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월요일 요르단 암만과 미국 뉴욕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예멘 위기에 대한 화상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예멘 민간인들에게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습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인도주의 구호 활동, 현지의 피해 상황 및 파괴적인 봉쇄 등을 다루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국경없는의사회 예멘 현장 책임자 가잘리 바비커(Ghazali Babiker) 박사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오늘, 예멘에서 계속되고 있는 인도적 위기를 논의하는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예멘에 있는 우리의 환자들과 그 가족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들에게 의료 지원이 가장 절실할 때 의사, 간호사, 혹은 제 기능을 발휘하는 의료 시설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없는 현지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예멘 사람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3여 년 전,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의 퇴임 이후로 정권 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나타난 최근 사건으로, 2015년 3월에 국제군의 공중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멘 사람들은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식량과 물을 구하느라 고군분투할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폭력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임산부에서 부상을 입은 전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기회가 계속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거나, 심지어 공격의 목표가 되었던 의료 시설들과 의료진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아니지만, 많은 진료소들이 효과적인 운영에 필요한 의료 물자가 부족하거나 의료진이 진료소를 떠나는 바람에 문을 닫았습니다.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도 연료가 부족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가 매우 적습니다. 연료와 교통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나마 아직 운영되고 있는 극소수의 의료 시설들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분쟁 발생 초기, 연합군이 부과한 무기 금수 조치의 2차적인 결과로 의료 물자가 부족해지고 연료나 식료품도 희박해졌습니다. 4월, 유엔 안보리에서는 이 무기 금수의 합법성을 강화했는데, 이는 사실상 민간인들을 응징하는 것으로서 예멘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유발했습니다. 무기 금수의 원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고 해도, 예멘 항구와 공항에 들어오는 모든 물품을 줄인 결과, 일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영향을 입었습니다. 예멘 사람들은 수십 년간 가난과 만성 영양실조의 영향을 받아 이미 약해져 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식량, 연료, 의료 물자와 같은 인도적 물품의 반입을 촉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조속히 물품 반입을 실시해 달라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의료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이 겪는 장애는 다만 이러한 외적 규제만이 아닙니다. 교전이 격렬히 일어나고 교전선도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예멘도 크게 분열돼, 사람들은 의료 시설 방문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위험한 지역으로 들어가거나 검문소를 통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 긴급 상황은 검문소 통행이 허락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아야 하고, 모든 전쟁 당사자들은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이러한 지원을 돕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예멘 현장 책임자 가잘리 바비커(Ghazali Babiker) 박사
구호 단체들은 예멘에서 독립적, 중립적,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현재 위기에 맞서 효과적인 영향력과 지원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현지 봉쇄령과 인도주의 물자 압수, 각종 번거로운 절차 등으로 이러한 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멘 현지에서 전쟁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통제 지역에 있는 적은 인도적 자원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양이 얼마가 됐든 이 분쟁의 결과에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 천정부지로 치솟는 생필품 가격이 누구 책임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이 인도적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급 대응은 그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 대응 범위와 영향력도 제한적입니다. 예멘은 첨예한 갈등의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이나 위기 상황을 겪어본 구호 활동가들, 그리고 자질을 갖춘 지도자들이 협상 자리에 나서고, 교전선과 당파 우선순위를 넘어 취약한 지역사회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멘에 있는 구호 활동가들이 처한 위험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지의 인도적 요구는 높은 상태이며, 경험이 많은 국제 직원들을 통해 대규모로 예멘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단체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끈질긴 문제는, 구호 단체들이 내놓는 긴급 호소문에 국제 기부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구호 단체들은 예멘 내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몇 안 되는 재원 출처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계 자선 재단의 기금만 사용하도록 강요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계 절차는 반대편 무력 단체들에게 의심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분쟁의 한쪽 편과 동화된 구호 단체는 현지 주민들에게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고, 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다른 단체들의 중립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국제 구호 체계 전반에 걸쳐서, 지금 당장 예멘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분쟁이나 위기에 경험이 있는 구호 단체들을 동원하고, 기금 조달 과정에 더 속력을 내고, 예멘에서 상주하며 활동하도록 전문가 그룹을 시급히 배치하는 등, 효과적인 긴급 대응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즉시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구호 활동가들의 노력과 인도적 지원은 마치 대출혈을 막겠다며 반창고를 붙이는 식밖에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분쟁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이루는 일들에서 눈을 돌려, 인도적 지원 활동을 돕는 데 있어 각자의 몫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선의의 중립적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분쟁의 당사자들은 예멘 민간인들이 겪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인구 밀집지역, 병원과 정수장과 같은 민간 기반시설을 공격 목표로 삼지 않고,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물자들이 공급되도록 허락하며, 현지에서 폭력 수준을 감소시키려는 모든 일에 힘을 합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생필품과 의료 서비스를 구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현지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도록 휴전 협정, 혹은 보다 포괄적인 수준의 정전이 장려되어야 합니다.
예멘 사람들은 인도주의자들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자신들의 필요를 교전 당사자들이 더욱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예멘 사람들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예멘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를 전해 듣기를 바랍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최근 예멘 활동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아덴, 사나, 알-달레, 암란, 사다, 타이즈, 하자, 이브 등 예멘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예멘에서 운영 및 지원하는 여러 의료 시설에 105톤의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2015년 3월 19일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전쟁으로 부상을 입은 1만500여 명의 환자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