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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세계 여성의 날: 여성 건강 – 말리 여성들을 위한 의료 지원을 가로막는 난제들

2018.03.09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국경없는의사회는 세계적으로 산모 사망의 주요인으로 손꼽히는 산후 출혈 문제를 강조하고자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국제 인도주의 의료 단체로서 1985년부터 말리에서 활동해 왔다. 2017년, 우리는 안송고 지역에서 의료를 제공하면서 1500여 명의 출생을 돕고 2,776회의 산부인과 진료를 제공했다. 말리 중부 두엔자 지역에서는 442명의 여성들이 분만 시 도움을 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의료 자문으로 안송고에서 활동하는 마마두 케이타(Mamadou Keita)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한 생명을 세상에 선사하면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산 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여성들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키달•테넨쿠 등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여성들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산모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여정

탈라(17세)는 말리 동부 안송고 시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는 유목민 마을 출신이다. 집에서 첫 아이를 낳고 출혈과 빈혈을 앓던 탈라는 안송고 위탁 보건소까지 가기 위해 이틀 동안 위험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Seydou Camara / Médecins Sans Frontières

안송고 위탁 보건소에 와 있는 탈라, 그리고 탈라의 곁을 지키는 탈라의 어머니

제 딸은 아이를 낳고 나서 앓아 누웠어요. 그러더니 몸이 너무 약해지더라고요. 출산하고 나서 하혈이 심했어요. 그런데 보건소는 50km도 넘게 가야 할 만큼 집에서 너무 멀거든요.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서 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두려울 때가 많아요.

탈라는 집에서 아이를 낳았어요. 우리 마을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거든요. 시간이 지나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아서 전통 약재를 써 봤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우리는 탈라를 수레에 싣고 보건소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자들은 다 농사 일을 하러 나가 있던 터라 우리는 갓난아기까지 데리고 보건소로 향했어요.

보건소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보건소에 가서 봤더니 탈라 상태가 더 나빠진 거예요. 거기 직원 분이 안송고 병원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가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수레를 끌고 나왔어요. 탈라가 열이 나서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차를 타고 지나가시던 어떤 분이 우리를 안송고까지 태워다 주셨어요.

우리는 밤 늦게야 병원에 도착했고 제 딸은 병원에 입원했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까 출혈이 너무 심해서 아픈 거라고 하더라고요. 수혈과 치료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데 그때,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이 놀라운 일을 해 줬어요. 저한테 돈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고 그냥 제 딸의 생명을 살려준 거예요. 게다가 저는 탈라 곁에 머무르는 동안 먹을 것도 받았어요. 탈라는 이제 몸이 많이 나아서 드디어 아기도 돌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Seydou Camara / Médecins Sans Frontières

말리 두엔자 출신인 농부 아마두는 아내 아와를 데리고 두엔자에 있는 위탁 보건소로 향했다. 아내가 집에서 조산을 한 후 출혈과 중증 빈혈을 앓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말리 여성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낳기를 꿈꾼다

의료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조산을 한 아와는 어마어마한 출혈을 겪었다. 하혈을 멈추려고 아와의 부모는 전통 약재를 써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와는 먹지도 못한 채 몹시 앓았고 몸은 급속도로 약해져 결국 심한 빈혈에 걸렸다. 상태가 위독해진 아와는 두엔자 위탁 보건소에 도착한 것은 무려 12일이 지났을 때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아와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했다. 아와 곁을 지키고 있던 남편 아마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두엔자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두마에서 왔습니다. 거긴 보건소도 없죠. 치료를 위해 아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번이 첫 임신이었습니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 산전 검진 같은 건 전혀 못 받았죠. 그래도 날짜는 계속 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예정일이 아직 남았는데 갑자기 진통이 온 겁니다.

그 순간 ‘우리 첫 아이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 깨닫게 됐죠. 하지만 그 시간에 병원에 데려가기란 너무 때가 늦었습니다. 게다가 집 근처에는 보건소도 없었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했습니다. 아내는 출혈이 너무 심했고 아기는 사산했거든요.

그 비극적인 일이 벌써 20일 전이네요… 출혈을 멈추게 하려고 전통 약재를 썼는데, 사실 그 약으로 출혈을 막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조금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뭐 하나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았고 영 활기가 없었어요. 그때 보니까 아와의 피부가 부어 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얼굴, 손바닥, 온몸이 일그러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내를 이 병원까지 데려올 방법을 찾았어요. 그렇게 여기 와서 아내는 검진을 받았고, 의사 선생님들의 조언을 따르면서 잘 먹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기운도 회복하게 됐죠.”

