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북부 국경지대 마타모로스(Matamoros)에 새로운 임시 거처가 설치됐다. 이곳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미국 망명 허가를 기다리는 이주민은 약 2,500명으로 추산된다.
2023년 1월 마타모로스 캠프를 방문한 국경없는의사회 멕시코·중앙아메리카 현장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에스테반 몬타뇨 바스케즈(Esteban Montaño Vásquez)가 안타까운 현지 사정과 미국의 정책 변화로 큰 난관에 부딪힌 망명 신청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주민 아동이 경미한 호흡기 증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진료받고 있다. ©MSF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밤 근처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젊은 남자들은 범죄 조직에 강제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제게 소식을 전해준 이주민에게 다른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더니 4주간 캠프에서 지내면서 식수는 구경도 못 했고, 식량 지원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나오신 분들이 일요일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나눠주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와 얘기를 나눈 분은 며칠 전 근처 상점에서 산 5리터짜리 물병을 들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십원 한 푼 없는 신세라고 합니다.”_ 에스테반 몬타뇨 바스케즈(Esteban Montaño Vásquez) / 국경없는의사회 멕시코·중앙아메리카 현장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마타모로스 캠프는 폭 20m 미만인 리오 그란데(Rio Grande)강의 남쪽에 있다. 무성한 풀숲 아래로는 강물이 흐르고, 건너편에는 이주민들이 꿈에 그리는 미국이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지금의 고통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
마타모로스 캠프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탄내와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고, 최근 들이닥친 한파로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는 한편 얼음이 녹아 생긴 웅덩이도 많다. 텐트는 찬 바람을 막아 줄 비닐봉지로 겹겹이 덮여 있었다.
마타모로스의 임시캠프에 약 2,500명의 이주민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MSF
어떤 텐트에는 베네수엘라 국기가 걸려있었다. 캠프에서 만난 이주민은 대부분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최근 몇 년간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이 급증해 600만을 넘어섰다. 이 중 대부분은 콜롬비아나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 정착한다. 하지만 위험한 환경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고난과 역경의 미국행을 택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지난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질병 확산 방지를 이유로 국경을 봉쇄하고 망명 신청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중보건법을 베네수엘라 망명 신청자에게도 적용하면서 수천 명이 마타모로스로 추방됐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도입된 해당 정책을 유지, 확대 적용하면서 멕시코나 다른 국가를 통해 미국 남쪽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망명 신청자를 강제 추방하고 있다.
추방된 이들이 모여 사는 마타모로스 캠프의 아침은 분주했다. 어른들은 숯 그을음으로 검게 물든 냄비를 불에 올리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텐트 주변을 청소했다. 아이들은 음용은 불가하지만 씻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받기 위해 2,500명이 공유하는 유일한 물탱크 앞에 줄을 서서 급수를 기다렸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심을 잃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성과 공주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열악한 생활 환경이 이주민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극명히 드러났다. 며칠 동안 혈이 섞인 설사를 해 처방전을 받았지만, 돈이 없어 약을 살 수 없었던 젊은 남성부터 호흡 문제로 천명(쌕쌕거림)을 보이던 갓난아기, 당뇨약을 구해 달라던 중년 남성까지 많은 이들이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마타모로스 캠프 내에서 아동들이 플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MSF
국경없는의사회는 2021년 3월 마타모로스 캠프가 폐쇄된 이후 이 지역에서의 활동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그러나 이민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혁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당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급증하는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 말 마타모로스로 복귀, 주 3일 캠프 외곽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하며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이동진료소에 줄을 선 환자만 15명이 넘었다. 진료는 증상이 심각한 순으로 차례대로 이뤄지며, 임신부나 5세 미만 아동은 우선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진료소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사용하던 작은 사무실을 진료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한 것이다. 환자 중에는 엄마와 함께 온 두 소녀가 있었는데, 경미한 호흡기 증상을 앓고 있었다. 마타모로스 캠프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어린 딸과 함께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한 베네수엘라 이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행을 결심하기 전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페루에서 몇 년을 살았어요. 그리고 12월 초에 마타모로스에 오게 되었어요. 곧 미국에 들어가서 우리 가족의 신분을 증명해줄 조카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빚도 갚고 새로운 삶을 살 거고 싶어요.”_ 이리마르(Yirimar) / 베네수엘라 이주민
이리마르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의 모바일 앱에서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면담 예약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CBP에 공중보건법 적용 면제를 요청해야만 멕시코로 강제 추방되지 않고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앱을 통해 CBP 직원과의 면담을 신청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리마르는 운 좋게도 바로 면담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주민이 예약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앱이 작동되지 않거나, 작동이 된다고 해도 면담 자리가 한정되어 있고, 자리가 있는 곳은 수천 킬로 떨어진 도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또, 예약 과정에서 사진을 제출해야 하다 보니 카메라 성능이 더 좋은 새 핸드폰을 구입한 사람도 있다. 그 외에 와이파이나 핸드폰이 없거나, 영어나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몰라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이주민들의 모습 ©MSF
국경없는의사회는 미국행 이주민의 주요 이주 경로인 남아메리카 국경 지대를 따라 수년간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 과정에서 이주민과 망명신청자가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했다. 안전한 삶을 좇는 이들을 위한 기회는 국적이나 재력, 제3국에서의 법적 지위, 미국 내 보증인 유무와 관계없이 주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수많은 장애물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마타모로스 임시 캠프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이주민은 계속해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