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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위기: 시리아 난민의 눈으로 - 5. 니하드(Nihad)

2016.03.15

 

이름은 니하드(Nihad). 그는 시리아인이다. 2015년 9월, 니하드는 고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아내, 누이, 그리고 세 살배기 딸 피단(Fidanne)도 함께 왔다. 니하드는 21일을 이동했고, 유럽에 들어오려고 밀입국 주선자에게 12,000달러를 지불했다. 그의 탈출은 공원 산책 같은 한가로운 길이 아니었다.

 

바다를 지나는 동안, 제 눈앞에서 목숨이 물결처럼 요동쳤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 죽은 목숨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있는 것보다 죽을 각오로 그 곳을 벗어나는 편이 나았습니다.

니하드는 시리아 북부 쿠드르 지역인 알-카미쉴리(Al-Qamishli)에 살았었다. 그러다 2011년에 전쟁이 터졌다. 2012년에 시리아 군으로서 전투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민간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니하드는 입대를 거부했다.

 

군대도 정권의 일부인데, 현 정권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을 죽여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저를 죽일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 있는 도미즈 난민캠프였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포함해 가족을 남겨 둔 채 고국을 떠났다. 정식 면허를 갖춘 심리학자였던 니하드는, 도착하자마자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을 구했다.

니하드는 무장 단체 혹은 정권에 소집돼 원치 않는 잔학 행위를 저지른 후 충격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도와주면서,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했다.

 

저는 그 일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담을 수 있었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제가 더 단단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 팀에는 우애가 있었고, 우리들은 서로 도우며 함께 노력했습니다.

도미즈에서 니하드는 거의 모든 것을 가졌다. 일. 작은 집. 게다가 가족들도 모두 다시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하드는 마음 속에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유럽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시리아를 떠날 때, 저는 제가 쿠르드 지역에 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쿠르드 지역도 안전하지 않거든요. 저는 환자들과 매우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하룻밤에 환자들을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분명 떠날 기회가 있을 거라고요.

 

스위스로 가는 여정은 악몽 같았다.

다른 수백 명의 사람들처럼, 니하드 가족도 터키 이즈미르로 가기 위해 숨 막히는 미니버스에 끼어 탔다. 그래야 그리스로 횡단할 기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주민들과 함께 빽빽하게 고무보트에 타는 바람에, 니하드는 바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익사할까 봐 무서웠다.

별안간 니하드는 의심에 휩싸였다.

 

저는 떠나지 않고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바다를 보니 너무 두렵더군요. 아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렸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딸, 아내, 여동생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니까요.

 

야만인들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보트에 올라타자 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먼저 남자들이 탔고, 여자들이 뒤에 탔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짐승처럼 느껴집니다.

그리스 해안, 아테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밤낮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빗속에서 추위와 싸우면서 별로 먹을 것도 없이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니하드 가족은 스위스에 도착했다.

 

지나온 여정을 돌아볼 때면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스위스처럼 안전한 나라에 있지만, 저는 지나온 여정, 우리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늘 생각합니다.

취리히 근처의 난민 센터 안의 작은 방에서, 니하드 가족은 전쟁과는 이제 아주 멀어진 그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보려고 한다.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본다.

지금껏 겪은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니하드는 세 살 된 딸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특히 심리적인 수준에서 더욱 마음을 쓴다.

 

우리 같은 성인들도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다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많이 두려워합니다.

 기타 줄을 튕길 때면, 니하드는 저 먼 시리아로 되돌아간다. 언젠가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희망을 그는 놓지 않았다.

 

전쟁이 다 끝나는 날…

 

난민 센터에서 4개월을 보낸 후, 니하드는 상트갈렌 시 부근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니하드, 딸 피단, 그의 여동생, 그리고 아내는 망명 신청 절차를 기다리면서 그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기회를 얻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