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헤는 건축가이다. 행복한 건축가이다. 덥수룩한 머리, 정리되지 않은 수염, 털털한 옷차림의 호헤, 그리고 늘 ‘So Goood’ 하며 특유의 억양으로 너스레한 웃음을 지는 호헤가 좋다. 아침 식사 시간에 호헤가 우유 한잔과 플래인 다이제스트 몇 개를 가져와 자리에 앉는다. 다이제스트를 톡하고 반으로 나눈 뒤, 우유에 살짝 담갔다가 한 입 베어 문다. 그러고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아침은 없다는 표정을 하며 느낌표를 하나 찍는다, ‘So Goood’.
국경없는의사회는 람사 미션에서 수술실을 만들고 있다. 요르단 국립병원인 람싸 병원의 1층의 한 켠을 국경없는의사회의 수술실로의 개조가 허가된 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수술실로 만드는데 호헤는 건축 설계와 현장 감독을 맡고 있다. 특수 공간인 수술실 설계에 대해 의료진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최대한 맞게 설계를 이용하고 있다. 중간에 무언가 새로운 요청이 들어오고, 의료진들 사이에 의견이 잘 맞지 않아 중간에 끼게 되는 상황이 있을 때도, 그의 특유의 공손함과 웃음으로 상황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새 수술실 개장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며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싶어서 건축현장을 빼곰 들여다보니 호헤가 열심히 마무리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 먼지 폴폴 날리는 건축 현장이지만, 무영등이 설치되고,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설치되고, 방사선차단 납 문이 설치되어가고 있으니 이제 정말 머지 않아 주요 집기들이 들어오면 수술실 내부는 선진국의 어느 수술실 못지 않은 수술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람싸의 국경없는의사회 외과 프로젝트의 새로운 도약이 될 것이다.
따가운 햇살이 한풀 수그러들며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호헤는 현장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서류작업을 마무리하고는, 팀원들에게 같이 숙소에 가겠냐고 의향을 물어본다.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숙소까지 걸어가려면 2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길을 호헤는 운동 삼아 매일 걸어서 퇴근한다. 나도 매번 아니오 였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호헤와 함께 걸어서 퇴근해보고 싶었다.
나: 이번이 몇 번째 미션이에요?
호헤: 이번 미션이 다섯 번째 미션이에요. 첫 미션으로 2012년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했고, 그 후 에티오피아와 러시아, 그리고 벨라루스를 거쳐 요르단에 왔어요.
나: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호헤: 스페인에서 대학원 다닐 때(호헤는 남미 콜롬비아 출신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에 아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국경없는의사회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멋진 단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예전에 콜롬비아에서 대학교 졸업 후 NGO에서 활동하던(매우 열악한 시골지역에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 시절이 생각났어요. 기회가 닿으면 국경없는의사회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대학원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을 하며 지냈어요. 직장 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뭔가 더 의미 있고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졌어요.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2012년부터는 지속적으로 미션에 참가하고 있어요.
나: 다섯 번째 미션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어요?
호헤: 러시아에서의 미션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진단검사실의 건축을 담당했고, 소규모 검사실의 건축 셋팅을 마쳤어요. 검사실이 생기니 진료의 효율이 엄청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뿌듯했어요. 그러고는 머지않아, 검사실이 점점 활성화되어 더 큰 검사실을 만들겠다는 결정이 되고, 바로 이어 두 번째 건축에 들어갔어요. 나의 건축 활동이 환자를 이렇게 돕고 있구나 느끼며 보람을 느꼈어요.
호헤와 같은 ‘의사’들이 국경없는의사회에 있다.
로지스티션(식수와 위생, 건축, 전기, 통신, 컴퓨터 등의 다양한 분야)과 행정담당자로 이루어지는 비의료 분야의 활동가들이 40%이상을 차지하며, 의료가 절박한 곳에 의료를 전달한다. 구호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비의료 분야 활동가의 역할은 의료진 만큼이나 중요하다. 양 날개가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구호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호헤와 같은 또 다른 ‘의사’가 필요하다.
호헤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며 그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그 곳의 풍경과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길 옆으로 털털한 진녹색의 올리브나무 숲이 천천히 걸었고, 맑은 녹색 잎사귀의 감자 밭을 지나, 하염없이 펼쳐진 듯한 가을빛깔 갈색의 들판을 호헤와 함께 걸었다. 기울어진 햇살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헝크러진 호헤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호헤가 한 마디 한다. ‘So goood’. 호헤와 함께 걸어오는 길은 즐거웠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 너머 생명을 살리다]
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