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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일본·한국에 RCEP 독소 조항 철회 요청

2017.02.23

다음 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회원국 16개국 대표들이 일본 고베에서 만나 17차 협상을 갖는 가운데,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적정 가격의 제네릭 의약품의 접근성을 제한하게 될 독소 조항들을 철회해 줄 것을 일본·한국 정부에 요청한다. 비공개 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과 한국은 전 세계 수백만 환자들의 안전한 의약품 공급을 대가로 일부 제약사의 입지만을 강화하게 될 조항들을 본 협정에서 채택하고자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레미 보딘 국경없는의사회 일본 사무총장은“일본은 UN 및 G7 회담에서 높은 의약품 가격 문제를 해결하고 적정 가격의 치료제 접근성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RCEP 회담에서는 보다 완강한 지적재산권 조항들을 가지고 그 반대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조항들 중에는 특허 연장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과도하게 높은 의약품 가격을 보다 오래 유지하게 만드는 한편, 이미 취약한 보건의료 체계를 더욱 손상시키고, 부상하는 공중보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특허 중심의 연구개발 가능성을 저해합니다.”라고 전했다.

일본과 한국이 제안한 지적재산권 조항들은 일반적인 국제 무역 규정의 요구 수준을 넘어선다. 제안 조항들은 제약회사들의 특허 기간을 종래 20년에서 더 연장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며, 제약사들에게 데이터 독점권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권한은 신규 특허가 적용되지 않는 개량신약에까지 적용될 소지가 있다. 게다가, 투자 부문의 일부 조항은 제약사가 인도 및 아세안(ASEAN) 국가들의 정책을 상대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할 길을 열어준다. 이는 공익적 고려 하에 지적재산권 체계를 규제하고 의약품 가격을 통제하는 국내법을 위축시키는 조항들이다. 이 모든 조항들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 Pacific Partnership, TPP) 체결 당시 포함된 조항들과 유사한데,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TPP가 의약품 접근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일본은 TPP 지적재산권 조항들을 비밀리에 RCEP 협상에 제안했습니다. 특허 기간 연장, 데이터 독점 등의 조치들은 또 다른 형태의 오래된 의약품에 대한 ‘에버그리닝(evergreening)’ 독점의 한 형태로서, 이는 제네릭 의약품의 도입을 현저히 늦추는 한편, 제약회사들이 높은 의약품 가격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RCEP 협상 대표들은 인도와 같은 저소득 국가들이 생명을 살리는 적정 가격의 의약품을 계속 공급하게 하는 기존 공중보건 장치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 약들이야말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Access Campaign) 남아시아 대표 리나 멘가니(Leena Menghaney)

오늘날, 독점 하에 계속 상승하는 의약품 가격은 이미 세계 여러 국가의 예산을 낭비하는 문제가 되고 있으며, 고소득 국가들을 포함해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이 치료제를 제공하는 주체들은 의약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2001년, 제약회사들은 HIV 감염인 1인당 연간 치료비를 미화 만 달러가 넘게 부과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국가들도 AIDS 유행으로 매일 500여 명의 사망자를 목격했다. 그 시기, 새로운 암 치료들은 1인당 미화 10만 달러를 넘었고, 몇몇 국가에서는 C형 간염 치료제 1정이 1000달러에 육박했다. 최근 의약품 접근성에 관한 유엔 고위급 패널 보고서는 양자 및 역내 무역과 투자와 관련된 협정 당사국들이 인간의 건강권에 대한 국가적 의무를 저해하는 지적재산권 및 투자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도록 권고한 바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여러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이미 정치와 이윤의 문제로 약제내성 결핵이나 HIV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 가격이 치솟아 사람들이 재난적 치료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RCEP과 같은 무역 협상에서 현재와 같은 지적재산권 조치들이 채택된다면, 결국 적정 가격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은 약화되고 말 것입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이 약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의료 코디네이터 아미르 쉬루피(Amir Shroufi) 박사