Seydou Camara / Médecins Sans Frontières

안송고 출신 완리가 조카 아미나투를 안고 있다. 아미나투는 집에서 태어난 후 합병증을 앓게 되었다. 아미나투는 안송고 위탁 보건소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했다.

“치안 문제 때문에 혼자 나가 거리를 다니는 게 무서웠어요”

의료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태어난 아미나투는 14일 후 위독한 상태로 안송고 위탁 보건소 산부인과 병원에 오게 되었다. 병명은 자간증(eclampsia)이었다. 이후 아미나투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도움을 받고 상태가 안정되었고, 지금은 위험한 상황을 벗어났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건 아기가 아침을 먹던 새벽 5시경이었어요. 갑자기 자간(경련)이 시작됐죠. 갑자기 정신을 잃더니 몸을 계속 부르르 떨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기를 이곳 병원까지 데려올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어두운 때라서 우리를 병원까지 데려다 줄 남자들이 없었어요. 그리고 치안 문제 때문에 혼자 나가 거리를 다니는 게 무서웠어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 동네 보건소에 아기를 데려갔어요. 임신 기간 동안 다니던 곳이죠. 아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건소에 간 것은 출산 3일 전이었어요. 제 조카는 집에서 출산한 것 때문에 합병증에 걸린 거예요. 병원 밖에서 아기를 낳아도 별 문제가 없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에 산모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아기를 낳는 거거든요. 밤에는 더욱 그렇죠.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산부인과 병동 응급실에서 아미나투를 치료했던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시디키 아마두(Sidiki Amadou)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치료를 받고 지금은 자간 경련이 줄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집에서 아기를 낳지 않도록 말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안송고 주민들을 보면 아미나투와 같은 합병증이 자주 일어나거든요. 자간증은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치료를 하는 동안 아미나투는 위독한 상태 속에 혀를 너무 세게 깨물었습니다.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아기들처럼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의료진의 도움 속에 병원에서 아기를 낳도록 격려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산전 진료 때 산모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지역민 전체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해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알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집에서 아기를 낳으면 출산 전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이해하게 되니까요.”

“과연 아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정말 걱정했습니다”

Seydou Camara / Médecins Sans Frontières

파투마타는 말리 중부 두엔자에서 5km 떨어진 유목민 마을 ‘달라’ 출신이다. 파투마타에게는 아이 다섯이 있다. 두엔자 위탁 보건소에 도착했을 때, 파투마타는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파투마타의 상태를 안정화시켜 더 이상 목숨이 위태롭지 않도록 했다.

“아내가 아파서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도착했을 때가 오전 11시였는데 당시 아내는 전혀 의식이 없었습니다. 통증이 시작된 건 3일 전부터였는데요. 제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는데 그 즉시 병원에 가서 뭐가 잘못됐는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몸이 몹시 나빠지고 나서야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이곳 병원까지 오게 되었죠. 보건소에 왔더니 의사들이 맞아 주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저는 너무나도 걱정했습니다. 조산사들이 아내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고 저는 바깥에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지나서 의사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아내 몸이 어디가 안 좋은지 아느냐고 말이지요. 저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들었습니다. 제 아내가 임신 5~6개월이라는 사실을요. 식구 중 그 누구도 임신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아내조차도 임신은 생각지도 못했죠. 보건소 직원들 말을 들어 보니까 임신 때문에 그렇게 아프다는 겁니다. 다행히 지금 아내는 상태가 나아져 정신도 차렸습니다. 앞으로는 여기 와서 계속 산전 진료를 받아야죠.”

두엔자 위탁 보건소 산부인과에서 파투마타 치료를 담당한 국경없는의사회 조산사 아이사타 코네(Aissata Koné)는 이렇게 말했다.

“파투마타 지인들에게 파투마타의 몸 상태에 대해 물었더니 그저 몸이 좀 안 좋았다고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환자를 검사해 봤더니 임신 5~6개월인 거예요. 파투마나 본인도, 그 가족들도 전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마다 보건소에 찾아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들어 보니 파투마타는 이전에 집에서 분만을 했는데 잘 안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이번에는 산전 진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때 산모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