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Abbas, 가명)는 이스라엘-가자지구 전쟁의 여파로 이스라엘에서 일을 다니다가 서안지구에서 난민이 되어버린 6,000명 이상의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주민 중 한 명이다. 현재 나블루스(Nablus)에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아바스는 피난길에 오르고 여전히 가자지구 내 폭격 아래 발이 묶인 가족들과 떨어져야 했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전한다.
이른 새벽, 아바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저 멀리 험난한 서안지구의 전경을 응시한다. 그는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가자지구 내 폭격 하에 놓인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늘 그의 유일한 소망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바로 가족들과 연락이 닿는 것.
서안지구 북부에 위치한 도시 나블루스의 전경. 2023년 4월. ©Samar Hazboun
가자지구에 있는 제 가족들은 북부 지역과 칸 유니스(Khan Yunis) 및 라파(Rafah)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전쟁 발발 이후로 벌써 네 번이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길거리, 사원, 혹은 버려진 건물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죠. 제 아이들은 총 네 명인데 모두 5살에서 14살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상상이 가십니까? 저는 매일 새벽마다 가족들이 밤새 살아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연락을 시도합니다. 간혹 통신망이 끊기는 바람에 가족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수일을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_아바스
아바스는 일명 ‘가자지구 노동자’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통근하곤 했던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매달 아바스는 본가가 있는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서 국경을 건너 몇 주간 철공장에서 일한 뒤 집으로 돌아와 3일간의 휴일을 가지곤 했다. 아바스의 부친이 사망한 이후, 그는 장남으로서 형제자매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공격을 단행하던 당시 아바스는 일터에 있었다. 다음 날, 이스라엘 군인들이 공장으로 찾아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괴롭히며 서안지구로 피난하지 않으면 총으로 쏘겠다고 협박했다. 아바스는 서안지구에 도달하기 전 이틀 동안 산속에서 대피했다. 팔레스타인 노동부에 따르면, 6,000명 이상의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이와 같은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아바스가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할 때 군인들은 그의 휴대폰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과 돈을 가져갔다.
그나마 휴대폰은 뺏기지 않아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은 끌려가거나 구타당하고 심지어 실종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서안지구에 사는 가족이 없어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한 지역사회로 대피했습니다. 우리는 몹시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매트리스나 이불, 난방도 없이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끔찍한 상황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_아바스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군의 끊임없는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는 가운데, 서안지구 또한 잔혹한 고난을 겪고 있다. 유대인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한 폭력과 학대는 10월 7일 이전부터 이미 만연한 상태였고, 국제연합(UN)에 따르면 2023년 해당 지역에서 살해된 팔레스타인 주민의 수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면서 지난 몇 년간의 충격적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0월 7일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격 건수가 더욱 치솟았다. 서안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매일같이 정착민에게 공격당하고 이스라엘 군인에게 끌려가거나 구타당하고 있다. 또한 제닌과 툴카렘(Tulkarem) 난민 캠프에서 전개되는 이스라엘군의 군사 작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바스는 나블루스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사회복지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아바스를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동료 직원들과 연결해 주었다. 이러한 심리상담은 20년 이상 전개되어 온 정신건강 프로그램의 일부로, 해당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근처 칼킬야(Qalqilya)와 투바스(Tubas)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1월 말 기준, 해당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임상심리사와 정신과 의사들은 2023년 총 2,600건 이상의 상담을 제공했다.
나블루스에서 전개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는 환자의 집 앞에 국경없는의사회 차량이 세워져 있다. 2018년 1월. ©Laurie Bonnaud/MSF
난생 처음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아바스는 치료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바스는 가자지구에 있을 때부터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의 부친이 몇 년 전 국경없는의사회에게 지원을 받은 환자였기 때문이다.
저는 가자지구로 가서 가족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당국 관계자들은 언젠가 가자지구 노동자들이 가자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실제로 귀환을 시도한 이들은 끌려가고 갈취당하고 심문을 받고 구타를 당했습니다. 만약 제가 끌려가게 된다면, 저는 가족들과 연락이 끊기고 말 겁니다.”_아바스
그럼에도 아바스는 여전히 가자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잃지 않았다.
아내는 제가 가자지구로 가길 바랍니다. 그래야 죽어도 가족들 곁에서 함께 죽을 수 있으니까요. 아내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하는 것이 거의 기적인 수준이죠. 가족들은 마실 수 있는 물도 없고 식량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때때로 짠 바닷물을 마시기도 하죠.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외상 환자로 가득 차 있고 안전하지도 않으니까요.”_아바스
아바스가 흐느껴 울며 이어 말한다.
며칠 전, 5살 된 아이가 제게 물어보더군요. ‘아빠, 왜 내가 굶게 내버려두는 거야? 아빠, 다른 애들은 자기들 아빠랑 같이 죽었어. 그러니까 아빠도 우리만 여기서 죽게 내버려두지 마’라고요. 저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아빠 거짓말하지 마. 그냥 지금 여기로 와. 우리 같이 죽을 수 있게’라고 하더군요.
끊임없는 폭격 때문에 이제 가자지구에서는 사망할 때를 대비해 손, 팔, 다리, 목과 같은 신체 부위에 자신의 이름을 써 놓는 것이 일종의 관습처럼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 셋은 자기 몸에 이름을 적었는데, 아내가 너무 마음 아파 도저히 막내에게는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폭격이 끝난 뒤에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요? 거리, 병원, 대학교, 학교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선량한 시민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냅니다. 제게도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고통을 멈춰 주세요.”_아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