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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남수단: 응급 구호 활동 후 귀국한 외과의사 폴 맥마스터가 보내온 소식

2014.02.03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이자 외과의사인 폴 맥마스터는 지난 12월 말부터 한 달 간 남수단 내에서도 교전이 가장 치열한 지역으로 파견되어 응급 수술을 비롯한 활동을 했습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그가 우리에게 보내온 글은 남수단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절망에 빠진 남수단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수단 수도 주바 MSF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는 화상을 입은 어린이

지난 크리스마스 바로 이전 주말,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 팀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며칠 전 남수단에서 교전이 발생했는데 응급구호 팀에 참여해 교전이 치열한 지역으로 가서 수술 지원을 해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죠. 바로 다음날 우리는 남수단으로 떠났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유니티(Unity) 주의 주도인 벤티우(Bentiu)였습니다. 그 전날 일어난 교전 때문에 시장은 약탈과 파괴로 온통 폐허 상태였고, 의사들도 현지 병원을 떠난 후였어요. 병동이 45명 정도의 심각한 부상자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우리는 바로 의료 활동을 시작해서, 그날 저녁에 첫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고 큰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결국 다음날 아침 우리는 벤티우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떠날 당시 벤티우 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총으로 무장한 채 배회하고, 짐 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라서 줄지어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군이 벤티우를 장악했는데, 그 무렵 이미 주민들은 작은 마을이나 숲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습니다. 5일 후 국경없는의사회의 다른 팀이 벤티우로 들어갔지만 소요 때문에 다시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시설도 약탈과 파괴로 폐허가 되었고 여전히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팀은 비행기로 벤티우에서 나시르(Nasir)로 이동했습니다. 한 주 내내 그곳에도 교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는 사상자가 넘쳐났죠. 우리는 36시간 동안 현지 국경없는의사회 팀과 의료 활동을 했고, 저는 다른 외과의사 한 명과 함께 복합적인 부상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랑키엔(Lankien)으로 떠났습니다. 더 많은 부상자들이 랑키엔으로 들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랑키엔은 진흙 집들이 있는 외딴 소읍이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곳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원래 7000명이었던 마을 인구가 교전을 피해 온 주민들로 두 배가 되었고, 병원은 사상자와 부상자로 가득했습니다.                                                           

남수단 랑키엔의 MSF 병원 외래 진료소

일반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감염 질환 치료에 집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작한 랑키엔에서의 첫 임무는 부상자 센터와 응급수술실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뒤로 3~4주 동안 우리는 130-140명의 총상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대다수는 교전 중에 부상을 입은 16~17세의 청년들이었고 더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우리가 있는 랑키엔에서 북쪽인 말라칼(Malakal)이나 남쪽인 보르(Bor)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심한 총상이나 골절상을 입은 지 2-3일이 지나서야 후송되어 온 바람에 이들의 상처는 예외 없이 흙먼지에 오염되고 염증이 시작된 상태였어요. 상처가 패혈증으로 악화되지 않게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교전에 휘말린 민간인도 상당수 있고 그중에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11세 남자아이 하나는 척추에 총상을 입고 허리 아래가 마비되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수술로 총알을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치료했지만 저는 그 아이가 다시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밤 늦게는 경련과 여러 다른 증상을 보이던 12세 정도 된 소녀를 치료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소녀는 다음날 아침 많이 호전되었고 완치 가능성까지 보여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녀의 보호자가 9살짜리 남동생인 것을 보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죠. 아이들의 아버지는 말라칼에 남아 있고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막막했습니다.

병원은 병원대로 과부하를 겪고 있었습니다. 입원 환자들은 대부분 보르나 말라칼에서 평균 기온 30도 중반 이상인 더위를 뚫고 3일 내내 걸어온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음식도 못 먹고 물도 거의 마시지 못해 일부는 탈진으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진료소의 외래 환자는 세 곱절로 늘어났으니, 병원은 그야말로 환자들로 휘청할 지경이었습니다.

실향민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휴식을 취하자마자 다시 길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장 입은 옷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한데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절망적일 만큼 음식과 물이 부족했어요. 마을에 있는 물 펌프 12개 중 가동되는 것은 4개뿐이었고 국경없는의사회의 영양실조 치료 시설은 아이들로 순식간에 만원을 이뤘습니다.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와 응급 외과 처치를 제공하도록 지속적인 조처를 취하고, 부상자들과 고향을 등진 피난민을 돌볼 수 있도록 의료팀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 현재 국경없는의사회가 남수단에서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기관은 없습니다.

건국한 지 3년도 채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어린 국가인 남수단은 지금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도움이 절실한 남수단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폴 맥마스터의 편지는 지난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처음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