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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지구: 전쟁의 그늘 속 폭력 증가, 제닌 습격 사상자 발생

2024.05.22

한국시간 5월 22일 업데이트:

현지시각 5월 21일 오전 서안지구 제닌(Jenin)에서 이스라엘군의 습격으로 최소 8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명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칼릴 술레이만 병원(Khalil Suleiman Hospital)에서 근무하던 보건부 소속 외과의 닥터 오사이드 자바린(Dr. Osayd Jabarin)으로, 그는 일터로 향하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태로 20명은 부상을 입었다. 일부 온라인 기사와 달리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공습에 대한 통보나 지속 기간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서안지구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이스라엘군 습격으로 구급차와 의료진이 표적이 되는 사례, 칼릴 술레이만 병원에서 폭력과 죽음뿐 아니라 보건의료 접근성이 저해되는 사례 역시 반복해서 목격해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번 습격과 이로 인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스라엘군이 의료진을 해치거나 의료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의료진이 부상당한 환자와 의료시설에 모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걸어서 의료시설에 도착합니다. 때로는 당나귀를 이용해 아픈 사람들을 병원이나 진료소로 옮기기도 하죠. 이 지역에는 오랫동안 교통수단이 없었고, 우리를 진료소에 데려다 줄 차량이 있었어도 이스라엘군이 압수하고 말 겁니다.”_마흐무드 무사 아부 에람(Mahmud Mousa Abu Eram) / 서안지구 헤브론(Hebron) 출신의 팔레스타인 주민

건조한 산악 지대에 위치한 헤브론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포도밭으로 유명하며 서안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해당 도시와 더 넓게는 서안지구의 유구한 역사는 현대에 이르러 심화한 잔인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폭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수개월간 아동 116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479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462명은 이스라엘군에 의해, 10명은 정착민에 의해, 8명은 신원이 불분명한 가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5월 21일 제닌 습격 사태 추산치는 아직 집계 중으로 미반영). 이 중 3분의 1은 툴카렘(Tulkarem)과 제닌(Jenin) 시 안팎에 위치한 난민 캠프에서 살해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한 아동에게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2024년 3월. ©MSF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위치한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이다. 해당 지역에는 11개 구역에 걸쳐 29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안지구와 인근 동예루살렘 인구 중 약 63만 명이 이스라엘 정착민이다.(출처: 국제연합)

서안지구의 약 61%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국제연합)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의 검문소, 도로 봉쇄, 습격은 오랫동안 마을들을 서로 단절시키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보건의료 및 식량 시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물, 연료, 기타 생필품이 부족해졌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학교, 직장, 가족, 친구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서안지구 북부 소재 제닌 난민 캠프 길거리를 걷고 있다. 2024년 3월. ©MSF

헤브론 소재 마사페르 야타(Masafer Yatta)에서는 잦은 도로 봉쇄, 군사적 공습,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의료시설에 접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재원 부족, 이스라엘군의 제한 조치, 마을 접근을 어렵게 하는 열악한 도로 인프라로 인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현지 기관 또한 부재한 상황이다.

한편 마사페르 야타 내 폭력의 심각성으로 인해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두려움에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창문 앞에 서 있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창가에 서 있었는데 정착민 하나가 저를 보더니 군인들에게 불만을 제기하더군요. 그 군인들은 제 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_익명을 원한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서안지구 주민들은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긴 하지만, 그들과 의료진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래 이스라엘 당국은 서안지구 소재 의료시설에 대한 447건 이상의 공격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출처: WHO)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 북부의 제닌과 툴카렘 지역에서 공습 및 드론 공격을 동반한 지상 공격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으며,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군사 습격과 함께 서안지구 북부에서 발생하는 정착민 폭력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주요 난제 중 하나이다.

툴카렘과 제닌 소재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특히 군사 습격이 발생하면 발이 묶인 채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를 기다리다 도착도 하기 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두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응급 치료를 강화하고 자원 응급구조대원들에게 물자 및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사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응급 치료 관련 실습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024년 3월. ©MSF

4월 21일, 툴카렘과 누르 샴(Nur Shams) 난민 캠프에서 한 자원 응급구조대원이 근무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의 적대 행위로 인해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7시간이 걸렸다. 또다른 일례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중 한 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은 16세 소년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결국 살릴 수 없었다.

해당 소년의 부친 또한 국경없는의사회의 훈련을 받은 응급구조대원으로, 구급차에서 근무하던 도중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_이타 헬란드-한센(Itta Helland-Hansen) / 국경없는의사회 제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아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의료진은 직업적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구급차는 검문소에서 가로막힙니다. 심지어 응급 상황이 발생해 사이렌을 울려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오래 멈춰 세우는지는 응급 상황이 아니라 군인들의 기분에 달려있습니다. 1-2시간을 기다리게 하거나 혹은 다른 길로 가라고 하기도 하죠. 환자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총상을 입은 경우에는 환자를 체포하고 구급차를 압수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병원이나 교도소로 데려가는지, 만약 교도소로 데려간다면 치료를 받게 하기는 하는지, 우리로서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_헤브론과 베들레헴(Bethlehem) 사이 서안지구 남부 소재 알 아룹(al Arrub) 난민 캠프에서 활동하는 의료진

검문소에서 긴 대기 시간과 괴롭힘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은 치료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다.

10월 7일 이전에는 상황이 어느 정도 덜 심각해서 다른 경로를 이용해 필요한 곳에 갈 수 있었고, 정신건강 치료사가 제게 연락해 치료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죠. 상담을 받으러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여기 있을 때는 위험하다는 느낌이 안 들죠.”_서안지구 북부 나블루스(Nablus) 출신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환자

정신건강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2024년 3월. ©MSF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1989년부터 서안지구에서 활동해 왔다. 마사페르 야타에서 활동하는 팀은 2023년 말까지 움 쿠사(Um Qussa), 알 마자즈(Al Majaz), 진바(Jinba)에서 3개의 이동진료소를 운영했다. 해당 진료소들은 외래 환자 진료, 성생식 보건, 정신건강 지원, 영양실조 검사 등을 포함한다. 2024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역사회의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헤브론 지역 소재 이동진료소를 13개로 늘렸다. 2024년 1-3월 사이,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여러 지역에서 신규 환자 검사 및 후속 진료를 포함해 총 6,000건 이상의 외래 환자 진료와 약 1,400건의 정신건강 개별 상담을 제공했다.

헤브론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가장 취약하고 고립된 환자들을 위해 지속적인 치료와 1차 의료지원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을 조정 및 확장했다. 제닌과 툴카렘에서는 사상자가 대거 발생하고 접근이 차단된 상황에서 병원 안팎으로 응급처치 및 구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응급구조대원들을 지원 및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나블루스와 헤브론 소재 진료소에서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여 심각한 정신건강 지원 제공 격차를 해소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지원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