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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년 만에 다시 찾은 밤바리에서의 활동

2022.02.11

이름: 이효민
포지션: 마취과의 (Anesthetist)
파견 국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 지역: 밤바리
파견 기간: 2021년 4월 - 2021년 6월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밤바리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 국경없는의사회 트럭 앞에서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1.이번이 열세 번째 활동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비록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보내는 시간이 한국에서 의사로 지내는 시간보다는 여전히 더 짧지만 이제는 구호 현장에서의 업무가 제 일의 가장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매년 자연스럽게, 내지는 반쯤은 의무감으로 구호 현장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활동에서 얻게 되는 보람과 즐거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2.2년 전 같은 병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밤바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곳에서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소감은 어떠신가요? 2년 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나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활동은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두 군데는 각각 두 번씩 2년의 간격을 두고 가게 되었습니다. 보상고아에서 2015년과 2017년 두 번 일했을 때도 변화를 느꼈었는데, 올해 찾아간 밤바리는 2019년에 비해 의미 있는 발전을 찾아볼 수 있어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낙후되었고 많은 것이 부족한 곳이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전히 정치는 안정되지 않았고 사회는 불안정하고 의료 체계는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중아공에서 코로나19 사망 환자가 생기고 상황이 고조되는 상황에 현장으로 떠나셨습니다. 코로나19가 활동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요?

제가 도착하기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리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나 PCR 검사 등은 시행하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들에 따르면 대부분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녔고, 말라리아나 콜레라 등 기존에 문제가 되고 있던 감염병들이 여전히 훨씬 더 심각했기 때문에 코로나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착하기 얼마 전부터 수도인 방기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어나서 저녁 8시 이후로는 통행금지가 선포되었습니다. 활동지인 밤바리에서도 동료 중에 양성 반응이 나와서 일부 자가격리를 하느라 한동안 빠듯한 인력으로 병원이 돌아갔습니다. 현지 보건부와 국경없는의사회가 협력하는 병원에서 밤바리 주민들을 위한 PCR 검사도 담당했었는데 초기에는 검사 키트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어 밀접 접촉자나 유증상자들도 바로바로 검사를 시행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중아공  입국시에 1주일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귀국하기 전에도 PCR 검사와 그 결과지를 받아야만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저같은 국제활동가들의 출입국과 이동에 걸리는 시간도 예전보다 몇배로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졌고 장기 근무하는 동료들은 휴가에도 이런저런 제약이 생겼습니다.

 

숙소에서 활동가들 상대로 PCR 검사를 시행했다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4. 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밤바리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와 현지 보건부가 협력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소아과, 영양실조 관리, 응급수술, 지역 보건 센터소 와 이동진료소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병원의 위생 관리, 약품 공급, 검사와 혈액은행 유지 등 전반적인 병원 업무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약 15-20여 명의 국제 활동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근무했는데, 의사, 간호사, 조산사, 건강증진홍보담당, 행정직원, 물류와 기술 관리 로지스티션 등등 여러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있었고, 국제 활동가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현지 직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소속된 현지 직원들뿐만 아니라 보건부 소속의 직원들과도 협력하고 지원하며 같이 일하는 관계였습니다. 저는 마취과의로서 수술팀의 일원으로 마취와 수술 전후 환자 관리를 담당하였고, 현지 마취과 간호사와 보조 인력들에 대한 교육과 트레이닝도 담당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의료 정보를 전달하는 아웃리치 팀의 활동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올해 초 밤바리에서 전투가 벌어져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의료 지원이 필요하며 피난을 떠났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분쟁 지역으로 계속되는 폭력과 이주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동가님이 보기에 이곳의 가장 큰 보건의료 필요는 무엇이었나요? 불안한 치안 상황이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나요?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밤바리 인근에 있었고 그 이후에 안정을 되찾았다 다시 유사한 분쟁이 생기는 등의 상황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아공 전체 치안 상황과 맞물리기도 하고 국지적인 분쟁인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밤바리에 도착하기 한 달여 전부터는 안정적인 상황이었는데, 제 활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무력 도발이 인근에서 일어나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운영 지원하던 보건 센터소  중 일부는 활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근처에는 실향민 캠프도 있어서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실향민들의 대부분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그들을 위해 기본적인 위생 시설들을 다른 기관도구 들과 함께 급하게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분쟁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외상 환자뿐만 아니라 계속된 분쟁으로 의료 기관에 접근이 힘들어지고 의료 서비스를 받기가 힘들어져 치료 시기를 놓친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실려와 응급수술을 시행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아이들의 경우에는 영양실조가 겹쳐서 회복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활동 말미 인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인해 실향민들이 급하게 대피하여 모여있다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5. 현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7:30분쯤 병원에 도착하여 30여 분간의 회의를 하고 8시 정도부터 외과의사와 간호사 등과 함께 전체 수술팀이 병동 회진을 돕니다. 회진을 돌면서 처방, 상처 관리, 수술 일정 점검 등 그날의 전반적인 치료 일정을 세우게 됩니다. 회진이 끝난 이후 수술을 시작하여 그 날의 수술을 모두 마치면 오후에 간단한 회진 (주로 수술 후 환자들)을 돌고 숙소로 귀가합니다. 병원에 식당이 따로 없기 때문에 점심은 도중에 숙소로 돌아와 먹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수술이 많거나 응급한 환자가 있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는 점심 식사 없이 쭉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숙소로 복귀한 후에는 대기하고 있다가 응급 환자 호출이 오면 병원으로 가서 진료나 수술을 합니다. 중간중간 집중치료실 (ICU) 환자 상태 점검이 동반되고 업무 중에는 현지 직원에 대한 병동임상교육(bedside teaching)이 늘 함께합니다. 

