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심리적 응급처치부터 종합적인 심리치료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심리적 지원 수요가 발생했다. 전쟁으로 공포, 트라우마, 고립을 겪은 이들이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팀은 심리적 응급처치, 정신건강 상담, 종합적인 심리치료를 제공하며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한 환자들의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팀은 우크라이나 내 7개 지역에서 8,000건 이상의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했다. 또한 전선 근방과 우크라이나가 재탈환한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며 수개월간 전투, 폭력, 교전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외 지역 거주민들에게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월 25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이 거의 다됐을 때 전쟁이 터진 거죠. 모두가 지하 저장고에 숨었어요. 러시아 군대가 탱크와 무장 차량을 몰고 마을로 들어왔죠. 물론 정말 무서웠어요. 바닥에 누워 ‘당장 내일 아침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아침에 무사히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특히 혼자라면 더욱 그렇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혼자였어요.”_헤르손 지역 내 미롤류비우카(Myrolyubivka) 마을에 주민 아나톨리 안드리예브스키(Anatoliy Andriyevsky), 74세

아나톨리 안드리예브스키, 74세 ©MSF

아나톨리는 지역사회로부터 국경없는의사회가 정신건강 치료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특히 도시외 지역에서는 정신건강 이상에 대한 타인 및 자기 자신의 낙인효과가 거주민들의 정신건강 지원 접근을 저해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상담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지만, 환자 대부분은 나이가 있는 여성들이다.

남성들 또한 무력감을 느끼며, 당연히 이러한 감정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무력감은 가족과 본인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_테티아나 바라네츠(Tetiana Baranets) /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

지역사회 조력으로 함께하는 정신건강 지원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크로피브니츠키(Kropyvnytskyi)에서는 전투에서 피신한 이들이 트라우마, 공포,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피란 가정 중 특히 아동을 동반한 여성들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얘는 비디오게임에 나오는 보니라고 해요. 보니는 잘 지내고 있어요. 완전 잠꾸러기예요.”_바냐(Vanya), 8세

바냐는 현재 키로보흐라드(Kirovohrad)에 소재한 국내 실향민 임시 거처에서 모친과 지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팀은 장난감을 활용해 반야의 감정 공유 및 처리 과정을 돕고 있다.

2022년 8월, 바냐의 가족은 도네츠크(Donetsk) 동부로부터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실향민이 된 다수의 아동들은 자신들의 집, 친구, 전쟁 이전의 삶, 학교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제 막내 아들 바냐는 밤마다 불안해서 잠드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심리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부터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죠.”_올레나 베다(Olena Beda), 바냐의 모친

아동 그룹 심리치료를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 ©MSF

키로보흐라드 지역 내 대부분의 국경없는의사회 환자들은 불안 혹은 우울과 관련된 증상을 보인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들은 환자들의 대처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개별 혹은 그룹 심리상담 세션을 진행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 또한 지원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키로보흐라드 지역 내 환자들에게 1,000건 이상의 그룹 세션을 제공하며 불안증, 침투적 사고(intrusive thought), 트라우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지원했다. 

저희는 각 아동에게 맞는 개별 맞춤 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놀이나 그림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경험에 연관된 부정적인 감정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_스비틀라나 알렉센코(Svitlana Alekseenko) /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

국내 실향민들과 그들의 지역사회를 위한 그룹 심리치료 지원은 지역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들은 환자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심리치료의 이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다 심리치료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정신건강 지원의 이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트라우마 극복에 필수적인 심리적 응급처치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으로 향했지만, 미사일 폭격이 여전히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민간인들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사일 폭격의 물리적 위협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폭격 여파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충격, 공황발작, 식욕 및 수면 패턴 변화, 박탈당한 일상생활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선 근방에 위치한 자포리자(Zaporizhzhia),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Dnipropetrovsk), 도네츠크, 헤르손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미사일 폭격 혹은 기타 재난 여파로 인해 급성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가령 2023년 3월,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들은 자포리자 내 주거 지역에서 미사일 폭격의 여파에 대처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관련글 읽어보기)

폭격 이후 현장에 도착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 운영팀은 가장 먼저 심리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적시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받은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부터 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다.

2023년 5월 미사일 폭격지 목격 거주민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국경없는의사회 ©MSF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필요에 즉각 대응하고 내적 친밀감을 조성하며, 항상 그들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침묵하는 이들을 주의깊게 봅니다. 이들을 대응없는 상태에서 꺼내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_인나 포타펜코(Inna Potapenko) / 국경없는의사회 심리치료사

동료 지원(Peer Support)과 전문 치료의 필요성

일부 사람들에게 심리적 고통은 정신상담 한 두건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정신 건강 질환이 야기될 가능성을 줄이고, 추가적 증상 발현을 예방하며, 관계 유지 능력을 길러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장기간 전문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키이우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고문이나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게 종합 정신건강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들은 그룹 및 개별 세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비슷한 일을 겪은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심리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힘들 수 있어요. 감옥에서 지속적 선동에 노출되면 정신적으로 과부하가 걸려 점점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_안드리 베르비치(Andryi Verbich), 러시아군 학대 및 고문 피해자, 52세

호스토멜(Hostomel)에서 폭력과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종종 자신의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생각에 고립감을 느낀다. 그룹 및 개별 정신건강 상담 세션은 이들이 자아와 지역사회 소속감을 되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개인의 부정적인 경험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받은 영향에 국한되지 않는 존재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사실을 잊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들에게 인생은 특정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로 나뉘고, 그 사이 진공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죠.”_마리야나 크비아트코프스카(Mariyana Kviatkovska),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우크라이나 보건 핵심 과제인 정신건강 

우크라이나 보건 시스템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을 전개하고 있긴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큰 피해가 생겼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전쟁 이후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테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각종 트라우마에 노출될수록 정신건강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심리치료사 및 전문 상담인력 부족,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낙인, 일부 지역내 지속되고 있는 전투로 사람들이 적시에 필요한 치료를 받기가 어렵다. 필요한 심리적 지원을 적시에 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장기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및 우울에 시달릴 수 있고, 결국 이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