상황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무장을 한 단체의 편에서 볼 때, 우리는 의무를 저버린 전투원들이었죠. 즉, 탈영병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우선 한 마을로 이동한 뒤, 또 다른 마을로 옮겨 갔습니다. 우리는 미화 50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검문소 3곳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홀로 어둠 속에 걸어서 이동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우리는 총을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남성 3명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더러 꼼짝 말라고 하더니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훈련받은 것을 기억해 내 얼른 땅바닥에 엎드려 기다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계속 달아나다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가 통제하는 요새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지점에 이르러 등록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이라크 쿠르드 지역으로 건너갔습니다. 제 옷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몸 여기저기 난 상처들은 다 낫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안전했고, 살아 있었습니다.

처음 도미즈 캠프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 있던 천막은 채 100개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식구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미즈는 난민 지위 신청을 할 수 있는 분명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일을 구하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3주 뒤 우연히 아랍어를 하는 국경없는의사회 국제 직원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류를 챙겨 면접을 보러 갔고, 의학적 배경을 가진 덕분에 바로 고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걱정하셨죠. 빨리 결혼하라며 계속 제게 재촉하셨습니다. 예전에는 하던 공부를 이유로 그런 말을 듣지 않았는데, 이제는 일을 하면서 새 삶을 일구기 시작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내를 맞아 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막무가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웃집 따님과 정식으로 약혼한 상태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일이었죠.

지금 제게는 아이가 하나 있고, 우리는 우리만의 천막으로 이동해 살고 있습니다. 캠프 생활이 늘 쉽지는 않습니다. 하루 6시간은 전기가 끊기고 먼지도 많지만, 그래도 캠프 안팎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8개월 된 제 딸 헬마(Helma)는 건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소생(회복) 전문 간호사이기 때문에,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헬마는 발작을 일으켜 왔는데, 확실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시도했던 치료들은 하나같이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는 최선의 의료 지원을 아이에게 찾아줘야 합니다.

여권이 있다면 즉시 여길 떠나 독일에 있는 최고의 병원으로 헬마를 데려갈 텐데 말입니다. 그 곳에서라면 우리 아이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권이 없는 난민입니다. 꼼짝없이 발이 묶여 있어 그 어디도 갈 수 없습니다.

여권이 없기는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모든 시리아 쿠르드족 사람들처럼, 제 아내는 심지어 시리아 신분증조차 없습니다.

저는 딸을 데리고 불법으로 이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픈 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전에 제가 그렇게 불법으로 다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국경을 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압니다. 유일한 방법은, 해외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엔을 통해 지원하는 일인데, 그러려면 시간이 걸릴 테고,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한 난민들도 많습니다.

*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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