6.주거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코로나 상황에서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2년 전과 같은 숙소였는데 훨씬 쾌적해져서 숙소 관련해서는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습니다. 숙소 중앙에 바비큐 석쇠도 있어서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누군가가 항상 바비큐를 굽고 있었습니다.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활동지에서 대개는 안전 문제로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때를 대비해 늘 전자책이나 동영상 같은 것들을 챙겨가는데 이번 밤바리에서는 인터넷 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기본적으로 속도가 매우 느릴 뿐만 아니라 하루 이상 접속이 안 되는 경우가 지속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설상가상으로 제 활동 마지막 즈음에는 중아공 에서 가장 큰 통신사 설비가 화재로 손상되어서 그 회사 인터넷과 전화 신호마저 끊겨서 연락에 어려움을 잠시 겪기도 했습니다) 가져간 전자책과 동영상을 순식간에 다 봐 버렸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모여서 요가나 홈트레이닝 등의 운동을 하거나 숙소 주변 조깅을 하거나 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일이 있으면 파티도 하고 주말에는 동료들이 요리를 해서 나누기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제 활동 기간 말미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 상황이 안정되어서 인근 몇 군데 바에 가는 것도 허용되었는데 그 기간에 잠깐 동료들과 바에 가서 맥주 한잔했습니다. 2주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이동이 금지되더군요.

 

토요일 저녁의 바베큐 디너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토요일 저녁 동료들과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 국경없는의사회 / 이효민

7.활동 중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일단 2년 전에 비해 발전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보람찬 경험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밤바리는 예전부터 치안이 좋지 않고 의료 인력에 대한 훈련과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던 곳이라 특히 현지 보건부 소속 직원들과 일할 때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진료 가이드라인이 잘 전달되지 않고 환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케어도 잘 안되는 경우도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가 보니 적어도 환자 케어에 대한 부분은 질적 향상도 있었고 좀 더 체계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장의 시설도 그사이에 새로운 건물과 설비가 완공되어서 이전보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수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관여하는 마취 영역에서도 현지인 직원이 한 명 더 생겨서 물품 관리나 환자와의 의사소통, 기타 행정적인 일들을 지원해 주어서 저는 환자 진료 자체에 이전에 비해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8.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일단 당장 다른 활동을 가지는 않게 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작년에 시작했다 저의 해외 활동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해서 올 하반기는 팟캐스트를 유지하고 싶고, 가을이면 늘 해외에 나가 있느라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 하는 이런저런 행사들에 참여나 지원을 못 했는데 참여를 늘려보고 싶습니다. 내년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일 년에 1~2회 활동하러 출국하는 패턴을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는 수많은 활동지들이 있는데, 중아공에는 이미 5번을 갔으니 다른 곳에도 활동 영역을 더 넓혀보고 싶습니다.

9.미래의 구호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의료인들은 일단 자기 영역에서 확실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쓰는 약과 장비는 달라도 치료 원리 자체는 같으니 자신의 경력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도움 됩니다. 의료 외적인 것으로는, 영어든 프랑스어든 외국어는 기본만 해도 활동을 할 수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잘하면 잘할수록 훨씬 더 좋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여러 제약이 많은 곳이기에 스트레스 관리 능력과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경도 문화도 지원도 다른 곳이니 일할 때는 힘들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국하고 나면 다시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드는 만큼 한 번의 활동으로 판단하지 말고 한두 번 더 시도해 보고 판단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