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입니다.
현재 4,2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UNHCR, 2011년 말 기준)
국경없는의사회는 식량, 깨끗한 식수, 의료 서비스 부족 등으로 영양실조 및 예방 가능한 질병과 정신적인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난민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시리아 내전은 심화되어, 전선은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고 의료 체계는 붕괴되었습니다. 150만명의 시리아 난민들 인접국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터키 등에서 피난하고 있습니다. 주변국들은 유입되는 수많은 난민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인도주의 대응은 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을 위하여 난민캠프 내 병원을 운영하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지원, 약품 및 의료물품 지원과 난민들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식수 및 위생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레바논
레바논에는 50만 명 이상의 시리아인들이 피난처를 찾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임시거처, 공사중인 건물, 밭에 세운 판자집 등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비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피난처라도 얻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엔에 등록되지 않은 난민들은 보건의료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난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한다”
- 레바논: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활동 벌여
- 시리아부터 레바논까지: 난민의 고통을 완화하는 일
- 레바논: 의료지원이 절실한 시리아 난민과 지역분쟁 피해자들
이라크
이라크 북부의 도미즈 캠프에는 수용인원을 초과한 3만 5천 명의 난민이 밀집해 있습니다. 일부 난민은 인도주의 긴급사태 시 제공되는 물 배급량인 1인당 하루 최소 15~20리터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르단
요르단 자타리 난민캠프에는 10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상황은 열악하며, 재원이 부족해 캠프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 35만 명의 난민들에 대한 의료 제공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르단으로 피난한 난민들의 증언
시리아 다라(Dara’a) 주에 살고 있던 아미르(Ameer, 남/ 9개월)의 가족들은 폭격이 심해지자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시리아를 떠나 지난 4월 2일 요르단 자타리 캠프에 도착했다. 9달 된 아미르는 목과 눈이 심각하게 감염되었고, 고열을 앓았다. “가족, 집, 재산….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두고 한 밤중에 요르단 국경을 넘었어요. 국경을 넘어오면서 제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 찼어요. ‘우리가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요르단에 얼마나 머물게 될까?’,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십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어느 것에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요르단 국경까지 8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우리는 난민캠프 접수처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요르단 군인들이 우리를 맞았죠. 그곳에서 물과 담요를 받아 버스를 타고 자타리 난민캠프까지 이동했어요. 자타리 캠프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이곳 거주자들이 다라 인구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캠프 생활 환경은 너무나 열악해요. 4살 된 딸은 첫날 밤, 너무 추우니 집에 돌아가자고 울었어요. 우리는 담요를 받았지만, 가족 수에 따라 담요를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 이상 받을 수는 없었어요. 딸에게 제 몫의 담요를 덮어 주었어요. 며칠 후엔 아들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캠프 안에서 의료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워요. 아주 기본적인 진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요. 어떤 때는 간호사에게 검진받기 위해서 2시간 반 동안 기다렸어요. 아들은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입원 치료가 필요했어요. 우리는 폭격을 피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리아를 떠나왔는데, 아이들이 캠프의 먼지와 한기 때문에 병에 걸린다면,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익명을 요구한 아미르의 아버지 |
7달 된 모스타파(Mostafa)의 가족은 다라 근교에서 요르단으로 피난을 왔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요르단으로 건너왔어요. 만약 저와 남편만 있었다면 시리아를 떠나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더 이상 위험하게 둘 수 없었어요. 몇 달 동안 폭격, 공습, 총격을 받았어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전투기 소리를 잊지 못하고 악몽을 꾸고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지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죠. 자타리 캠프에 온 후,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우리 아들은 천식을 앓고 있는데, 캠프의 먼지 때문에 숨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 어머니 옴 모스타파(Om Mostafa)의 말 |
고향을 떠나 피난하는 실향민과 난민은 열악한 환경 속에 생존하고 있습니다. 난민캠프에 도착하지 못한 난민들은 말라리아나 수면병과 같은 질병에 노출되어있으며, 특히 우기와 겹치는 기근으로 인해 영양실조의 위험에도 취약합니다.
끊임없는 난민의 유입으로 여러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살아가는 생활환경에 처한 많은 난민들은 피부과 질환, 호흡기 질환 및 영양부족 등의 질병에 노출되어있습니다. 특히나 내전이나 폭력을 겪은 난민들은 심리적 외상으로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내전 발발 초기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리아 인접국에서 15만 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진료하며 가장 취약한 난민계층의 건강지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아동들은 정기적인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1차 의료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임산부들은 산전후 관리를 받을 수도, 안전하게 출산할 수도 없으며,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나 사후관리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난민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남수단
2011년 가을부터 수단 내전을 피해 수만 명의 난민이 남수단으로 피난했습니다. 남수단 난민캠프는 이미 수용능력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몇 개 난민캠프 내에는 E형 간염까지 발생하여 위기가 가중되었습니다.
- 남수단: 난민들의 증언
- [사진으로 보는 현장] 남수단 국경없는의사회 1년: 긴급 구호를 요하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 맞선 발자취
- 국경없는의사회, 남수단 난민캠프의 사망률과 영양실조에 관한 신규 자료 발표
- 남수단 난민캠프: 보이지 않는 상처
- 깊은 덤불 속 의료소: 남수단의 가장 위험한 주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
- “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저는 반은 장님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9살 때 고향인 수단을 떠나 에티오피아 난민캠프로 피난했습니다. 원조에도 불구하고 캠프에서의 생활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캠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제 동생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 악몽이 끝나긴 할 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난민캠프에서 저를 비롯해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홍역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캠프 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으로 간호사가 되어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하늘의 뜬구름 같은 꿈이었죠. 캠프의 현실은 굶주림과 질병이었으니까요. 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저는 꽁꽁 묶어두었던 꿈을 꺼내볼 수 있었죠. 간호사가 되어 사람들을 돕는 그 꿈을요. 저는 에티오피아 내 의과 대학에 진학했고, 18개월의 전문 교육을 통해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간호사가 되어 남수단을 다시 찾았습니다. 간호사로서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지역병원과 난민캠프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저는 제가 일궈낸 지금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과거 저는 난민이었지만, 현재는 국제적인 구호 활동가가 되었죠. 저는 행복합니다.“ - 난민 생활 후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된 톡 존슨(Thok Johnson) - |
관련글: 난민에서 구호 활동가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