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람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의 삶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유럽 정책이 낳은 가장 잔인하고도 비인간적인 결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들은 단지 안전과 보호를 찾고자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피해자로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운영 코디네이터 스테파노 아르겐지아노(Stefano Argenziano)
이주민·난민 수천 명이 그리스·세르비아에서 적절한 거처도 없이 추운 여건 속에 갇혀 있다고,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가 오늘 밝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영하권 추위 속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해 줄 것을 다시 한번 당국에 요청했다.
초만원을 이루는 그리스 군도 여러 캠프에서 천막 생활을 하는 사람들, 벨그레이드 폐건물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 세르비아 국경을 건너가려다 길이 막힌 사람들의 상황은 특히나 열악하다.
법적 장애물
세르비아 벨그레이드 중심가의 창고에서 난민들이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Marko Drobnjakovic
지난해, 유럽 당국은 EU-터키 협정을 체결하고 이주민·난민이 지나가는 발칸 루트를 공식 폐쇄하는 등, 전쟁이 활발히 일어나는 지역에서 탈출해 유럽에서 보호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막고자 시도했다.
현재 세르비아에서는 7500여 명이 발이 묶인 채 과밀한 캠프와 비공식 거주지에서 지내고 있다. 당초 세르비아는 6000명까지 수용하겠다고 유럽연합과 합의했으나, 이 중 방한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은 단 3140명이다. 벨그레이드의 경우, 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시리아 등지에서 온 약 2000명의 젊은이들이 중심가 폐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밤이면 기온이 영하권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세르비아 당국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엄격히 제한해 왔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담요·식료품 등 기본적인 물품만을 배급하도록 허용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세르비아 현장 책임자 스테판 모이상(Stephane Moissaing)은 “몇 달째 당국의 방침은 인도적 지원을 막아 사람들을 공식 캠프로 가게끔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캠프들이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수용 한계를 넘어선 지금, 이주민들은 영하권의 기온 속에 사방이 뚫린 폐건물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절박한 조치들
세르비아 벨그레이드에서 운영중인 국경없는의사회 이동 진료소,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환자에게 전염성 피부질환이 옮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Marko Drobnjakovic
벨그레이드 중심가에서 이동 진료소들을 운영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추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궁여지책으로 긴급 실내용 난방 기구를 곳곳에 설치하는 한편, 거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당국과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모이상 현장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몇 달째, 우리는 이런 재난 상황을 피할 장기적인 해결책을 실행해 달라고 유럽연합(EU), 유엔난민기구(UNHCR), 세르비아 당국에 요청해 왔습니다. 이 단체들의 집단적인 실패로 인해 가장 기본적인 필요 사항마저 지원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결과, 이미 취약했던 사람들은 전보다 더 큰 고통 속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세르비아-불가리아 국경에서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레스보스·사모스 등 그리스 군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이곳에서는 수천 명이 과밀한 캠프에 갇혀 있다. 영하권의 기온 속에 허술한 천막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심각한 의료 및 안전 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그리스 현장 책임자 클레망 페랑(Clement Perrin)은 이렇게 전했다.
“눈과 얼어붙는 비 속에 버려진 가족들은 유럽의 냉소주의, 그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EU-터키 협정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유럽이 내놓은 모든 약속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남성, 여성, 아동들이 얼어붙는 비 속에 천막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군도에 있는 모든 난민·이주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적절한 생활 여건에서 지낼 수 있도록, 즉각 긴급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그리스 당국과 EU에 요청합니다.”
최근 몇 개월간 사모스·레스보스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들이 정신건강 진료를 위해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열악한 생활 여건 속에 지내고 있었고, 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페랑 현장 책임자는 “수천 명이 혹한의 고통 속에 남겨진 채 망명 신청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 그리스 당국은 자신들의 인도적 성과를 자축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전쟁, 고문, 극도의 폭력을 피해 보호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추위 속에 버려져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그리스 내 20여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정신건강 진료, 만성 질환 진료, 성기능 및 생식 건강에 관한 진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