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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지구: 전쟁으로 다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법

2024.11.04

서안지구 툴카렘(Tulkarem)에 위치한 누르 샴(Nur Shams) 난민 캠프에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비친다. 20여 명의 여성들이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마련한 방으로 들어와 원형으로 앉아 아랍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즈, 지혈대, 그리고 인체 혈류를 설명하는 도표들이 놓인 테이블이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주관하는 '출혈 멈추기(stop the bleed)' 교육이다. 이 방에 모인 대부분의 여성들은 의료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외상과 심한 출혈은 그들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의 빈번한 군사 작전 중 가족과 이웃이 의료시설로 가기 전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상처 치료와 지혈대 사용법 등을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와 통역사가 “출혈 멈추기” 교육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2024년 10월. ©Oday Alshobaki/MSF

 

우리는 습격과 폭격, 총격으로 인한 부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상당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올바른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꼭 필요해요. 습격 도중에는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캠프에 있는 모두가 응급처치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 스스로 부상자를 도울 수 있으니까요.”_사에다 아흐마드(Saeda Ahmad) / 누르 샴 캠프의 교육 참여자

이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군사 습격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며, 의료 접근 차단이 그들의 작전 방식의 일부가 되고 있다. 도로가 차단되고 구급차는 이동할 수 없으며, 의료진은 괴롭힘과 공격을 당하거나 방해를 받고, 부상자들이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출혈 멈추기” 교육 세션에 참가한 사람들이 거즈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2024년 10월. ©Oday Alshobaki/MSF

 

이스라엘군의 습격은 폭력성과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2024년 10월 3일에는 툴카렘 난민 캠프에서 공습으로 18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의 드론 공격, 공습 및 기타 폭격이 인구 밀집 지역과 난민 캠프에서 점점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습격 기간도 길어지고 있으며, 이는 해당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8월에는 툴카렘 북쪽에 있는 제닌(Jenin)에서 9일간 대규모 군사 작전이 벌어졌다. (➤ 관련 글 읽어보기)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툴카렘 난민 캠프. 2024년 10월. ©Oday Alshobaki/MSF

 

지속적인 폭력과 불안정 속에서 캠프 주민들은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직원에게 이러한 습격이 미치는 깊은 심리적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스라엘군의 군사 습격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일상과 안전을 앗아가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습격의 여파 속에서 파괴된 도로와 집을 복구하면서도, 언제 있을지 모를 다음 군사 습격을 두려워하며 지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같은 습격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프 주민, 특히 아동들에게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하고 있다.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캠프에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학교에 있는 동안 습격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거죠. 집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 있고, 아이들은 더 이상 골목에서 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죠. 습격이나 위험한 일이 일어날까 두려운 부모들이 자녀가 외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필요한 것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 못 하고 있어요. 폭력 속에서 자라다 보니, 아이들의 놀이가 직접 겪은 폭력과 관련된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죠.”_툴카렘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역사회 보건 교육 담당자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는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삶을 살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출혈 멈추기'와 같은 교육은 주민들에게 습격 중 의료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함으로써 어느 정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서안지구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방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의 팔에 거즈를 감으며 응급처치를 연습하는 동안, 감정적 상처도 드러난다. 참가자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나누고, 휴대전화 잠금 화면 속 세상을 떠난 가족 사진을 공유하며 자신이 경험한 폭력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심리적 상처 또한 깊다. 그리고 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압박을 가하거나 지혈대를 조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