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강제 이주당한 수만 명의 로힝야족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60만 명의 이주민을 위협하고 있는 질병은 홍역과 같이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입니다. 우리가 코로나19를 이야기할 때, 이들은 예방 가능한 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에게 의료 지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이 직면한 폭력적인 차별에 세계가 더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로토스코프 기법을 활용한 이 애니메이션은 예술가이자 영화제작자인 리차드 스와브릭(Richard Swarbrick)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 Richard Swabrick (@rikkileaks)
음악 © Three Laws (@threelawsmusic)
▶ 전체 영상 보기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바다에서 표류하며 굶주리고 있는 로힝야 난민"
다니엘라 리차우-레이드(Daniella Ritzau-Reid) 국경없는의사회 방글라데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서 탈출해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500여 명의 로힝야 난민이 낚시용 목조 트롤선(저인망 어선)에 화물처럼 실려 두 달 동안 바다를 표류하며 굶주리고, 밀수업자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전해졌다. 이들은 모두 미얀마 출신의 로힝야족이었고, 어린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12세에서 20세 사이였다. 말레이시아에 하선 허가를 받지 못한 400여명의 생존자들은 결국 4월 15일 방글라데시 해안 경비대에 의해 구조되었다.
미얀마 서부 작은 마을 출신인 14세 로힝야 소녀 아미나(가명)는 두 달 넘게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햇빛 아래 갑판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아미나는 다리를 가슴 쪽으로 구부려 팔로 감싸 보이며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계속 이렇게 앉아 있어야 했어요. 사람들이 다리가 부어올라 마비되었고, 몇 명은 죽어서 바다에 던져졌어요.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매일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마치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난민들은 사소한 일로도 구타를 당했고 최소한의 음식과 물을 받았다고 전했다. 아미나는 "갑판이 매우 뜨거웠고 음식도, 물도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하루에 달(마른 콩류로 만든 스튜 종류의 서남아시아 음식) 한 줌과 물 한 컵을 받았어요." 다른 생존자들은 며칠 동안 음식이나 물을 전혀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목이 너무 말라서 바닷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생존자들은 100명 정도가 사람들이 선상에서 죽거나 밀수업자들이 배 밖으로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배에 탄 난민들은 일과 가정을 포함해 자신과 가족의 밝은 미래와 더 나은 삶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었다. 미얀마 당국에 의해 박해 받고 시민권을 거부당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로힝야족 수십만 명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매우 열악한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며 탈출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생존자들은 밀수업자들에게 거액을 지불하기 위해 가족들이 그간 저축한 돈을 끌어 모았다고 전했다.
생존자들에 의하면 말레이시아 해역에 도착한 후 밀수업자들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안전하게 도착했고 통행을 위한 대금을 송금해 달라고 말할 것을 강요했다. 선박은 말레이시아나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하선을 거부당했고, 결국 방글라데시 쪽으로 되돌아갔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하기 며칠 전, 밀수업자들은 굶주린 난민들을 내버려둔 채 배를 버렸다.
방글라데시 해안 경비대는 선박이 방글라데시 남부 해안에서 표류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400여 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 이들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으며 14일 동안 격리된 뒤 각 가정에 돌아갈 예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및 정신건강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보내 구조 작업을 지원하고 상태가 악화된 생존자들이 방글라데시에 돌아오자 응급 치료를 제공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이자 의료 팀장인 하나디 카테르지 (Hanadi Katerji)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서거나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들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고 많은 수가 간신히 생존해 있는 듯 했다”고 전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은 급성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들을 안정화하고 심각한 영양실조 합병증이나 다른 심각한 상태에 있는 환자 5명을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으로 이송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팀은 생존자에게 상담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영양실조, 탈수가 심각했고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빛이 매우 불안하고 무서워하는 것 같이 보였는데, 저는 그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심한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는데, 영양실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에 상처가 있었고, 배에서 선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겁에 질리고 불안정 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을 잃어 슬퍼했고, 이중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디가 말했다.
미얀마 시민권이 거부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미얀마 당국에 의해 수십 년간 박해와 학대를 받아왔다. 2017년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을 겨냥한 폭력적인 군사 작전으로 70만 명 이상이 이웃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해야만 했다. 현재 3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미나는 선원들이 ‘어디를 가든 너희는 난민이다. 미얀마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난민이다. 배에 있든, 말레이시아에 있든 똑같이 난민으로 간주된다. 어디를 가든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받은 보고에 따르면, 아직도 해상에는 배가 세 척 더 있으며, 1,000명 이상이 승선해 있다고 한다.
하나디 카테르지 (Hanadi Katerji) /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및 의료 팀장
"생존자들은 화요일 저녁 4대의 트럭을 타고 난민통과센터(Transit center)도착했습니다. 대부분 청소년이었고, 12세에서 20세 사이, 주로 미혼남성과 미혼여성이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서거나 걸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트럭에서 내렸을 때 이들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고 많은 수가 간신히 생존해 있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영양실조, 탈수가 심각했고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빛이 매우 불안하고 무서워하는 것 같이 보였는데, 저는 그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먼저 우리는 가장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사람들을 선별했습니다. 우리는 심각한 영양실조 합병증을 앓고 있는 5명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일단 초기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거나 쓰러진 몇 명을 안정시킨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더욱 심층적인 조사를 진행하며 이들의 의료적 필요를 조사하고, 정신 건강에 대해 묻고, 상담을 제공했습니다.
여성이나 아이들보다 남성들이 영양실조와 탈수상태가 더 좋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부상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심한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는데, 영양실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에 상처가 있었고, 배에서 선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신건강 지원의 필요도 컸습니다. 대부분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고,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겁에 질리고 불안정 했습니다.이들은 오랫동안 표류했습니다.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100여 명이 사망했고, 사람들은 시신을 배 밖으로 내던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가족을 잃어 슬퍼했고, 이중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본 것 중 최악의 일입니다.
많은 가족들이 매우 걱정스러워하며 입원한 가족을 보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문 앞에 몰려왔습니다. 병원에서 가족들은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코트로 몸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코트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온 게 분명했습니다. 그건 소년이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미나(Amina, 가명) / 14세 로힝야 난민
우리는 바다에서 표류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남자들은 배 아래쪽에 있었고 완전히 가려져 있었어요. 배 밑바닥은 무척 뜨거웠는데 누군가 나가려고 하면 구타를 당하고 바다에 던져졌어요.
여자들은 햇빛에 노출된 채 배 위쪽에서 앉아있었어요. 머리를 가리려 하면 구타를 당했어요. 우리는 하루종일 무릎을 가슴에 댄 채 앉아있어야 했어요. 사람들은 다리가 부어올라 마비가 되기도 했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특히 남자들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고 산소가 부족해 질식사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영양실조도 극심해 피부와 뼈만 남은 상태였어요.
선원들은 우리에게 “어디를 가든 너희는 난민이다. 미얀마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난민이다. 배에 있든, 말레이시아에 있든 똑같이 난민으로 간주된다. 어디를 가든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