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밤 악사 병원이 포격을 당해 환자들을 시파 병원으로 이송
- 공식 보고된 사상자 숫자보다 현장에 있던 의료진의 증언에 따른 사상자 수 높아
21일에서 22일로 넘어가는 밤, 국경없는의사회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스라엘군 탱크에서 나온 폭발음이 떠나갈 듯이 울린 뒤에 국경없는의사회 수술팀은 시파 병원으로 향했다. 시파 병원 의료진은 그날 밤에 부상자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마취과 의사 아드리아나는 화상 병동에서 환자들을 봤다. “화상 병동 집중 치료실에 입원한 환자 2명을 돌봤다. 한 명은 24세인 젊은 엄마였고 다른 한 명은 10세 소년이었다. 그 젊은 엄마는 집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에 12시간 동안 깔려 있었고, 딸을 포함해서 다른 가족 10명을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잃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여성은 오늘 아침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취과 의사 아드리아나는 응급 대응 팀을 도우려고 얼마 전에 가자지구에 도착했는데, 올해 아드리아나가 가자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 10세 소년은 미사일이 집에 떨여저서 아버지를 잃었다. 화상과 ‘크러시 증후군’, 정신적 충격, 폭발 때문에 온몸에 입은 100군데의 상처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수술 뒤에는 시파 병원 화상 병동 집중 치료실에 입원시켰다. 다른 국경없는의사회 마취과 의사인 켈리는 그 소년의 작은 상처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복부에 난 작은 상처였는데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복부 스캔을 하자고 했는데 확인해 보니 내출혈이 있었다. 폭탄 파편이 그 소년의 작은 내장에 구멍을 7개나 냈기 때문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외과의 코시모는 20세 여성의 상대정맥에서 총알을 제거했다. 그는 “지난밤에 제가 수술한 다른 2명은 가까이에서 터진 폭발 때문에 흉부 부상을 입은 환자였다”고 말했다. 악사 병원에서 시파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중 상당수가 그날 새벽에 부상을 입은 케이스였다. 마취과 의사 켈리는 “악사 병원이 폭격을 당했을 때 그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20세 남성이 있었는데 시파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우리는 그 남자의 두 다리를 무릎 아래에서 절단해야 했다. 그 수술은 거의 3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수술에 들어간 환자들은 모두 상태가 매우 심각했으며 외과의 여러 명이 수술에 참여해야 했다. “어제 우리는 신경외과 수술도 2건을 진행했다.” 응급실에서는 수술이 필요한 모든 환자를 수술실로 올려 보냈는데 환자를 살리기에 너무 늦은 경우도 있었다. “수술실로 보내진 8세 여아의 경우 폭발 때문에 두 다리를 잃었고 여러 곳에 부상을 입었는데 머리 부상도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것밖에 없었다.”고 아드리아나가 설명했다. 외과의 코시모의 말에 따르면 입원 병동에 들어온 환자 중 30%는 아동이다. 응급실에서는 심하지 않은 부상을 입은 아동 환자를 치료하느라 분주했다.
또한 그날밤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한 환자는 모두 성인이었는데 그중 병원에 와서 사망한 케이스만 5명이다. 부상자들은 한번 들어올 때마다 3~5명씩 한꺼번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처음에 온 부상자들은 여전히 폭격을 당하고 있는 슈자이에에서 온 환자들이었으며 국경없는의사회가 그날밤에 마지막으로 본 부상자들은 악사 병원 인근 지역에서 온 주민들이었다. 시파 병원 근처에도 공중 폭격이 떨어졌다. 시파 병원에 있던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화상 병동 전체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고 증언했다.
22일 아침 UN은 간밤에 나온 사망자가 10명, 부상자가 130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날밤 시파 병원에서 환자들을 본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그 숫자가 실제보다 낮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