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같은 시기 함께 활동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 (왼쪽부터 박선영 간호사, 최정윤 약사, 이재헌 정형외과의)
요르단 북부, 시리아 접경에서 5km 떨어진 곳의 람사 병원에 국경없는의사회의 새로운 수술실이 지어지고 있다.
건축 파트에서 벽을 다듬고 전기설비와 새로운 장비들을 설치하며 새단장을 하고 있다. 수술실 건축 프로젝트에 외과팀리더(SFP, Surgical Focal Point)인 에드가는 온 정성을 쏟고 계신다. 68세의 캐나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에드가는 작년부터 하나하나 계획세우고 만들어 온 새로운 수술실이 마이 베이비라며, 사랑스런 늦둥이 막내의 출산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빠 마냥 부푼 기대에 찬 얼굴이다. 조금씩 예정일이 지연되고 있기는 한데 현재 ‘아이’의 출산예정일은 5월 23일이다. 이제 곧 람사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수술실로의 이전 작업의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될 것이다. 현재의 수술실에서 새로운 수술실로 넘어가는 과정이 좀 더 순조롭도록 하기 위해 해외파견활동가 한 명이 더 람사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오기로 예정되었다.
내가 람사 미션에 합류했을 때 해외파견 멤버들이 12명이 있었는데, 모두 몇 년을 국경없는의사회와 일을 했지만, 한국 멤버와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미션에 한국에서 멤버가 한 명 더 오니 꽤나 신기해한다. 이제 박선영 활동가(수술실 간호사)가 2개월 미션으로 참가하였으니, 이로서 캐나다에서 4명, 독일에서 2명, 한국에서 2명, 네덜란드에서 1명, 소말리아에서 1 명, 스웨덴에서 1명, 이탈리아에서 1명, 콜롬비아에서 1명이 모여, 한 식구가 되어 숙소를 같이 쓴다.
여기 있는 활동가들에게만 신기한 것은 아닐 듯 하다. 한 미션에 한국 활동가 2명이 같은 시기에 함께 팀으로 근무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지부의 활동으로 봤을 때나 국경없는의사회 전체로 봤을 때나, 나름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하여, 베테랑 활동가인 최정윤 활동가(약사)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활동하고 계시니, 한국 활동가들이 근처 지역에서 활동하며 교류하는데 있어서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
의미 있는 순간인데, 셋이 함께 모이지 않을 수 없다. 암만에 있는 최정윤 약사님을 람사로 초대하였다. 최정윤 약사님은 탄자니아에서 코이카(KOICA)활동 시절에 옆 지역에서 활동했었기에 이렇게 5년만에 요르단에서 만나는 게 더욱 감회가 새롭다.
요르단의 맛있는 음식들도 있지만, 한국인 세 명이 모였으니 그래도 역시 한국 라면이 제격이겠다. 면과 함께 털어 넣는 얼큰한 스프를 보니 끓일 때부터 군침이 돌고, 여기에 파와 계란을 빼놓지 않았다. 식사를 하며 최정윤 약사님의 열 차례가 되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담소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암만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에서 싸들고 와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봉지라면을 듬뿍 챙겨드렸다.
한국인 활동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아직 많지 않다.
일본에 비해서는 대략 1/10의 인력 풀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2014년에 프로젝트 참여한 활동가 수를 보면 일본인 활동가는 113명이고, 우리나라는 13명이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시기가 되면 후원자에서 활동가로 참가하리라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니 앞으로는 더 많은 한국인이 함께 어우러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현장활동가로 미션에 참여하면서 더욱 느끼는 것은, 국경없는의사회의 미션은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배경의 프로페셔널들이 만나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동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동작업에 국적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멤버가 같이 있는 것은 또 하나의 특별한 즐거움이지 않을까 싶다. 다양성과 동질성이, 같음과 다름이 적절하게 공존하면서 배합되면 더욱 시너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국인 활동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요르단 암만에 그리고 람사에 한국인 활동가가 함께 활동하게 되어 기쁘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너머 생명을 살리다]
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