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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나는 가자 지구의 수술 간호사”

2012.05.07

화상 입은 아이가 국경없는의사회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다.

제 이름은 마테야 스타레(Mateja Stare)입니다. 올해 38살이고 슬로베니아 출신입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수도 루블라냐에 있는 슬로베니아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저는 수술실 간호사입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활동가로 가자지구에서 한 달을 지내고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하기 전에는 루블라냐 병원에서 16년 동안 일했어요. 처음에는 수술실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7년 동안 여러 과의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 뒤에는 재건 수술실과 화상 수술실의 수간호사로 5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수술실 간호과장으로 일했는데, 저에게는 새로운 일이었고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신입 수술 간호사들을 교육을 맡았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 약간 피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게 정말 맞는 말입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다가 모든 것이 잘 풀렸을 때, 언젠가는 자기 경험과 전문기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때가 온다고 생각해요. 자기만큼 운이 좋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는 거죠. 그렇다면 인도주의 단체에 가입하지 않을 필요가 뭐 있겠어요?

지난 10월 국경없는의사회 오스트리아 사무소에 채용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 첫 미션을 기다렸지요. 1월 말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가자 지역으로 가서 재건수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 하더군요. 응급 프로젝트가 아니라 좀 더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이었고, 현장으로 파견할 수 있는 외과의를 구하는 일에 좌우되는 일이었지요. 처음에 제 가족들은 그곳이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걱정을 좀 했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결국 가족들도 제 열성에 못 이겨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제가 도착하고 이틀 뒤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폭력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교전은 5일 동안 계속되었어요. 처음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조심하라는 온갖 당부 메시지를 수 천통 받았어요. 그걸로도 안심이 안되었지요.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고, 패닉을 진정시키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 닷새 동안 안전하다고 느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게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20년 전에 우리도 독립투쟁을 했고, 독립투쟁이란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누구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가자(Gaza)에서 수술실 감독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외과와 협조해서 관리, 지시, 훈련, 평가, 조율, 조직, 계획 등 모든 것을 관장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병원, 그러니까 가자시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칸 유니스(Khan Yunis)에 있는 나세르 병원 앞에 텐트로 만들어 놓은 현장 병원에서 활동했습니다.

앞서 얘기한 교전 때문에 한 달에 걸친 임무 수행 기간 동안 수술을 할 수 있었던 날은 나흘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하루에 할 수 있는 최대한 해보려고 했지요. 가자 지구 곳곳에 잠재적인 환자들에게 방문해 상담을 받으라는 프로그램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수술 시작 전날 팔레스타인과 외국인 외과의들이 200명의 환자를 꼼꼼히 진찰했습니다. 총 25명의 환자를 수술하고, 진정제를 맞은 환자 2명에게는 드레싱 처치를 했습니다. 

수술은 오전 7:30에 시작해서 오후 6시경 끝났습니다. 하루에 7~8건 정도 할 수 있었어요. 환자의 70%는 5세 미만이었습니다. 최연소 환자는 7개월 된 아이였고, 최고령 환자는 60세였습니다. 대부분 화상으로 인한 피부 수축이 있었습니다. 선천성 기형, 예를 들면 합지증(2개 이상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분리되지 않고 물갈퀴처럼 붙어 있는 증상)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이전 국경없는의사회 외과수술 프로젝트 때 한 번 수술을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화상 환자 두 명에게는 응급 수술도 하였습니다.

가자에서는 가정용 가스통이 폭발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매일 전기가 끊기다 보니 난방이나 취사를 위해 손상되거나 저질의 가스용기를 사용하곤 합니다. 불행히도 가자에서는 매일 화상을 입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나세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팔레스타인 성형외과 의사들과 화상병동 수간호사도 만났습니다. 수간호사가 화상병동을 견학시켜줬어요. 50 m² 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병상은 다섯 개 밖에 없었습니다. 커튼으로 벽을 대신했고요. 병실 하나에 10살 먹은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틀 전에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화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양손과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눈을 뜬 채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 아이 생각이 며칠 동안 정말 많이 났습니다. 그 아이가 받게 될, 아니면 받지 못할, 치료를 생각했지요. 

2주가 지나 텐트에서 수술을 시작했더니, 팔레스타인 외과의가 어린 화상 환자를 응급수술할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저는 그 아이를 떠올렸고, 제가 맞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실려온 아이를 보니 지쳐 보이고 마르고 창백했습니다. 그 아이가 2주 넘게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저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화상부위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마취를 하고 목욕을 시켰지요. 두 손과 얼굴에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닷새 뒤에 드레싱을 갈려고 진정제를 맞고 누워있는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여전히 유령 같았고, 손 닿는 걸 참지 못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드레싱을 갈고,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앞으로 병원을 더 많이 찾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이 수술을 해 준 게 그 아이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양질의 진료를 받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