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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난민에서 구호 활동가가 되기까지

2013.06.20

톡 존슨(Thok Johnson)의 이야기  

저희 가족은 1986년, 제가 9살때 수단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때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어린 아이를 포함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학대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요한 물품을 챙겨 에티오피아로 도망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닿기도 전에 길에서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병원 혹은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병든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리어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톡 존슨은 3년 간 이 곳에서 활동했다 ©MSF

우리는 에티오피아 난민 캠프에 도착하기 위해 네다섯 달 가량의 먼 길을 이동했습니다. 난민 캠프에 오는 길에 저는 가족을 잃었고 그렇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해 난민캠프에 도착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8 개월 후, 다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였습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그로부터 3년 후에 듣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지금의 남수단 지역의 빌팜(Bilpam) 마을에 계시다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의 생활

난민캠프에서 저를 비롯해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홍역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텐트로 만들어진 진료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캠프 내에는 국경없는의사회와 아드라(ADRA)가 활동하고 있었던 거죠.  아마도 그때가 제가 처음으로 간호사가 되어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하늘의 뜬구름 같은 꿈이었죠.  캠프의 현실은 굶주림과 질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펜도, 책도 없었지만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서 나무판자와 분필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원조에도 불구하고 캠프에서의 생활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저의 친척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제 동생을 가코르(Gatkhor)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 악몽이 끝나긴 할 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저에게 유일한 희망을 준 것은 축구 모임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9번이 적힌 셔츠를 입고 거의 모든 게임에서 점수를 낸 것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때문에 캠프에서 조금 유명했거든요.

제가 14 살 때, 에티오피아가 정치적으로 불안해져 다시 수단으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나자 저는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꽁꽁 묶어두었던 꿈을 꺼내볼 수 있었죠. 간호사가 되어 사람들을 돕는 그 꿈을요. 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 위치한 의과 대학에 진학했고, 18개월의 전문 교육을 통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미션 – 남수단

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2000년에 다시 남수단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쟁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했고 간호사로 여러 곳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보코(Aboko) 지역의 콜레라 치료 프로젝트를 마치고 현재 남수단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가장 큰 병원이 있는 리어(Leer)로 파견되어 3년을 활동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통해 제 능력을 훈련하고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 영양실조를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12년 17만명의 수단 난민들이 남수단 난민캠프로 몰려왔다. 톡 존슨은 남수단 자맘캠프에서 간호사로 활동했다. ©Shannon Jensen

그 후, 저는 수단과의 국경과 가까이 위치한 자맘(Jamam) 난민 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 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진행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은 캠프에서 인도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음식, 깨끗한 물, 의료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곳에서의 활동이 저를 매우 감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며 종종 비좁고 굶주렸던, 그리고 더위로 가득 찬 난민캠프의 생활환경,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나날 – 국제 활동을 제안 받다

자맘 캠프에서 활동하던 어느 날, 저는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지 않겠냐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는 제가 처음으로 받은 관리직 제안이기도 했지만, 첫 해외 활동 제안이기도 했습니다. 제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일궈낸 지금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과거 저는 난민이었지만, 현재는 국제적인 구호 활동가가 되었죠. 이 일로 저는 행복합니다. 

현재 나이지리아 프로젝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톡 존슨 ©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