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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 “폭력이 법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예외가 되기를..”

2013.11.26

파푸아뉴기니 남부 타리에서 활동을 마친 호주 출신 간호사인 케이트 화이트(Kate White)가 현장 활동을 마치며 그녀가 보고 느낀 점을 나누어 주었다.

저는 현재 파푸아뉴기니 남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타리(Tari)에 있습니다. 타리는 제가 지금껏 방문한 지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을 전체가 울창한 숲과 산으로 에워싸여 있습니다. 아침이면 골짜기에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산 꼭대기가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광경은 저는 황홀하게 만듭니다.

이곳에서의 활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어느 토요일 밤, 동료 로지스티션이 제게 타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는지 묻습니다. 의료팀 리더로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다, 정말 인상적이었던 두 가지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여자의 잘못

첫 번째는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통합 치료를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 가족 지원 센터를 찾아왔던 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폭력에서 기인한 부상에 대해 의료 처치와 심리치료를 한 번에 제공하는, 이른바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환자는 저보다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은 3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걸어서 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한 남자에게 붙잡혔습니다. 덤불 속으로 끌려간 그녀는 칼로 위협하는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혹여 강간으로 임신이라도 할까 겁에 질린 채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가 생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남편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너무나 오래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의 가족들과 한 공동체 내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내쫓길 것이 뻔했습니다. 타리에서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에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잘못한 것이라 여깁니다.

더 심각한 것은 길지 않은 그녀의 인생 동안 이번이 벌써 그녀의 네 번째 강간 사건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트라우마 정도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사실 그녀의 가장 큰 걱정 중의 하나는 제가 너무 말라서 잘 먹여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HIV 및 기타 성병 예방약, 응급 사후 피임약, 파상풍 및 B 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제공했고 심리치료도 제공했습니다. 사흘 후 그녀는 저에게 주려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직접 길러먹을 수 있도록 약간의 씨앗도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마음씀씀이에 저는 울고 싶어졌습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그녀가 관심사는 오로지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우발적 흉기사고

두 번째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평상시보다 제가 훨씬 더 마음을 주었던 윌(Will)이라는 환자입니다. 어느 날 저는 지역 내 한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배에 관통상을 입은 아이가 회사 양호실에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안정된 상태였지만 긴급 수술이 필요했고 우리가 아이를 받아준다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아이를 타리로 이송하겠다고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가족 지원 센터 운영 외에도 타리와 헬라(Hela)주 주민들에게 응급치료 및 외상 수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즉시 아이를 이송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외과의사와 함께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마침내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겁에 질린 얼굴의 7살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아이를 받아 안고 우리의 차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커다란 갈색 눈으로 저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껏 본 중 가장 멋진 속눈썹이구나,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붕대를 풀고 보니 아이의 창자가 밖으로 나와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는 바로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봤습니다. 알고 보니 윌이 형과 함께 놀다가 사고로 칼에 찔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타리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도 흔하게 벌어집니다.

윌이 회복하는 동안 우리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회진이 끝나고 나면 저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다른 사람들을 ‘골탕 먹이러’ 다니곤 했습니다. 주사기로 물총을 만들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쏘기도 했습니다. 열흘 후, 아이가 퇴원할 때쯤에 아이는 예전의 개구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폭력이 ‘정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제가 목격한 모습이 정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타리에서 보낸 9개월 동안은 마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폭력이 이곳 주민들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국경없는의사회만이 아닙니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여성 및 아이들을 위한 은신처 마련에 나서는 개인들도 많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지 직원과 환자들의 태도에도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희망을 품고 떠납니다.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변화를 바라고 받아들이리라는 희망, 폭력이 법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예외가 되리라는 희망, 그리고 언젠가 타리의 아름다움이 그 풍경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하는 지역사회 내에 존재한다는 희망을요.

국경없는의사회와 6개의 현장 활동을 함께 한 케이트 화이트 ©Tristan P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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