유출된 RCEP 초안 문서 중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 – 이 조항들은 높은 의약품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게 함

TRIPS-plus RCEP 제안사항

의약품 접근성에 끼치는 영향

데이터 독점 신설: 복제약 시판 승인에 사용되는 기존의 임상 데이터를 의약품 안전 규제처가 활용 혹은 참고하는 것을 방지함

데이터 독점은 의약품에 대한 시장 독점을 인정한다. 특히 기존 의약품을 새롭게 구성한 의약품도, 더 이상 특허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도, 시장 독점이 인정된다. 이는 복제약 경쟁을 가로막아 높은 의약품 가격을 유지시킬 새 방법을 제약회사에 안겨 준다.

이렇게 되면, 복제약 제조업체는 데이터 독점 기한이 다할 때까지는 계속 임상 시험을 반복해 안전성 및 효능을 새롭게 검증해야 하므로, 진입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수년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게다가, 의약품 규제 체계 하에서 이렇게 은밀한 독점이 허락될 경우, 기존 복제약들은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복제약 등록을 위한 목적으로 임상 시험을 반복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저소득 국가의 데이터 독점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RCEP 초안 문서에서는 ‘5년 미만일 경우’ 데이터 독점을 허락할 수도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특허 기간 연장 의무화:

특허 기간을 20년 이상 연장함

현재 대다수 국가에서 의약품 특허는 데이터 작성 시점으로부터 20년간 지속된다. 따라서 특정 의약품에 대한 제약회사의 독점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약품 특허를 2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특허 기간이 늘어나면 특허 소지자는 독점 상태를 유지하고, 복제약 경쟁의 부담 없이 인위적으로 의약품에 높은 가격을 부과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 집행 조치 연장: TRIPS 협력의 의무 사항을 넘어서는 범위까지 지적재산권의 모든 영역을 아우름. RCEP은 복제약들이 제조업체로부터 환자에게까지 오는 유통 경로를 차단할 국경 강화 관련 조항 다수를 담고 있음

강화된 집행 조치는 복제약을 제조하는 합법적인 공급업자에 반하는 법적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높여준다. RCEP 조항들은 지적재산권 집행 조치의 범위를 넓히고, 복제약 유통 및 공급망이 소송 사건 등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조항들은 단지 범위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조항들은 접근성과 경쟁을 저해하는 집행 조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특허 소지자에게 로열티를 수여함으로써 지적재산권 침해사항을 바로잡으려는 사법적 노력에 반대되는 편에 서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국경 조치에 관한 RCEP 문서는 복제약의 합법적 운송을 적절히 보호하고 있지 않다.

역내 최빈국들이 지적재산권 이행 의무를 조기에 실시할 것을 제안함

RCEP 협상가들은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등 역내 최빈국들을 위한 과도 기간을 적절히 보호하지 않았다. 이 기간은 제약 분야에 있어서 최빈국들이 WTO TRIPS 협정 이행 의무를 연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도기 하에서 최빈국들은 2033년 1월까지 의약품 특허와 임상실험 데이터에 대한 TRIPS 조항들을 적용하거나 강화할 필요가 없다.

RCEP에서 제안하는 조항들은 특허협력조약(PCT) 등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 조약들에 대한 비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너무 이른 시기에 최빈국들에게 특허 및 기타 지적재산권 이행 의무를 강요해, 저렴한 복제약의 공급 및 등록을 저해할 수 있다.

공중보건 보호에 관해 제약회사들이 국가를 고소할 수 있도록 투자 항목에 지적재산권 내용을 추가함

 

만일 RCEP 협상에서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S) 메커니즘이 합의되면, 제약회사들은 비밀 조정 재판에서 정부를 소송할 수 있고,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법, 정책, 규제, 규칙, 판결, 기타 그들의 이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기면 이에 대해 막대한 재정적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심지어 국내 조치들이 국내법 및 WTO의 TRIPS 협정 사항을 모두 지키는 경우에도 제약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