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현장소식

이라크: 전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취약한 임신부 의료 서비스

2022.04.14

조산사 라흐마(Rahma)가 신생아 리반(Rivan)을 안고 있다. ©Elisa Fourt/MSF
이라크 도시 모술(Mosul) 알-나흐와란(Al-Nahwaran) 지역 병원 앞에 아침부터 여럿이 줄을 서 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대기하는 여성 중에는 배가 솟아 있어 기다리고 있는 이유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20세 여성 마람(Maram)이다. 임신 3개월째 접어든 마람은 세 번째 출산을 앞뒀지만 처음으로 산전관리를 받아본다. 마람의 올케 또한 이 모자병동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 이곳을 추천받았다. 소식은 빠르게 퍼져 최근 몇 달 동안 모술 외 지역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찾아왔다. 

티그리스(Tigris) 강 서쪽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알-아말(Al-Amal) 산부인과는 정기적 부인과 진료, 신생아 치료, 보건증진 서비스, 가족계획 서비스, 정신 건강 상담 등을 제공한다. 

“처음 이 지역에 모자병동을 개설한 이유는 지역 전반적으로 의료접근성, 특히 성생식 보건 접근성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술의 의료시스템은 여전히 정상화가 요원해 이 병동이 개소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을 찾는 여성이 많습니다.”_유시프 로이 쿠두르(Yousif Loay Khudur) / 국경없는의사회 모술 프로젝트 부책임자 

전쟁이 끝나도 몰아치는 후폭풍 

2014년 6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모술을 장악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이라크 보안군과 국제 연합군은 모술을 탈환하기 위한 군사공격을 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잔인한 전투라고 불리는 이 내전은 250일 이상 장기화됐다. 2017년 7월, 이라크 정부는 IS로부터 모술을 탈환을 발표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쟁으로 파괴된 의료시설은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으며 의약품이 부족해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모술 안팎의 주민들은 여전히 양질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차단된 채 생활하고 있는데, 특히 임신부와 영유아가 가장 취약하다.

“내전 발발 이전에도 모술의 의료시스템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가동되긴 했습니다. 여성은 집이나 병원에서 출산하곤 했습니다. 2016~2017년 사이, 무력충돌로 수많은 의료시설이 파괴되거나 무너졌고, 의료기기는 약탈당했습니다. 그 후 의료시설 재건 시작까지 오래 걸렸는데, 내전이 종식된 지 거의 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과 의료시설이 재건축에 들어갔거나 수리 중입니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들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죠.”_유시프 로이 쿠두르 / 국경없는의사회 모술 프로젝트 부책임자

한 여성이 산전관리를 받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의 알-아말 모성병동을 찾았다. © Elisa Fourt/MSF

2017년, 국경없는의사회는 내전 이후 급증한 의료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모술 서부 나블루스(Nablus) 병원에 모자보건 전문 병동을 신설해 여성과 신생아를 위한 양질의 무상 모자보건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후 2019년에는 모술 서부의 1차 의료기관인 알-라파다인(Al-Rafadian) 병원에 알-아말 모자 병동을 개설했다. 2021년 기준 두 시설에서 총 15,000번의 출산을 지원했다. 

여성의 몸과 마음을 지원합니다 

15세 라피다(Rafida)는 친지로부터 알-아말 산부인과를 추천받아 첫 아이를 출산했다. 산모는 아들 레이스(Layth)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주 7일 동안 매일 24시간 가동되는 이 병동에는 35명의 조산사와 의료진이 근무한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0~15번의 출산을 지원하는데, 바쁜 날은 많게는 20~25회까지 지원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여성을 지원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입원 기준을 개선해 한정된 자원 내에서 양질의 치료를 계속해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_라흐마 아들라 압달라(Rahma Adla Abdallah) / 국경없는의사회 조산 책임자 

15세 라피다의 아들 레이스는 1월 12일 오전에 태어났다. ©Elisa Fourt/MSF    
라흐마는 조산 책임자로서 동료들과 함께 최대한 많은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산사는 단순히 출산 지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산전, 산후 관리에 더해 가족계획 서비스까지 지원한다. 이 병원 여성 대부분은 이러한 지원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또 다른 주요 서비스는 정신건강 지원이다. 이곳의 여성은 신체건강 지원뿐 아니라 정신건강 지원 또한 절실하다. 예를 들어 국경없는의사회는 젠더 기반 폭력을 종종 목격하곤 하는데, 생존자들은 폭력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이에 이라크 보건부는 모술에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를 위한 전문 치료 프로그램을 신설했지만, 모술에서 신체건강 및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모두를 위한 모자보건 서비스 

젠더 기반 폭력 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모술의 의료서비스 접근을 어렵게 하는 데 기여한 여러 요인 중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성생식 보건 접근성 또한 복잡한 원인으로 인해 저하됐다. 

“현지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상당수의 여성이 병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돈이 없거나 최근에 겪은 분쟁이나 실향으로 인해 행정 서류를 분실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매우 고마워합니다. 이들은 달리 갈 곳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이나 개인 병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자보건 병동이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_바샤르 아지즈(Bashaer Aziz) / 알-아말 모자병동 조산 관리자 

바샤르는 모술 서부의 국경없는의사회 알-아말 모자병동의 조산 관리자이다. ©Elisa Fourt/MSF 

막달에 들어선 임신부는 안전한 출산 장소를 찾는 것 외에도 본인과 아이의 영양 관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며칠 굶은 상태로 병원에 온 임신부도 있어요. 너무 말라서 임신 주수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간혹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하는데 아이도 마찬가지로 매우 마르거나 저체중인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돕는 게 저희 일입니다.”_ 라흐마 아들라 압달라 / 국경없는의사회 조산 책임자

조산 책임자 라흐마와 바샤르 모두 국경없는의사회의 모자보건 병동이 모술 지역에서 고무적인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모술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탈 아파르(Tal Afar)에서 산달이 다가온 며느리를 데리고 온 50세 여성 마하야(Mahaya)도 이 말에 공감했다. 

“이 병동이 생기기 전에는 집에서 출산했습니다. 조산사가 집으로 왔습니다. 갈 수 있는 병원조차 없었죠. 산부인과가 생겨 저희 삶도 훨씬 나아졌어요.”_마하야 / 탈 아파르 주민 

조산사 라흐마는 교대 근무가 끝나기 전 산후조리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 날 병실을 찾았을 때, 바로 몇 시간 전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태어난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아기는 벌써 눈을 활짝 뜨고 있었다. 아기를 안아든 라흐마에게 어머니인 19세 산모 보우크라(Bouchra)는 웃으며 말했다. 

“출산이 이렇게 힘들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순산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날들이 훨씬 나아지길 바라요. 자식도 더 낳고 싶어요. 나중에 또 낳게 된다면 이곳에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