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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어린이를 노리는 만성적 보건 위기, 화상

2022.01.28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쉬파(Al-Shifa) 화상 병동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수술팀이 환자의 드레싱을 교체하고 있다. © Tetiana Gaviuk/MSF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Khan Younis)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네 명의 물리치료사가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바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한다. 오늘 환자는 총 46명인데, 화상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아동이 절반이다. 

물리치료사 림 아부 렙데(Reem Abu Lebdeh)는 생후 21개월 아동 압달라(Abdallah)의 압박복을 벗기고 다리, 복부, 오른팔의 상처를 확인했다. 압달라는 약 10개월 전 피부의 50%가 뜨거운 물에 데이는 열탕화상을 입었는데, 두 달 넘게 입원해 치료받으며 아버지로부터 피부 이식 수술도 받았다. 

압달라는 몇 번만 더 진찰받으면 퇴원할 수 있다. 곧 퇴원할 수 있다는 것은 달가운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치료가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움직이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자라면서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흉터가 튀어나와 자라는 비후성 반흔*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압박복을 착용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내원해 검사받아야 합니다.” _ 아부 렙데 /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물리치료사

*비후성 반흔: 화상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 중 흉터가 튀어나와 자라나는 현상.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남아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다.

가자지구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는 매년 약 5,000명의 새로운 화상 환자가 방문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집안에서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동이다. 안전하지 않은 주거 환경이 이러한 사고의 주범이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난민이다. 이들 중 대부분 난민 캠프에 거주하고 절반 이상은 절대적 빈곤 상태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전기, 난방, 깨끗한 식수 접근이 차단된 채 과밀하고 불안전한 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안전한 주거 환경을 구축하고 집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인지시키면 대부분의 화상 사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_세브린 브뤼네(Séverine Brunet) / 국경없는의사회 화상치료 활동 책임자 

생후 20개월 된 오마르(Omar)는 일주일에 세 번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 내원하여 마취하고 드레싱을 교체해야 한다. ©Tetiana Gaviuk/MSF 

어린이를 노리는 만성적 보건 위기, 화상 

국경없는의사회가 2021년 치료한 신규 화상 환자는 5,540명으로 2019년 3,675명과 2020년 4,591명에 비해 증가했다. 평균적으로 화상 환자 중 15세 미만 아동이 60% 이상이었고 그 중 5세 미만 아동이 35%였다. 압달라와 같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인한 가정 내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화상환자의 회복에 있어 사고 발생 48시간 이내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화상 응급처치란 생소한 개념이다. 치약, 커피가루, 토마토소스를 환부에 바르는 민간요법도 있지만 일부는 표백제나 소금을 바르기도 한다. 

“화상을 입었을 때는 가장 먼저 시원한 흐르는 물에 환부를 대고 있어야 합니다. 부상이 심각한 경우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_세브린 브뤼네 / 국경없는의사회 화상치료 활동 책임자 

병원까지 가는 것도 험난하다. 4세 남아 나빌(Nabeel)은 할머니가 빵을 굽던 뜨거운 오븐에 데어 등 아랫부분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택시를 탈 형편이 안 됐던 나빌의 가족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꼬박 한 시간을 들여 병원에 도착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4세 나빌(Nabeel)이 가족과 함께 서 있다. 아이는 집에서 발생한 사고로 등에 화상을 입었다. © Tetiana Gaviuk/MSF 

중증 화상 환자는 빠른 회복을 위해 드레싱을 자주 교체해야 하고, 물리치료와 후속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곳 환자들은 교통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내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진료소를 오가는 교통편을 제공한다.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한 위생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어 화상 부위가 감염되고 항생제 내성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환자 대부분은 영양이 불균형하고 동반 질환을 앓고 있어 회복이 더딥니다.” _세브린 브뤼네 / 국경없는의사회 화상치료 활동 책임자

화상 상처는 환자의 마음과 몸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화상으로 인한 기형이나 장애를 예방하려면 장기 입원과 수개월간 이어지는 후속 치료가 필요한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봉쇄조치로 의료시스템이 마비된 팔레스타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화상 환자를 위한 양질의 치료를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가자지구 내 진료소 네 곳에서 화상 환자와 가족을 위해 상처 및 통증 관리, 물리치료 및 심리사회적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가자지구의 주요 이송 병원인 쉬파 병원의 화상 병동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곳에선 매년 평균 270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하지만, 열악하고 과밀한 생활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화상의 위험은 계속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1년부터 가자지구에서 화상환자를 치료해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화상 환자를 가자지구 밖으로 이송할 수 없어 국경없는의사회는 처음으로 가자지구 안에서 3D 스캐닝 및 프린팅 기술을 통해 안면 화상 환자를 위한 압박마스크를 제공했다. 2021년에는 처음으로 진정실을 구축해 중증 화상을 입은 아동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대신 이곳에서 수면마취 후 드레싱을 교체하고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